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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할 때가 강할 때입니다 (고후 1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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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독교를 지금의 완전하고 강한 기독교로 만들었던 인물은 아무래도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기독교의 교리를 완성하였으며,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증거하여 세계적인 기독교로 자리잡도록 하였습니다. 그에게 엄청난 시련과 훼방이 있었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울 처럼 강하고 능력있으며 큰 일을 행한 일꾼은 없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그런 힘있고 능력있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꿈을 가져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보면 바울 자신은 자신처럼 약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이였다고 고백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약하다’는 말이 5번이나 반복되어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남모르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것을 ‘육체의 가시’라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의 가시를 그는 나아가서 ‘사단의 사자’라고 말합니다.
이 육체의 가시는 무엇이냐 여러 구전에 의하여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카톨릭에서는 바울의 육체적 욕구를 말한다고 하며, 어떤이는 간질, 안질, 말더듬는 것등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이 육체의 가시는 그에게 있어서 보통 괴롭고 아픈 요소임에 분명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시’라는 헬라어의 말 뜻은 ‘말뚝, 끝이 뾰족한 나무 막대기’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육체를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 요소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육체의 가시가 그에게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본문은 그 기도를 세번하였다고 하는데 이 말은 문자적인 세번이라기 보다는 여러번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도바울은 그가 기도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거절하셨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그에게 기도를 거절하시므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경험할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어떤 모습으로 응답되든지 하나님의 응답으로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하나님의 기도 응답의 네가지 모습-‘알았다. 안된다. 기다려라. 여기 더 좋은 것이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실 수도 있습니다.
예)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도 거절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과 협박적인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겸손히 맡기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실 때에는 분명하신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기도를 거절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로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큰 은헤로 인하여 교만하고 남보다 잘난줄 알다가 자빠지고 은혜의 자리에서 넘어질까봐 기도를 거절하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더욱 크신 뜻이 있어서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기도가 거절될 때에도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더욱 주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더욱 크신 풍성한 은혜를 덧입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히 좋은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아름답고 복된 삶으로 살아가도록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좋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헤안에서 하나님은 선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심을 항상 믿고 그 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는 하늘의 평안이 깃드는 것이며,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쁜 노래를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지금의 삶에 자족하며 만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록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괴로움을 당하는 생활 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만족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서에서 그가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있는바를 족한 줄로 알며 지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늘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풍요로운 삶을 살려면 하나님께 날마다 더욱 큰 무엇인가를 요구하기보다는 현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찾아서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지금 나에게 없는 것 남에게 있는 것만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아쉬워하고 원망하고 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자신을 향하여 볼수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남의 남편만보고 내 남편 불평하지 말고 내 만편을 가만히 보세요 세상에서 제일 휼륭한 남편임을 알것입니다.
남의 아내만 보고, 테레비나오는 여자만 보고 자신의 아내 구박하고 바람피우지 말고 자신의 아내의 모습을 가만히 보세요 그 희생, 그 인내, 그 아름다움이 세상에서 제일 휼륭한 아내일 것입니다.
(부모도, 집도, 자가용도-)
예)아이들 보면 무슨 장난감가지고 놀다가 다른 아이가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것 버리고 그것 달라고 울고 투정합니다. 무슨 심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일이 우리들 속에서도 많아요.
예)누가 말하기를 원망은 ‘악성건망증증세’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좋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선물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는 다른 것만보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먼저 지금의 자신에 대해서 만족하시고 감사합시다. 지금의 모든 것도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맞추어서 주신 제일 좋은 은혜임을 믿고 자족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행복하게 아름답게 살아가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적은 일에 충성한 우리의 삶에 큰것으로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고 오히려 기뻐합니다.
우리는 좋은 것, 강한것, 남보다 뛰어난 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기뻐합니다.
예)대학교 떨어진 아이에게 엄마가 울면서 하는 말-“이제 창피해서 어디를 다니겠니, 우리 친구들이 무어라 하겠니, 이런 망신이 세상에 어디에 있니”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던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엄마는 내가 대학교에 떨어져서 내 앞길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엄마 망신당하는 것만 걱정합니까 하면서 집을 뛰쳐 나갔다고 합니다.
정말 가만히 보면 자식 대학교 가고 안가는 것 부모들 자신들 자랑거리로 삼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마 대학 부정입학문제도 그런 측면이었을 것 같아요.
