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왜 복음전하기를 주저하는가? (행 01:6-11)

첨부 1


우리 사회의 현실의 최고의 병폐가 있다면 그것은 이기주의입니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이기주의적인 삶의 모습을 너무나 많이 발견합니다. 한 가정에서도 이기주의적인 삶이 한 가정을 파괴시켜 가는 것을 많이 보고 있으며(자기만 위해달라,자기 식구만 생각해 달라등) 한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하나님의 나라 전체적으로 볼때도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주목하며 극복하여야 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이기입니다. 자기중심적이며, 자기구원만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복종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복음의 역사에는 관심조차 없고 육신의 일에 잡혀 있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는 자기중심적 그리스도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가치가 구원에 있으며, 최고의 행복의 기준이 예수님에게 있다면 우리의 최고의 삶의 목표는 복음을 전하는 일일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기쁨을 맛보고,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끼고, 복음을 전하면서 구원의 감격을 맛보고,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뿌듯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가는 그러한 삶이 우리의 모습이더란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외면하고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세상적인 지위와 명예와 권세와 수없이 많은 일을 한다고 하여도 참된 만족과 행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느낍니다. 그리스도인의 축복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거저받은 복음을 거저 돌려 줄 때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 놀라운 복음을 증거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올바르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여서 삶에 기쁨과 행복을 맛보고, 하나님의 살아서 역사하심을 더욱 체험할 수있는 생애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복음전하는 것은
성령이 임하여야 합니다.-복음전도의 주체는 성령이십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입니다.‘성령이,성령이’라는 말이 계속되어집니다. 전도는 인간의 계획과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전도는 인간의 지혜나,방법이 아닙니다. 전도는 성령의 방법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성령의 하게하심으로 가능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이 직접 앞장서서 행하십니다. 다시말하면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안에서 나를 사용하시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위하여 사용되어지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알 것은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사라짐을 전제로 합니다. 나의 고집과 교만과 생각과 철학이 무너지고 성령이 지배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그럴때 비로서 전도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영적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골리앗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다윗의 지혜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권능이라는 희랍어는 영어의 다이나마이트 라는 단어입니다. 사도행전의 책장마다 능력이 폭발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행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사도들이 얻은 권능은 큰 권능입니다. 여기의 ‘큰’이라는 희랍어는 메가스라는 단어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메가톤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원자톤의 힘을 측정할 때 쓰여지는 단어로서 1메가톤은 다이나마이트의 100만톤의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은 2만톤의 위력이 있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위력은 100만톤의 위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윌리암 바클레이 같은 주석가는 이말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도들이 1백만톤의 다이나마이트의 거대한 은혜를 얻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다.”
그런데 이 권능은 외적인 것만의 표현으로 그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권능의 진정한 힘은 나 자신의 변화를 일으키는 권능입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권능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힘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꾸어 놓는 일 보다 어렵고 힘든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복음의 권능이 사람을 바꿉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사람의 생활과 생을 변화시킵니다.
나 자신의 변화가 없이는 전도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이 권능으로 나 자신이 변화되어서 복음의 역사를 나타내야 하고, 이 권능의 역사로 돌같은 마음을 부수고, 얼음같은 마음을 녹이고, 사탄에게 붙잡혀 있는 마음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동시적입니다.-내 식구도 구원시키지 못하는데 무슨 전도야 하면서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부터 하면되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점진적이 아니라 동시적입니다. 우리의 눈을 세계를 향하여 떠야 합니다. 텔레비젼을 보면 옛날과 다른 것이 있는데 옛날에는 우리나라의 집안 뉴스만이 방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반반 어떤 때는 더 낳은 비중으로 해외 뉴스가 방영 됩니다. 세계는 지금 한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아직 좁은 우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계적 복음의 비젼을 갖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의 관심을 전도에 돌려져야 합니다.
세상적이고, 정치적이고, 물질적이 관심에서 하나님에게로 촛점을 맞쳐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방법에,하나님의 생각에 촛점을 맞추고 그것을 따라 살 준비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좀더 영혼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촛점을 맞추고 그들을 주께로 인도할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예)고양이의 런던시내 구경에 고양이만 보고왔다.-
똑같이 비행기를 타고 갔지만 그곳에서의 그들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살지만 우리의 관심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볼때는 시인의 눈으로 보라, 사람을 볼때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라, 성경을 볼때는 죄인의 눈으로 보라!”

하나님은 지금 당신의 나라의 역사를 위하여, 복음의 역사를 위하여서 강권적으로 일하심을 몸으로 경험하고 왔습니다.
예)통역자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우리는 지금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보다는 사탄의 나라의 역사와 임함에 동참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함께 하나님께 부름받은 성도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가정에 임하고, 이 지역에 임하고, 이 민족에게 임하며, 전세계에 임하기를 기도하면서 그 역사를 위하여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이 위대한 복음을(성경책을 들고)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하기 위하여 먼저 성령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이 제단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이 서부제단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쳐지는 제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