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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받는 하나님의 종 (마 2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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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많은 사람이 겉옷을 깔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 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고난 받는 모습이 너무나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보통사람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을 통하여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을 철저하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이 어마나 엄청난 것이었나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이고, 영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도 수치와 모욕과 불명예와 굴욕을 당하는 종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의 컽옷이 벗겨지고, 얼굴에 침을 뱉고, 온갖 야유와 비난을 그에게 퍼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시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말없이 그런 수난을 당해야 할만큼 엄청난 죄와 잘못을 범한 것도 아닙니다. 재판장인 빌라도 총독의 아내가 밝혔듯이 예수는 죄가 없습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마옵소서” “저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혀야 했습니다. 참으로 비통한 사건입니다.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부조리한 세상의 모습입니다.
왜 예수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셔야 하셨는가

1.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
요즈음처럼 폭력이 난무하고 인명을 파리목숨처럼 천시여기는 세상도 없습니다.
예) 돈 몇푼 때문에 사람의 모숩을 해하는 세상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이웃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심지어는 연예인이 은퇴하는 것때문에 자살하겠다는 그런 세상입니다.
인간의 모습이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지금은 무기를 들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강도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우리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예) 공해와 온갖 폐수
마늘-농약을 친 마늘.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나라보다는 빨리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도 매우 험악한 세상이었나 봅니다. 그러니 죄없는 사람을 서습없이 죽이는 죄를 범하였지요.

예수님은 바로 이 죄악 세상 가운데 ,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엄청난 죄의 댓가를 치루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가 당해야할 고난을 모르셨겠는가 하나님이 알고 계셨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고난을 치뤄야 하며 그래야만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독생자를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기에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시대에 예수님처럼 살다간 사람이 있는데 M. 루터킹목사다.
M. 루터킹목사는 짓밟히는 흑인형제들의 인권문제를 위하여 자신의 일을 돌보지 아니하였다. 그는 인권을 위해 30회 이상 끌려다녔고, 때로는 그의 집에 폭탄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불의와 항거하여 싸우다가 1968년 4월 4일 암살을 당하였다.
그의 피부색깔은 검었지만 그의 눈과 정신은 항상 빛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희망을 심어 주었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그의 정신과 힘은 많은 사람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는 고난 가운데 살아갔지만 고난 가운데 죽어야만 새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진리를 만인에게 깨우치며 예수의 고난의 길을 걸어간 이시대의 작은 예수였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살리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2. 이 엄청난 댓가를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의롭게 되었다.
사람의 사는 세상의 무서운 죄를 볼 때 그 가운데서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그는 양심이 마비된 사람이다.

예) 김현회(마유미)
대한 항공의 여객기를 폭파시킨 북괸의 여공작원이었다. 그로 인해 무고한 사람 200여명의 목숨이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되었다. 모두 그녀를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대통령의 특사로 살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각교회마다 다니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증하고 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여인이었지만 대통령의 특사로 살아났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특사로서 죄인인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길을 여셨다. 예수는 하나님의 특사로서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 죄인을 의롭게 하신 것이다.

롬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여기에서 의롭다는 말은 법정술어로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죄없다고 무죄선언을 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희생시켜서 우리를 구속하였다는 것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를 잊고 사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뿐만 아니라 진홍빛보다 더 붉은 죄악을 범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주의 은혜를 입고도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는 적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마음속으로 부터 죄악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오나전히 그리스도의 성품만이 우리의 속에 충만한 신앙인이 되야 한다. 사랑과 겸손만이 우리에게 넘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의롭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고난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롬 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전에는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가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언제나 어느 때나 밝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과 감사를 드리며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날마다 감격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갚으며 살 수 있을까라는 즐거운 걱정속에 살아갑니다. 빚진자는 마딸히 빚을 갚아야 합니다. (주곡교회도 빚을 갚기 위해 애씁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사람은 어떻게 빚을 갚을 수 있을까요
이제 하나님 앞에서 이롭게 된 우리는 주의 은혜로 화목케 하는 자가 되야 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1910년 8월 27일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다. 선교의 뜻을 품고 인도로 건너가 로제또 수녀회에 가입을 하여 수녀가 된 다음에, 교육자로 일하다가 캘커타의 빈민굴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말하기를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에도 하나님과 더불어 천국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순간에도 하나님과 함게 있듯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듯이 사랑하고, 하나님이 도와 주시듯 도와주고, 하나님이 주시듯이 주고, 하나님이 섬기듯이 봉사하고, 하나님이 구하듯이 구하고, 하나님이 24시간 동안 괴로와하고 아파하는 인간을 찾으시며 어루만지고 계신 하나님의 손을 만지는 것이 곧 천국에 사는 것입니다.”
“특히 약한 자를 지켜주고 물질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행위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요,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께 받기만 했지 우리의 이웃뜰에게 나누어 주는 일에는 인색했습니다. 하나님은 배고픈 사람, 아픈 사람, 갇힌 사람, 헐벗은 사람, 집 없는 사람안에 살아계십니다.
배고픔은 단지 빵이 없어 느끼는 배고픔만이 아니라 사랑, 동정 누군가의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배고픔입니다. 헐벗은 사람은 옷을 벗어서 헐벗은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친절과 배려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집이 없다는 것은 돌로 만든 집만이 아니라 자기를 초대하고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 받은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죄사함을 받았고, 의롭다 함을 받았고, 화목케 하는 직책을 받았습니다.
변하지 않는 복, 영광입니다. 세상의 그 어던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참으로 귀한 것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귀한 것을 주심에 감사하며 이 고난주간을 겸손하고, 경건하게 살아각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 절제하며, 기도하며 말슴가운데 살아가므로 고난의 신비와 의미를 더 깊게 개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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