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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세사람의 위대성 (마 18: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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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생활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더욱 크게 힘입을 수가 있을까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며 공을 들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을 구할 수있는 길은 혼자만의 외로운 신앙의 삶이 아니라 두 세사람이라도 하나가 되어서 마음을 모아 기도할 때에 경험되어 질 수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혼자만의 외로운 신앙을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 자신도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시는 역사를 이루실 때에도 당신 혼자 하시지 아니하시고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만드시고 홀로 있음을 안 좋게 보시고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과 삶을 말할 때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세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한자리에 함께 있고 함께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도 한 집에서 아이 낳고 평생 함께 살아도 하나되지 못하고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거기에 행복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하나되는데에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마음이 하나되고 뜻이 하나가 되면 모든 어려움을 서로가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되지 못하면 될 것들도 허물어지게 됩니다.
‘군중 속에 고독’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무슨 의미입니까 아무리 사람들이 많은 곳에 모여도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안에서도 부부가 혹은 자녀들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고독하고 심지어 절망하는 이유는 하나되지 못함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열어 줄수도 없고 그리고 남의 마음과 생각을 받아 들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하나되지 못함으로 오는 결과입니다.
사단의 하는 일 중에 가장 큰 일은 우리의 하나됨을 훼방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단이라는 말의 의미가 ‘훼방하는 자, 분열자’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사단은 어떻하든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됨을 막아 서로 물고 뜯고 싸우게 합니다. 분열되게 만들고 결국은 갈라서게 합니다.
하나로 뭉치면 큰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흩어지면 아무런 일도 못하며 힘을 상실하게 됩니다.
옛날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을 보세요 마음이 하나가되자 그들은 바벨탑을 쌓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언어가 혼동되어 마음이 분열되고 하나가되지 못하자 그들은 각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주먹을 꼭 쥐면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힘이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위하여 하나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그 나라를 위하여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아 하나가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돈이 없어 못한다. 능력이 없어 못한다. 시간이 없어 못한다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서부교회도 하나됨이 필요합니다. 비록 작은 교회이지만 믿음으로 하나되고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아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으로 하나가될 때에 우리 교회를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모든 성도 한사람 한사람에게 능력을 주고 은혜를 주셔서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켜 나가실 것입니다.
20절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한 마음이 되어 하나가 되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것이라면 우리 예수님이 친히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그곳이 바로 행복의 자리며 축복의 자리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우리 교회에서도 나타나야 하며, 여러분의 가정도 모든 식구가 하나가되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있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천국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두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시리라.”
너무나 놀랍고 감동스러운 약속이며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되고 뜻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혹시 서로가 질시하고 투기하고 미워하며 마음이 갈리고 분열된다면 거기에는 어떤 하나님의 은혜나 역사도 경험되어지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슬픔과 진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될 수있나요
우리는 먼저 18장 전체의 말씀을 보도록 하십시다. 이 18장에는 몇가지의 주제가 일관성있게 기록되어 있는데 먼저는 1-5절까지는 어린아이가 되라는 것입니다. 6-10절까지는 형제를 실족시키는 문제가 나옵니다. 11-14절까지는 잃어버린 양 한마리의 비유가 나오며, 오늘의 본문은 범죄한 형제의 문제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용서에 대하여 나옵니다. 이 모든것들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해시켜가시는 장면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인데 인간관계란 다름아닌 ‘하나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1.어린아이 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항상 누가 더 큰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투었습니다. 그러한 욕심으로 인하여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되는 제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하나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분명히 욕심때문입니다. 남보다 더 높아지고 나아지고 소유하고 싶은 그런 욕심, 더 사랑받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은 그런 욕심이 우리의 관계를 하나되게 만들지 못합니다.
어린아이 같이 단순하고 순수하여야 합니다.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출 수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서로에게 있을 때에 우리의 관게는 하나될 수가 있습니다.

