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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義를 추구하자 (마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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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福(팔복)은 7가지 복받은 마음의 상태와 핍박의 복으로 이룩된 천국대헌장과 같은 아주 귀하고 놀라운 말씀입니다. 천계의 진리의 거대한 종이 울리는 듯, 우리의 심령을 진동시키는 팔복중에 오늘은 네번째 복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6절)하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의의 근원을 찾아봅시다. 자연에서는 자연의 법칙이 있어서 그 법칙대로 따라갈 뿐이지 인간을 제외한 어떤 동물이나 식물에도 의라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나서 그것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일은 없습니다. 짐승에게는 다만 본능만 있을 뿐이지 마음이니 양심이니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는『인간의 마음속에는 밤하늘의 별과 같이 반짝이는 양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양심은 우리의 마음을 비춰 줍니다. 그래서 불의를 행할 때면 양심이 그 불의를 지적하고 그 불의 때문에 괴롭게 합니다.
이 양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마음을 부분적으로 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그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죄악으로 타락한 사람의 마음은 양심의 빛도 점점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이 잃어버린 양심, 인간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인간의 의를 추구하기 위해 힘쓴 여러 성인들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求道者(구도자)들입니다. 석가모니, 마호멧,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룩해 놓은 것이 윤리 도덕을 강조해 놓은 종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는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의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전서 3:21에 보면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타락되었고, 그 양심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여러가지로 자신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타락된 심령을 일깨워 주시고 마비된 양심을 선한 양심으로 바꿔 주셔서 하나님을 찾아가게 해 주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란 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추구하자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 바로 의로운 삶인 것입니다. 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속에는 세상의 어떤 윤리 도덕도, 어떤 종교의 심오한 가르침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윤리 도덕도 올바른 가치관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종교나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알맹이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세상이 어지럽습니까? 의의 근원이신 하나님 추구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 이번 선거에서 불법을 행한 선거 사범 2, 472명이 검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난번 선거와 비교해 볼 때 4배에 해당되는 숫자입니다. 신문에 나온 기사 몇 가지를 소개하면 『짓밟힌 공명』『난장판 개표』『부정이 판친 뒤엔 폭력이 난무』『전국 곳곳서 불법 속행』『당원들이 개표소 포위하여 몽둥이 깨진 병을 휘둘러』『네 번이나 개표 중단』『득표차 좁혀지자 소란극』『換票(환표)도 곳곳서』『네곳에서 부정선거 규탄 데모』『투표함이 바뀌었다』『다리 밑에서 표 5백장 발견』『무더기 표로 인해 101%의 선거 역사상 유래 없는 투표율』『전주에서 언커크, 드보리스 두 명의 화란 대표는 유령투표를 보관하고 있는데 보고자료로 삼겠다고』등이다. 이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불의요, 불법이요, 인간의 비양심적 행태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며 찾는 자가 의로워 질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어린 양을 제물로 바칩니다. 어린 양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뉘우칠 때 양은 그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그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그를 믿는 자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되고,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자어의 『義(의)』라는 글자에 보면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義는 羊(양)과 我(아)가 합해진 글자입니다. 그러니까 내 앞에 양이 희생 제물로 드려질 때 내가 의로워 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자어에 이러한 뜻 깊은, 그리고 성경적인 단어가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아마 수천년 전에 히브리 사상이 널리 퍼져 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의로워지는 것의 시작일 뿐 우리의 심령은 아직도 타락된 옛 성품에 의해 지배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3절에서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의의 푯대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 우리는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성령의 숯불로 자기 혀의 부정한 것을 지지고, 성령의 빛으로 자기 마음의 어두움을 밝히고 선지자로 새출발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성령의 불로 여러분의 부정하고 불의한 심령을 씻기며 태우고 우리의 의로운 대제사장 되신 예수그리스도만을 사모하며 따라가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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