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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지에서 생긴 불행 (막 11: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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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한 농사꾼이 시장에서 거울 하나를 사왔습 니다. 이 농사꾼은 거울을 보고는 하도 신기해서 감추어 두었다가 심 심하면 꺼내보고 웃곤 했습니다. 어느날 그 부인이 남편의 행동이 수 상해서 장롱 속의 거울을 꺼내 보았습니다. 그러자 거울 속에는 웬 젊 은 여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부인은 시어머니께 달려가서 울며 말을 합니다. 어머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남편이 저 몰래 계 집을 숨겨놓고는 밤마다 만나 속삭이지 않습니까 며느리의 말을 들 은 시어머니는 거울을 받아들고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방을 나 서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바보같은 녀석, 다 늙어빠진 할망구를 데 려다가 무얼하겠다고.

 브라우딩은 무지를 순수가 아닌 죄라고 했으며, 세익스피어는 무 지보다 더 지독한 어두움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사 랑 중에는 행복한 사람도 있고, 불행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불 행한 사람의 인생은 어떠한 것입니까결혼에 실패한 사람, 아니면 사 업에 실패한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인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정이나 사업의 실패 를 두고 불행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행으로 표현되는 결혼이나 사업의 실패는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계기가 있기 때문입니 다.

 그러면 진정한 불행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대와 희망이 실의와 좌 절, 슬픔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 생을 얻으리이까 (17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 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20절) 위의 말씀에서 우리는 기대와 소망이 슬픔과 근심으로 변한 비극적인 인간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길에 나가실 때 한 사람이 달려와 꿇어앉아 물었 습니다.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네가 어째해서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 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 셨느니라 이때 이 사람은 모두 지키었다가 말합니다. 이것을 본 예수 님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네게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좇으라 그러나 기색을 띄고 근심하며 갔다고 본문은 말 씀합니다.

 이 본문 말씀은 인간의 진정한 비극과 불행은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 라고 말합니다.세상 부귀와 공명이 다 있어도, 명예와 권력이 다 있더 라도 예수를 떠나는 것이 불행이요 비극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는 생명이 있고, 영생이 있고, 인간의 모든 행복의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은 왜 예수를 떠나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무지에서 나온 소치입니다. 나폴레옹은 어떤 후회도 남 기지 않는 유일한 정복은 인간의 무지에 대한 정복이라고 말했습니 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지를 정복하는 길이 불행과 비 극을 극복하려는 길인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영생의 길을 알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로 예수님께 나 왔던 사람이 소원을 성취하지 못하고 슬픔과 근심으로 돌아서야 했던 이유도 바로 그의 무지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인생을 불행과 비극으 로 몰아놓는 요소가 무엇인가를 본문 말씀을 통해 생각해 봅시다.

 첫째로, 진정한 불행과 비극은 예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7절) 여짜 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20절)

우리는 위의 말씀에서 이 사람이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 부른 것 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이 사람은 신앙상의 많으 장점을 가 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달려 나오는 신앙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예수님 앞에 꿇어 앉는 신앙의 겸손성을 가지고 있었습 니다. 또한 예수님께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어보는 영적 욕구와 갈망 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신앙의 열정과 겸손, 갈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질이 됩니다. 그러한 이 사람의 문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한 것 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 시람은 예수넘을 그저 선한 선생님으로만 알았습니 다. 선한 선생님을 헬라어로는 '아가도스 디타스 칼로스'라고 하는데 인심 좋은 선생님, 덕망 있는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이 사람이 예수님을 덕망있는 선생님 정도로만 알았을 뿐 인류의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 로 그의 비극이요, 불행이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 17절에 보면 베드로가 유대인을 향해 설교하면서 유대 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 한 줄 아노 라고 말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이나 본문 말씀 모두 브라우닝의 말처럼 '무지가 죄'라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강조합니다.

 왜 오늘날 이 세상에는 우상이 가득합니까 왜 아직도 믿지 않는 사 람들이 이렇게 많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죄와 사망에 서 구원하신 메시아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를 모르 는 것이 가장 큰 불행과 비극의 원인입니다.

 둘째로, 불행과 비극은 자기의 부족을 모르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길을 물어보기 위해 나온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 스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 라 하였느니라(19절) 이때 예수님을 향해 그 사람이 말합니다. 선생 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20절)

위의 말씀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시감 넘치는 대답을 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 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 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 을 주라(21절). 이 말씀은 이 사람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 기는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을 알려 줍니다.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사랑의 마음을 말하는 것임니다. 예수 님께서 그에게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 말 씀은 모든 율법을 다 지켜도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잘못된 것 임을 통해 사랑이 바로 계명의 본질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과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19장과 누가복음 18장에도 기록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예수님을 향해 영생의 길을 묻는 이 사람은 권력있는 관원이요, 돈 많은 부자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진리를 향해 강한 탐구력을 가진 청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 리는 여기에서 외적인 면을 볼때에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 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사 랑의 정신이 부족했습니다. 진정한 비극은 바로 사랑의 정신이 부족한 것을 알지 못함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을 찌를듯한 패기와 젊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사실 입니다. 세상을 흔드는 권력도 우리에게 유익한 것임을 압니다. 무엇 이나 살 수 있는 부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압니다. 그러나 무엇보 다 필요한 것은 사랑의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을 이 사람에 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을 찾는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사람 들은 자신의 부족을 잘 알지 못하고 자신의 장점과 좋은 점을 자랑합 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행 7:22). 모세는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세가 사십년이 지나 미디안 광야의 호렙산 상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의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도저히 주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스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영적으로 깊어지면 깊어질 수로고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은혜를 많이 받 은 사람일수록 겸손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진정한 불행과 비극은 포기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예수 님을 좇으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재물이 많아 근심하며 돌아갔습니 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사람의 불행과 비극은 포기할 줄 모르는 생각 과 정신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사람은 물질, 좀 더 근원적으 로 말하면 물질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 의 영생을 포기하고 에수님을 떠났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사람을 향 해 물질을 포기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에게는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 이 누구보다도 강했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애착감이 누구보다도 강했 기에 물질을 포기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을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 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데 살로니가로 갔다는 이 말은 세상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으로 나갔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내가 붙잡는다고 해서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 기 3장을 보면 모세가 호렙산 꼭대기에 있으 마때 하나님께서 떨기나 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십니다. 그리고 네 발의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 십니다. 신방르 벗으라는 말은 과거를 포기하라는 말입니다. 신발은 신고 양떼를 몰고 돈을 벌러 다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모 세에게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해 모세의 현실의 생활을 포기하고 새 출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빈다. 이렇게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만 합니다. 동시에 두가지를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무엇이 진정한 불행이며 이런 비극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모르는 데서, 나의 부족을 모르는데서, 나의 부족을 모르는 데서, 그리고 포기할 줄 모르 는 데서 생기는 것이빈다. 이제 예수님을 알고, 자신의 부족을 깰다 고, 버려야 될 세상은 끊어 포기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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