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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걸어가는 나무 같은 이 (막 08: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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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시되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치셨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예수님은 병자를 즉시 고치셨으나 오늘 본문의 맹인은 단계를 거쳐 치유하셨습니다. 더 큰 질병도 즉시 고치신 예수님이 왜 점진적 치유방법을 쓰셨겠습니까 눈이 이해의 상징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인간 이해는 점진적으로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며, 어둡던 우리 영혼은 우리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 점진적으로 밝게 되는 것입니다.

I. 많은 분들이 성령은 받았으나 절반만 밝혀진 영혼들이 있다.
교회까지는 왔으나 영적 맹인처럼 진리를 분별도 깨닫지도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귀신에 잡힌 것도 아니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정직하고 친절하며 남의 동정을 사고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약자를 핍박하거나 책망하지도 않으며, 복음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병하게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기도도 예배도 드리며, 외형적 조건은 다 갖추었으나 아직도 맹인입니다. 사물을 분간 못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들이 있습니다.

II. 우리 주님의 치유방법을 보자
첫째 친구들이 맹인을 데리고 주께로 나왔습니다(22). 맹인에게는 믿는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그의 손을 붙잡아 주셨습니다(23). 예수님과 개인적인 만남의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셋째 맹인의 손을 붙잡고 조용한 곳으로 나아가셨습니다(23). 군중 속에서 부르신 것이 아니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치료해 주시고 구원하십니다. 넷째 침을 뱉으시면서 천박한 방법으로 치료하셨습니다(23). 이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 멸시 천대를 받으셨던 주님을 통한 구원을 생각하게 합니다. 다섯째,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안수는 기적의 필수 요건은 아니며, 몸에 손을 댄 것은 주님의 애정표시입니다.

III. 소망의 단계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매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24) 했습니다. 거기엔 예수님 밖에 없었으므로 예수님을 보되 걸어가는 나무로 본 것입니다. 이 사람의 시력은 희미했고, 그런 가운데 과장된 표현을 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맹인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희망은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안수했을 때 그는 모든 것을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메시아로 보지 못하고 혁명가, 해방운동가, 자선가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완전히 볼 수 없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맺는말.
예수님은 눈뜬 그를 자기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마을로 들어가 환호성치지 말고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왜 구원을 받았는지 조용히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있을 뿐 아니라 그를 이해하고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옛 사람이 새 사람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사람이 되는 것 구원은 주님께 있습니다. 성령의 빛으로 주님을 온전히 보고 세상을 비추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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