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할 수 있습니다 (빌 04:13-20)

첨부 1


독일의 신학자였던 본 회퍼는 “요새 교인들은 싸구려 예수를 믿으려 한다. 십자가없는 예수, 편한 예수, 고통없는 예수를 믿으려한다.” 고 말했습니다.

빌립보서를 마쳐가면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새로워진 존재로서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터득하여야 합니다.

빌3:20절에보면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가진 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시만권은 대단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인구의 거의 절반이 노예이며, 나머지 가운데 절반은 자유인이고, 그리고 나머지가 로마의 시민권자였습니다.
이 시민권은 로마군인으로서 21년이상 근무한 사람에게 주어졌으며, 또한 세금을 많이 내고 여러해 충성한 사람이 돈을 많이 내고 시민권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자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소유한 사람.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3:18절에 보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가 있다고 노 바울사도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저희의 신이 배”라고 합니다. 신은 하나님을 의미하며 배는 창자라는 말입니다.
여전히 육체의 향락과 눈앞의 이득만을 생각하며, 땅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능력을 부인하는 잡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원수며 교회의 원수며, 십자가 복음을 막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조차 할 수없었던 하늘나라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 나라를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시기 위하여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셨던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복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중의 한가지가 자족하는 삶입니다.
현재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일줄 아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가난하면 가나한대로, 못 배웠으면 못 배운대로, 못났으면 못난대로, 키가 작으면 작은대로 등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저는 교육학을 조금 공부했는데 특별히 특수교육을 일부러 한1년정도 배워봤습니다.
그때 만났던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뇌성마비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는 그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손님이 오면 별채에 갇아둡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지위가 있었고, 돈도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심방도 못오게 하고 그 자식을 철저히 숨겼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설교를 듣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회개합니다. 자기같은 죄인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사랑하여 주신 예수님앞에서 자기는 자기 자식임에도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의 체면이나 명예로 인하여 그 자식을 오히려 미워하고 감추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그리고는 그날 그 자식을 끌어안고는 잘못을 빌었답니다. 그리고 울면서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이 자식을 선물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그 주일날 교회로 자식을 데리고 나갑니다. 사람들은 놀랍니다. 그리고는 진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치료하였습니다. 마음도 편하였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아이가 상당히 많은 치료의 효과를 얻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 그대로, 다른 사람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며 감사하여야 합니다.

어디에도 처할 줄아는 사람뿐아니라, 어느 누구와도 가까이 하며 사랑할 수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기독교 윤리학자인 리챠드 니버의 응답받는 자아라는 책에서 그는 인간의 유형을 세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서 강조합니다.

1.목적지향적인 사람.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주의자입니다.
“강도”같은 사람입니다.

2.자기 규범에 메인 사람입니다.
어떤 규례를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스스로 지켜가는 사람입니다. 소위 말하는 지성인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은 상관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살아갑니다.
이 역시 이기주의자입니다. 레위사람이나 제사장같은 같은 사람입니다.
자신 스스로 상당히 거룩하고, 자기는 대단히 옳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죄짓지 않고 착하고 깨끗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남을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남의 일을 이해하지 않고 앞뒤가 꽉 막힌 사람입니다.

3.책임적인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편에서서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잘못한 자식을 혼내기만 하는 것이 나의 책임도 느끼면서 같이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사회의 잘못을 욕하기 전에 이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우리는 남의 잘못과 허물을 말하고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책임을 느끼고 노력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예)목회를 하다보면 목사에 대하여서 참 많은 말을 합니다. 목사에 대한 평이 참 다양하고 많습니다. 좋은 평도있고, 안 좋은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평이 좋든 나쁘든 싫어합니다. 오히려 뒤에서 조용히 목사를 위하여 기도해주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을 원하고 있습니다.
목사의 손과 발이되어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갈 일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제 처가 저에게 조용히 권고하기를 설교시간에 입술로 빨지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지말고 입술에 바르는 연고 하나 사다가 주는 것이 더 옳은 거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당장 사가지고 와서 미안하다고 합디다.

우리는 비판하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진정한 책임을 느끼고 함께 힘이되어주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것은 목사가 무슨 대접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17,18,19절에 보면 오히려 본인들에게 유익이 있고 하나님의 더욱 큰 축복을 받기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책임적인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15절에 보면 바울 사도의 어려움을 도와준 교회가 빌립보교회밖에는 없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욕하고 말은 많이 했지만 도와준 교회는 한 교회뿐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중에 자신의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내게 능력주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있느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어려우며, 사단의 역사가 드세다고 하여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다 살수가 있다는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약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있는 능역을 가진 자 입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잠재능력이나 훈련된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나는 할 수있다’를 외치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요즈음은 ‘마인드 콘트롤’이나 ‘氣’를 강조합니다.

이 능력의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약한 존재입니다. 도대체 이 세상을 살아갈 만한 힘을 가지지 못한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때에 그 능력으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로이드 죤스는 이 부분을 강해할 때에 “영적 수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서 이 세상을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돗물이 안나오는 이유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원지에서 공급을 중단하였을대이며, 또 하나는 나의 수돗꼭지를 열아놓지 않았을 때입니다.

우리가 능력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도 이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의 주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 분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지금은 조금 물이 나오고 있을 지 모르지만 언젠가 끊어집니다. 인간이 혼자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약한 존재임을 크게 깨달을 때가 반드시 옵니다.

에)어떤 사람은 “고난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글을 쓰고 권력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한계를 노출하였으며, 실패했습니다. 몇주전의 시사주간지의 타이틀이 “아무개가의 몰락”이었습니다.

하나님없이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성공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실패하며, 인간의 한꼐를 느끼면서 이 세상을 불행하게 마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기도하지 않고, 말씀의 순종도 하지 않으면서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들은 능력의 주님을 믿으면서도, 주님은 끝없이 능력과 은헤를 주시는대도 그것을 자신의 잘못된 신앙으로 누리지를 못합니다.
마치 물이 자신의 집안까지 들어와 있음에도 수도꼭지를 틀지 않아서 물을 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능력의 주님을 의지 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아름답고 복된 생애를 살기 위하여서, 승리와 능력의 삶을 살기 위하여서,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그 분이 주시는 능력과 은혜를 늘 얻어 누리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가만히 보면 정말 보잘것 없는 존재임에도 교만하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바울사도는 정말로 능력있는 힘있는 삶을 살아가지만 그 능력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온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겸손한 삶을 삽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면서 교만한 인생이 되지 마시고, 능력과 축복의 인생을 사시면서 겸손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분명히 배울 것은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다 살아주는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라는 말을 확신 속에서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능력으로 행동하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시니까 우리는 다만 기도하면 된다고 합니다.
자신은 기도만하고 교회생활좀 하면 책임은 다 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없고 하나님에게만 돌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안에서 최선을 다하여서 노력하여야 합니다.

학생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내가 열심히 공부하여야 합니다.
사업가는 “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며 애써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행복도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내가 창조해 나가야 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서 삶의 패턴이 바뀐 것입니다.
이제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법이 달아진 것입니다.

전에는 어떻하든 내가 해 보려고 노력한 삶이지만, 이제는 능력을 주님께 구하면서 그 능력을 받아서 나의 일을 열심히 행하는 삶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할 수있습니다. 우리의 이 짧은 인생에서 멋지고 아름다운 삶. 성공하고 승리하는 삶.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답게 복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힘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내게 능력을 공급하시는 그 분 안에서만 가능 한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있느니라.”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