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악한 농부의 비유 (막 12:1-12)

첨부 1


1. 시작하는 말

모든 분야에는 지도자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들 때문에 일반인들이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도자들 중에 남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바 병적일 정도로 명예욕과 감투욕이 강한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병든 지도층들은 뇌물이나 아첨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욕망을 채우느라 자기 분야의 본질 및 특성을 왜곡하거나 파괴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단 얻은 감투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더 추잡한 수단을 부리고, 무서운 죄악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들 때문에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물론, 일반인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는지 알 수 없습니다.

2. 유대교 지도층에 대한 예수의 비유

유대교 지도층은 누구보다도 율법과 예언자들을 잘 안다고 자부하였고, 따라서 약속된 그리스도를 가장 잘 기다리고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적 기득권과 명예욕 그리고 세속적인 욕망에 눈멀어 말씀의 속뜻을 왜곡하고 있었으므로, 약속을 좇아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로서의 말씀 선포와 권능을 행함으로써, 백성들의 인기와 신망을 얻고 계신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라도 제거하려고 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그들은, 바로 자기들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가장 큰 암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교권자들을 가리켜, 풍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풍유는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로 주고 떠난 주인, 수확기가 되어 세를 받으러 간 종들에 대한 농부들의 악행, 세를 받으러 간 아들까지 죽인 농부들, 악한 농부들에 대한 주인의 처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도둑이나 짐승을 막기 위해 생울타리를 두르고, 발로 밟아 포도즙을 짜도록 높낮이가 다른 두 개의 구덩이를 파고, 창고나 숙소를 겸한 망대를 짓고는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여기서 포도원을 만든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선민 이스라엘을, 농부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 등 유대 교권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악한 농부의 비유
이 풍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귀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세심한 주의와 관심을 가지고 시설을 마련하셨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풍유의 진정한 가치는,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직접 적용될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즉,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포도원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을, 농부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사람을 지도하여 열매를 맺게 해야 할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에덴동산에서 신령한 열매를 맺는 삶,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게끔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씀을 거역하고, 사단의 유혹의 소리를 순종하는 바람에 죄의 종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죄인들을 멸망시키시는 대신에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좇아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빌려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살아 있는 동안에 목회자를 위시하여 모든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때그때 하나님 앞에 풍성한 열매를 바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5:5에 보면, 예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를 떠난 모든 선행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열매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영원부터 존재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비롯된 행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인은 수확기가 되자 마땅히 받게 되어 있는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기 위해 한 종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소작료를 주기는커녕, 작당하여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농부들의 악행을 안 주인은, 참고 또다시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한술 더 떠서 이 종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주인은 참고 또 다른 종을 보냈지만, 농부들은 그를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인은 또 참고, 혹시나 해서 그 외 많은 종들을 보냈지만, 역시 농부들은 종들을 때리거나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참 종인 선지자들을 보내어 선민으로서 갖춰야 할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의 삶을 구했으나, 오히려 유대교 지도층인 교권자들이 하나님의 참 종들이 나타날 때마다 더욱더 박해하고 죽여 버린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보낸 종들에 대한 교권자들의 악행이 곧 당신께 대한 것임에도 불구하시고, 분노와 징벌 대신에 관용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교권자들은 회개하기는커녕, 하나님의 관용을 악용하여 더욱 악하고 끔찍하게 행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길이 참으시는 사랑을 악용하여 더욱더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믿는다는 교인들 중에도 하나님의 관용을 깨달음의 기회로 삼기는커녕, 자기 합리화하면서 더욱더 심하게 거역할 기회로 삼는 이들이 있습니다.
농부들이 많은 종들을 죽이는 악행을 일삼는데도, 오히려 주인의 관용과 인내는 절정에 이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인은 악한 농부들에 대한 신뢰를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인은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자기가 사랑하는 외아들을 보내면서, “그래도 내 아들만은 공경하리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주인은 외아들이기 때문에 공경하리라고 기대했지만, 오히려 악한 농부들은 주인의 상속자가 왔으니 그만 죽이면 주인의 유업이 자기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최악의 살인의 기회로 삼아 주인의 외아들을 잡아 죽여 포도원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비유는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오신 예수님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2:4-에는,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주인이 와서 그 악하디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유대 교권자들에 의해 멸시와 천대 속에서 거부되고 살해 당하셨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로 부활하여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고, 이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3. 유대 교권자들의 부정적 반응

유대 교권자들은 뒤늦게 이 풍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 줄 알아채고, 예수님을 잡을까 했으나 무리가 두려워서 그냥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또다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종교 지도자들이라 해도 일단 세상적인 이권에 얽매이게 되면, 신령한 사실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우둔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4. 맺음말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셨고, 또 구원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빌려 쓰다가 때가 되면 다 반환하고 이 세상을 떠나가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목회자를 비롯한 모든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때그때 하나님께 바칠 열매를 맺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