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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가 낫고자하느냐? (요 0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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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은 흰자위와 검은 자위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사물을 보는 것은 검은자위입니다. 왜 그럴까요 탈무드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의 인생이 어두울지라도 너의 현실이 검은 눈동자처럼 캄캄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아라 오히려 그 어두움을 통해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신자나 불신자나 똑같이 인생의 고난을 경험하고 시련과 역경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또한 시련을 극복하는 길을 신자는 알고 있지만 불신자는 그것을 모릅니다.

우리가 시련을 당하여 아프고 괴로워도 소망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분은 우리가 아프고 괴로워서 고통하고 방황할 때에 우리를 잊지않고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오셨습니다.
베데스다라는 뜻은 베스는 집이라는 뜻이고, 에스더는 자비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합해진 것인데, “자비의 집” 혹은 “불쌍한 사람을 돕는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곳에는 한 연못이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데 그 때에 그 못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의 병은 무슨 병이든지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학자들에 의하면 그곳이 온천이었는데 간헐천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가끔 온천이 터져서 왈칵 뜨거운 물이 솟구치면서 물이 빙빙도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그러한 소문으로 인하여 그곳에는 많은 환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한가닥의 소망을 가지고 세상에서는 버려진 병자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가장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곳을 예수님이 찾아가셨습니다.

이 분이 예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어떤 종교가 어떤 신이 이러한 인생을 찾아 왔습니까
그 분은 이 땅에 인생을 찾아오셔서 인생을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버려진 곳, 냄새나는 곳, 절망이 있는 곳, 가난하고 슬픔당하여 괴로워하는 곳을 지금도 찾아가시는 분이십니다.

예)상처투성이의 사마리아여인.
열등감과 삐뚤어진 성격의 소유자 삭개오.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나인성 과부.
죽음으로 애통하는 나사로의 집.
일곱귀신이 들려 고통하는 막달라 마리아.
인생의 실패로 낙심하고 돌아가는 엠마오의 제자들.
두려움과 절망으로 슬퍼하는 제자들.

그리고 지금도 아파하고 고뇌하는 바로 당신을 예수님은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약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에 주님조차도 우리를 가볍게 생각하시고 우리를 외면하신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주님의 관심의 대싱임을 잊이 말아야 합니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하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더구나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갔을 때의 시기를 돌아보십시오.

그 시기가 명절 때입니다.

유대에는 일년에 세 번의 명절을 보냅니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입니다. 이 때에는 전국에서 예루살렘으로 사람들이 올라오는데 그 때의 수가 수십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모두가 명절을 맞아 흥겨워하고 즐거움에 도취되어있을 때에 예수님은 소외된 베데스다 연못가의 사람들을 찾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요, 기독교의 정신인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 이 사랑을, 이 정신을 잃고 있지는 않는지요

예)어느 교회에서 쫏겨난 흑인소년이 울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나도 저곳에서 쫏겨났다고 하시면서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잊지않고 찾아오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외롭고 고독하다고 느낄 그 때에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내가 병들어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에 내 곁에 계시는 주님을 볼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시련과 아픔으로 고통할 때에도 나에게 오셔서 힘주시고 용기 주시는 예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고치시고 나를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연못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특별히 38년된 병자에게 가까이 가셔서 그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질문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질문은 엉뚱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다.

1.낫고자 열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시107:9)“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고전12:31)“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벧전2:2)“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고전14:12)“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한가지 사라지는 영적인 요소가 있다면 사모함입니다.
“간절함”으로 사모하는 마음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38년된 병자는 적어도 낫고자하는 열망이 아직 식지 않았습니다.
38년동안이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절망하지 않았고, 낫겠다고 하는 신념과 소망을 품고 끓임없이 오늘도 연못가에서 외롭고 힘들게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문제앞에서, 시련 앞에서, 질병앞에서, 또한 더욱 큰 은혜받기 위하여, 이러한 식지않는 열망,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열망,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주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2.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낫고 싶은 열망은 있지만, 끝없는 도전은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안되더란 말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요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없이는 불가능한 존재. 그것이 인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될 때에는 이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병들어보고, 실패해보고, 어려움을 당해보면 압니다.
절실하게 이것을 깨닫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있는 것입니다.

예)나폴레옹-“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1812년 러시아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엘바섬으로 유배되어갔지만 1815년 탈출하여 스스로 황제가 되어 유럽을 점령하기 위하여 전쟁을 하는데 영국의 웰링턴이 이끄는 연합군과 함께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전쟁하는데 그곳에서 대패하여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습니다.
그는 예수를 조롱하고 핍박했던 자였습니다. 그의 부하들도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였으며,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워터루전쟁에서 자연의 재해앞에 무너져내리고 그가 죽어갈 때에 “예수 당신이 이겼소”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가능한 것보다 불가능한 것이 훨씬 많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낮아질 수 있는 사람이 마지막에 승리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예수님만이 문제의 해결자이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8년동안 아무도 그 무엇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그의 질병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일순간에 치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풀 수 없는 수없이 많은 문제의 해결자는 오직 예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상이나 다른 것에 도움을 구합니다.

