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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 전파와 음악 (마 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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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3편부터 118편까지를 유월절에 부르는 노래로 보고, 전반부인 113편부터 114편까지를 유월절 도중에, 후반부인 115편부터 118편까지를 유월절 끝에 부른다는 것을 그 당시의 규례로만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월절에 바라는 실상입니다. 최대의 모욕과 죽음을 감내하고 감람산 오르막에서 부르는 찬송이기도 합니다. 이는 십자가상에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인류구원의 승전에 맞춘 최대의 개가를 부르는 전주곡이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지상에서 육신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찬미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며, 심산유곡에 속세를 도피하여 은둔하는 격의 불교 사상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죄악 세상에 파고들어 죄악이 관영한 땅을 성화하고 천국을 거기에 수립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정신은 불의에 대해서 도전적이며 죄악과의 투쟁을 수립하는 것이며, 악령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결전도 불사하는 것입니다.
찬송하며 십자가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시는 주님을 우리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수직상으로 좇아 오르는 하나님의 영력이 아니면 이 땅의 세력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주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 사이에 직접적인 교통의 매개물은 음악이라』고 말했으며 『우리의 주님은 그의 거룩하신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하시고 대신 우리는 찬양의 노래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보답한다』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예술 중에서도 특히 음악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음악은 신학 다음으로 중요하며 음악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훌륭한 선물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찬양하는 소리 앞에서는 마귀도 도망한다고 찬양의 효능을 예찬하였습니다.
저도 악령에게 사로잡힌 사람이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찬송을 부를 때에 귀신이 나가는 것을 여러번 경험을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왕에게 시험하는 악령은 다윗이 거문고에 맞춰 찬미할 때 물러가곤 하였습니다.
필 케르는 『음악은 거친 심중을 부드럽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말하면 거칠고 호전적이며 발악하는 악령은 부드럽고 거룩한 음악을 가장 싫어하여 그 음악이 나오면 멀리 도망가 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전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던 마귀가 사라지매 그 마음의 문은 열리고 복음의 씨는 그 마음 밭에서 싹트고 자라나고 결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인 『경찰과 찬송가』에 나오는 주인공인 도시의 한 부랑자는 밤중에 교회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소리에 전날의 타락한 생활을 청산하고 참된 인간이 되자고 결심하기에 이르렀으며 마침내 그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가락은 그를 새사람으로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1836년 2월 11일에 미국의 펜실베니아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워싱턴 그래든 목사는 무엇보다도 복음을 미국과 전세계의 사회 및 생활에 적용하기에 진력한 선구자라 할 것입니다. 그는 양심을 바탕으로 노동자를 위한 설교를 했으며, 1883년에는 전신기사들을 위하여, 1884년에는 자기 교회의 신자가 부사장으로 있는 호킹밸리의 탄광 노동자를 위하여 설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신학생들에게 당시 『모세의 과오』에 대한 강의로 종교계를 혼잡케 한 로버트 잉거솔의 그릇된 학설을 반박하는 설교를 하여 성경을 위해 증거 했습니다. 그 때 설교를 저술한 설교집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래든은 주일 오후 『하나님과 동행함』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그의 명상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후에 찬송가집에 수록되면서 곧 최고 수준의 찬송가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괴로운 일이 많은 이 세상에서 주님의 힘으로 이 세상을 잘 감당할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인자와 인내로 소금의 역할을 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소망을 가지고 구주께서 동행하시는 것을 믿고 행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암흑의 세계를 복음의 빛으로 밝히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찬송가와 같이 고난에 싸여 있는 이 세상을 주님과 함께 복음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전쟁에는 군가가 있습니다. 음악은 평화의 상징으로서 군악을 울리는 전쟁은 그 전쟁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평화에 있다는 것을 선고하며 싸우는 정정당당한 전쟁이라 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 목적이 참되고 숭고할 때 그 전쟁은 져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은 그 자체가 평화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3-14를 보십시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이 세상에 오십니다. 이 세상은 죄악과 사단이 우굴우굴하는 곳입니다. 이 때에 天軍(천군)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평화를 위하여 선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장은 의의 호신경과 신앙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을 취하고, 사명감의 중대함을 절감하고 허다히 모여 찬미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왕과 그 전군과 싸워 피흘려 죽음으로 승리하고자 오르는, 감람산 오르막 길은 비굴하게 쫓기는 길도 아니요, 마지 못해 끌려가는 길도 아니요, 우울증에 사로잡힌 고독한 길도 아닙니다.
그것은 찬미하고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환난과 역경에서도 찬미하고 주를 따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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