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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꽃을 보라 (마 06: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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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나무 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입니다. 줄기도 가지도 꽃만큼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흠도 있고 벌레 먹은 흉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뿌리는 흙과 거름과 엉킨 더 보기 흉한 땅 속에 묻혀 있는 존재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십시오!』 이것은 그 전체 중에서 아름다운점, 곧 장점만 보라는 말씀입니다. 나무는 사람의 비유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 사람의 좋은 점 즉 장점만 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많은 단점, 나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장점을 보지 못하면 그 사람을 귀히 여기고 또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후손인 사람은 남의 흉을 보기를 좋아합니다. 꽃을 보지 않고 이지러진 잎사귀나 흠집 있는 가지를 보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선생은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3:2-10을 보십시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나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을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 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이므로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인간의 한 마디의 말은 날카로운 칼도 되고, 솜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도 된다고 제퍼슨은 말했습니다.

1.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마십시오.
첫째 명제로써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남의 흉을 보는 것처럼 비열하고 부도덕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성격적 결함 중의 하나가 『三人集一人去(삼인집일인거)』라고 세 사람이 모이면 한 사람을 비난하고 제거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멀리 내다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낮의 말은 새가 듣고 밤의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잠언 18:8을 보세요.
『남의 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남의 말하는 것은 별식을 먹는 것처럼 즐겁습니다. 한 사람을 두 사람이 비난할 때는 두 사람이 아주 친밀해지는 것 같으나 나중에 보면 모래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이 크게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잠언 17:28에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차라리 그 입술을 닫아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데서 그 장점을 말하면 이는 자기를 화평케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요. 복된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길 입니다.
마가복음 7: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저도 남의 단점을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보지 않는 곳에서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마십시다.
볼테르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개와 비슷한 점이 있다. 먼 곳에서 어떤 개가 짖는 것을 들으면 자기도 따라 짖는다』라고 말했습니다.

2. 그 사람에게 직접 그 사람의 단점을 말 하십시오.
이것은 충고입니다. 윗사람에게는 간언이라고 하는데 함부로 할 것이 아니고 조심스럽게 먼저 기도를 많이 하고 그리고 꼭 필요할 때는 갈라디아서 6:1절에서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내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주어야하는 것입니다.
교역자도 인간입니다. 그래서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교역자들은 교역자의 상관되신 주님에게 기도로 아뢰고 단점을 부탁해야 합니다.
사람은 인격의 개조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윤리나 교양이나 지식으로는 지극히 부분적인 변화밖에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전인격적인 변화의 원동력은 기도뿐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키시고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입술을 정결케 해 주십니다.
교역자는 교회의 간판입니다. 어떤 신자는 『교회에 나오십시오. 우리 교회의 목사님은 설교를 잘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나오십시오』라고 하면서 전도를 합니다. 도대체 나오라는 말인지, 나오지 말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어떤 신자는 『우리 교회의 목사님은 사랑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교회 좀 오십시오』라고 합니다. 이것은 自家撞着(자가당착)이요, 자기 모순입니다. 교회의 간판인 교역자에 대해서 『사랑이 없다, 교만하다, 고집이 세다, 게으르다, 알아주지 않는다, 찾아오지 않는다, 인격이 어떻다, 사모가 어떻다, 자녀가 어떻다』고 하면서 비난하는 신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 교회의 간판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 그런 신자들은 자기집 간판은 더욱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 육신의 집 간판보다 자기 영혼의 집 간판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신자입니다. 이렇게 교회 간판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교회가 부훙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바보 같은 짓입니다.
교회 간판을 아름답게 장식하십시다. 교역자에 대해서 좋은 점만 말하십시다. 그것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부흥을 기하는 일입니다.
입은 잘못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국회에서도 취소하면 됩니다. 더욱이 하나님 앞에는 회개하면 됩니다.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이사야와 같은 대선지자도 입술이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때에 서랍들이 숯불로 그의 입술을 지져 깨끗하게 했습니다. 말의 실수가 없으면 온전하다고 하였습니다. 저 자신도 온전치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의 실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를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음성에 대해서 만도 그렇습니다. 지식층의 신자들은 높은 음성과 열렬한 소리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은 열렬한 소리를 좋아합니다. 날카롭고 강력한 음성은 긴장감을 주지만 또한 불안한 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구수하고 부드러운 음성은 안도감을 주나 잠이 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잠이 안 오게 하는 소리만이 은혜가 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종종 범하기 쉬운 입술의 잘못을 다같이 통회하고 유의하여야 하겠습니다. 시편141:3에 보면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했습니다. 상한 심령을 가지고 간절히 기원해야 할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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