예)어느 목사님이 시골길을 가는데 큰 고목나무가 있어서 잠시 쉬었다가 가는데 어떤 여인이 그 나무에 와서 음식을 차려놓고 절하고 빌더랍니다. 그래서 무엇을 비느냐하니 복을 달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나무가 왜 속이 이렇게 썩은 줄 아느냐 이것은 자기가 복을 줄수도 없는데 당신같은 사람들이 자꾸만 와서 복을 달라고 하니 답답해서 이렇게 속이 썩었다고 말하고 예수를 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 분이 우리 인생의 창조자이십니다.
예수 그 분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예수 그 분이 우리의 구원자 이십니다.
예수 그 분이 우리의 삶의 문제 해결의 열쇠이시며, 복의 근원이십니다.
예수 그 분은 우리의 치료자이십니다.
예수 그 분은 우리의 진실한 친구이십니다.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가 내 인생의 왕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마경일 목사님-그 분은 경기도 개풍군 출신이셨습니다. 자기 가정 형편에 대해서 소개를 하는데 얼마나 가난했던지 하루에 두 끼 먹으면 잘 먹었답니다. 그리고 춘궁기가 되면 두 끼도 죽이나 먹고 살았답니다. 그리고 자기 할아버지는 서당의 훈장인데 사랑방에서 아이들 대여섯 명 놓고 “하늘 천, 따 지”나 가르치고 거기서 무얼 조금 받게 되면 다 술로 먹어 버렸답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는 술 주정꾼으로, 집에 들어올때마다 싸우고 들어왔고, 돈이 조금 생겼다 하면 도박을 해 버리니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고 있는때 자기가 국민학교 다니던 때인 1922년에 개성에 있는 감리교에서 자기네 동네에 전도를 하러 왔었답니다. 서양 선교사를 앞세우고 전도사님들, 목사님들이 뒤따라 와 서는 북치고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리고 서양 사람이 와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것이 큰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득 모여든 다음에 전도 강연을 했다는 것입니다. 즉 전도 집회를 한 것입니다. 그때 거기에서 예수 믿을 사람은 작정을 하라고 했더니 세 가정이 작정을 했는데 자기 아버지가 어떻게 거기 갔다가 예수를 믿기로 작정을 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결과 거기에 교회가 세워지고 첫시간부터 참여 하고 그 다음에는 술을 끊고, 도박을 끊고, 싸움질하던 것을 안 하고, 땅 한 평도 없었지만 이제는 남의 소작을 부쳐서 아주 착실한 농부로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중학교 갈 형편이 전혀 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을 해서라도 중학교 보내 줄테니까 가라 해서 결국 송도에 있는 고등학교까지 가서 졸업을 했습니다. 그가 졸업하고 난 다음에는 감리교 신학교에 갔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미국 유학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감리교에서 아주 크게 일하다가 6년 전에 은퇴하신 유명한 목사님입니다. 자기가 이렇게 된 것은 온전히 예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자기 집안에 예수님이 안 찾아 오셨던들, 자기 집안이 예수님을 못 만났던들 자기의 인생은 비참했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예수님을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을 했고, 예수님이 자기의 가정을 찾아와 주는 데서부터 자기의 삶은 즉 자기 가정의 삶은 새출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분을 변화시키고 그 가정을 새롭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
식구조차 지쳐서 돌보지 않고 신음과 아픔만이 가득차고 냄새나고 버려진 곳, 고통당하고 천한 병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베데스다 연못을 말없이 제자들조차 떼어놓으시고 홀로 찾아가셨던 예수님!
그리고 38년동안 풀지못했던 죄의 문제, 그리고 고치지 못했던 자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아파하며 신음하던 죄인인 동시에 병자였던 그를 만나 그를 고치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던 예수님!

이 예수님이 지금도 갖가지의 질병과 죄의 문제와 삶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아파하는 당신을 찾아오셔서 당신의 마음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가정의 문제(자녀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 부모님과의 문제, 동기간의 문제등)로 갈등하고 고통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을 주님은 찾아가셔서 그 가정의 주인이 되셔서 문제를 해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업과 직장의 문제로 고민하고 아파하는 자들에게도 주님은 찾아가셔서 새롭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새길을 열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이곳에 찾아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그 분에게 고백하십시다.
“주님 나는 치료받고 싶습니다. 나의 육신의 질병을, 나의 마음의 상처를-그리고 나의 가정을 고쳐주옵소서. 나의 삶을 고쳐주옵소서. 나의 사업을 고쳐 낫게 하옵소서. 나는 주님을 사모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 내게 오셔서 나를 만지시고 오랫동안 병들어있는 나의 육신과 나의 영혼과 나의 삶과 나의 생활을 고쳐 낫게 하사 새롭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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