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사랑이 기적을 일으키는 지점

첨부 1


하인리히 뵐 의 아름다운 만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는 38세의 잔인하도록 가난한 아내 캐테가 불행 속에서 언제나 추억하는 한 가지 사건이 반복되어 등장한다. 그것은 그녀의 남편 후레드가 23세때에 그녀를 향해 청혼해 오던 어느 오후의 몽상적인 음성이다.

후레드는 도서관 직원인 23세의 젊은 캐테에게 이렇게 청혼한다. '난 일생동안 나와 함께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여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 짧고 기지에 찬 한 마디의 청혼은 캐테의 일생을 변화시킨다. 그녀는 후레드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다섯 아이를 낳으며, 두 아이를 전쟁에 잃는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저주하며 떠나버린 폐허의 쾰른시에 남아 집요하도록 빈 도시를 지켜 나간다.

절망 속에서 그녀에게 삶의 향기와 근력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언제나 남편의 그 적막한 청혼의 음성이다. 남편 후레드는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몇 번이나 탈영을 했을 정도로 그들의 연애는 전율과 열정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자기 자신처럼 알고 있었다. 철저한 가난을 직시할 수 없어 가출해버린 남편을 타인들은 비난했지만 캐테는 남편의 고통을 남편 자신보다도 더 깊고 확실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타인을 그저 타인만큼 안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 인간이 타인을 자기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애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신앙으로의 전이(轉移)인 것이다.

사랑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이 지점이다. 캐테는 열렬한 연애를 통해 남편을 자기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랑의 경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전쟁과 절망에 만취된 슬픈 가사자(假死者)인 남편을 구원하게 되는 불가사의한 기적을 탄생시키다.

결혼이란 인간을 일인칭의 삶에서 이인칭의 삶으로 전이시킨다. 결혼은 또한 인간을 고독한 단수(單數)에서 더 고독한 복수(複數)로 이행시킨다. 그리하여 결혼은 한 인간에게 제 2의 탄생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