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결혼이 곧 졸업

첨부 1


초창기 이화학당의 학생들은 당시 조혼풍습 때문에 결혼하고는 학교를 떠나는 일이 많았다. 1908년 이전까지는 과년한 학생을 학당에서 결혼시켜 주기도 하였다. 이 때 결혼은 곧 졸업이었다. 본인의 의사보다는 보호자격인 선교사가 신랑을 결정했고, 신부는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 쓰고 학교에서 해주는 간단한 혼수를 가지고 시집갔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혼인과 다를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선교사들은 신랑이 반드시 기독교인, 그것도 감리교 신자가 아니면 '재미없소' 하며 선뜻 결혼시키려 하지 않았다. 당시 졸업증서 대신 받는 결혼증서에는 두 기둥으로 세워진 기와집에 성경 말씀이 씌어 있고 중매자와 주례자 그리고 신랑 신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