그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또한 떨어졌다고 인생이 다 끝난것도 아닙니다.
마지막을 보면 됩니다. 이것은 인생의 승리도 패배도 아닙니다. 다만 달리는 코스가 다른 겁니다. 각자 다른 코스에서 어떻게 달리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 그 크스를 제대로 못달리면 그는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것이고, 대학을 못같어도 그 코스를 잘달리면 인생의 승리자가 될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들보면 조그만 그릇산것 자랑합니다. 옷 산것 자랑합니다. 아파트 새로 이사가면 그것 자랑합니다. 자랑하면서 상대방이 기죽고 부러워하면 그것보고 인생의 재미를 느끼는 취미를 가진 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런것 없으면 기죽고 인생까지 비관하고 시집온것 까지 후회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꼴불견이지요.
왜 인생을 그렇게 삽니까 그러니 예수 믿으면서도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고 마음에 평안이 없지요.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시고 없어도 그것으로 인한 유익을 찾으면서 감사하고 자랑할 수있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예)조영춘전도사-

왜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합니까 그는 말씀하시기를 9절에보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합니다.
10절에서는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함이니라”고 하십니다.
다시말하면 그 분은 약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욱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그 약함이 약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강한 존재로서 바뀌어 감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약함으로 인하여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열등의식에 빠지거나 절망과 좌절의 삶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약함을 오히려 축복의 기회로 삼고, 더욱더 신앙적 성숙을 위한 기회로 삼고 도전하고 남보다 애쓰면서 노력하여 더욱 더 강하고 휼륭하고 축복된 존재로 바뀌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저는 개인적으로 모든면에서 부족함이 없는데도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봉사하며 겸손히 충성하는 성도님을 볼때에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부분이 과거 그들의 약함을 신앙의 힘으로 강함으로 바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생활이 여유가 있어져도 신앙의 뿌리를 가지고 열심히 사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약함과 육체의 가시가 결코 우리의 인생을 망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적인 도전으로 그것을 축복으로 바꾸는 지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도스토예프스키-그는 1821년에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이며 난폭하였습니다. 돈을 조금 벌었을 때에 땅을 샀는데 일꾼을 너무나 혹독히 부려서 결국 그의 나이 열여섯살때에 그가 보는 앞에서 농노들에 의하여 살해됩니다. 그 비참한 광경을 본 그는 그때의 충격으로 간질병이 걸려 평생을 고생하게됩니다.
그는 28살되던해에 한 정치집단에 가입했다가 소위 ‘페트라세프스키’라는 사건에 말려 반역자로 체포되어서 사형을 언도받고 시베리아로 끌려 갑니다. 가던 중에 한 시골역에서 차를 대접하는 장교의 부인을 만나게 되는데 죽은의 공포로 인하여 차를 거절하자 그 장교의 부인은 가슴에서 자은 책을 꺼내어 줍니다. 그것은 신약성경이었는데 그는 움추크 감옥에서 죽음의 날을 기다리면서 그 성경책을 읽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에 눈을 뜨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삶의 용기와 힘을 갖게 됩니다. 당시 감옥에서 쓴 형에게 보내는 편지중에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형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제 나는 최고의 인생을 살것입니다.”
결국 그는 총살형을 받기위해서 형장으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기적같이 총살하기 2분전에 황제의 특별사면령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고통의 세월과 간질병이라는 육체의 가시를 신앙으로 이기고 세계최대의 작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역사는 좋은 환경과 잘 갖추어진 조건에서 아름답고 축복의 인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함과 부족함과 우리의 심각한 약점중에서 우리를 강하고 휼륭하고 축복된 존재로 창조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육체의 가시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육체의 질병일수도 있으며, 가난일수도 있으며, 배우지 못한 짧은 학벌일수도 있으며, 신체적인 장애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모르는 약점이나 과거, 혹은 좋지못한 환경과 조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육체의 가시가 자신의 약함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을 통하여 오히려 더욱더 휼륭하고 더욱 큰 축복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약함이 곧 강함입니다.
육체의 가시가 무엇이든지 그대의 약함이 무엇이든지. 한가지 포기하거나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처럼 오히려 그것을 감사하면서, 내일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그 약함으로 인하여 더 큰 신앙의 역사로 하나님께 인정받아서 더욱 더 멋지고 아름답고 축복되고 휼륭한 인생으로 창조되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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