2.형제를 실족시키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는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모든 면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서로의 만남에서 상처를 입기가 쉽습니다.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에 상처가 되어 실족하기도 하고, 서로의 입장차이에서 오는 충돌에서 상처가 되어 실족하게도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족은 서로의 좀더 성숙된 인격과 조심성있는 교제안에서 충분히 극복될 수가 있습니다. 7절에보면 “실족케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자신의 주장만을 내 세운다든가, 남을 업신여기거나, 지켜야 할 선을 마구 넘는 그러한 행동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나로 인하여 상처입고 실족하여 한 영혼을 지옥에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서로가 조심하고 하나됨을 지킬 때에 우리의 공동체는 서로에게 큰 유익과 은혜가 될 뿐 아니라 큰 일을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한 사람을 한 사람을 소중히 생각 하여야 합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는 양 한마리가 아흔 아홉마리의 양보다도 귀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14절 “이와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서로가 자신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을 중요시 여기지 낳는다면 거기에 하나됨은 없습니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남도 소중히 생각하고 남의 영혼과 삶을 볼 수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이러한 모습으로 만남을 가진다면 거기에는 하나됨의 멋진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4.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만약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에 어떻하여야 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먼저 혼자 찾아가서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되면 몇사람을 데리고 가고 그래도 안되면 교회에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레도 안될 때에 그를 이방인처럼 취급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시 생각할 것은 형제의 범죄 사실을 알았을 때에 먼저 소문을 내고 남에게 그 사실을 퍼트리는 일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형제가 자신에게 범죄하였을 때에도 그 사람을 홀로 찾아가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예)어떤 교회의 여신도가 남을 비방하고 다녔다. 결국 일이 잘 끝나고 그 여신도가 사과하였을 때에 베게속에있던 털을 뽑아 산에 올라가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것을 줏어오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말이란 한번 나가면 다시 담을 수 없는 물과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키기도 하고 하나되게도 합니다.
우리의 일은 진정 범죄한 자를 정죄하는 일이 아니라 범죄한 그를 회개시키는 일입니다. 그로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안될 때에는 죄의 오염과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5.그리고 마지막으로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실수할 수있고 범죄할 수있음을 압니다. 우리의 교회에도 결코 완전한 사람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것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임에서 중요한 일은 서로 용서할 수있는 마음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견지되지 않으면 그 모임이 하나되기는 어렵습니다.
예)용서에는 4가지가 포함된다고 합니다.
“지난일을 잊어주는 것, 원망을 포기하는 것, 인내해 주는 것,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진정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이 없으면 용서란 없고 용서가 없는 사랑이란 없습니다.
예)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불-잘발장 그는 빵 한 조각을 훔친죄로 20년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합니다. 출옥하지만 전과자라는 이유로 외면을 당합니다. 마지막 찾아간 사제관에서 뜻밖의 따뜻한 영접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쉬는데 이른 새벽 버릇처럼 은식기를 훔쳐서 나옵니다. 그러다가 순경에게 붙잡혀 사제관으로 끌려 옵니다. 그때 사제는 “은 식기는 내가 준 것인데 당신 왜 은 촛대는 가져가지 않았나요”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쟝발장은 충격을 받고 감동을 받아 새로운 인간으로 부활을 경험합니다. 20년동안 감옥에서의 고생이 그를 변화시키지 못했지만 한 순간의 용서와 따뜻한 사랑이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위하여 초청된 우리는 하나되어서 그의 뜻을 이루며 더욱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삶을 경험하여야 합니다.
한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갈려있지 않습니까 서로를 향하여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은 없습니까 용서하지 못한 마음이나 남을 실족시키는 분별없는 행동은 없습니까 우리는 어린아이같이 낮아져서 서로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되어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합심하여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서로 힘써 모여 간절히 기도하며 함께 묶고 함께 풀어거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서부교회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하나됨을 지키고 있나요 서로 하나되어 모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더욱 크신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며 그 분의 위대한 뜻을 이루어 나가는 교회가 되도록 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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