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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받기 위해 잃어 버릴수 있어야 합니다 (눅 09: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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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자이신 예수 따라가면 구원받습니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구원은 죄 사함을 받고 영생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의미에서 구원은 예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 따라가면 이 두 가지가 다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예수 따라가는 것에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기 가족입니까 환경입니까 사단입니까 오늘 본문은 자기자신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 따라가는 일에 가장 큰 장애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4절에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가르칩니다. 여기 또 하나의 믿음의 역설이 있습니다.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오히려 자신을 잃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설 곧 파라독스가 아닙니까 역설이란 모순되어 보이지만 진리인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잘 따라 가려면 자신을 잃어 버릴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잃어 버릴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우리는 그것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잘 따라만 가시면 됩니다. 부활하시고 살아계셔서 여러분과 저를 인도하시고자 하는 그분을 잘 따라 가시면 됩니다. 잘 따라 가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장애요소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자신이라는 믿음의 장애물을 넘어서서 예수님을 잘 따라갈 수 있을까요 23절에서 예수님은 친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공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는 것입니다. 여기 자신을 구원하고 쓰임 받는 인생을 사는 세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첫째 비밀은,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진정한 자기 부인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자기 부인이 의미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자기부인은 자기비하나 자기학대, 혹은 자기포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문맥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2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23절에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 말입니까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자기 긍정을 위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성 신학자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참된 자기(True self)를 찾기 위해 거짓된 자기(False self)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거짓된 자기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예수님 따라가는 일에 방해가 되는 자기입니다. 이것은 본래 창조된 내가 아니라 타락한 나인 것입니다. 오늘의 내가 만일 창조된 그대로의 나라면 그런 나는 무엇보다 예수님 따라가기를 즐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내안에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그 어떤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타락한 나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나를 단호하게 부인해야 합니다. 이것은 욕심많은 나요, 충동적인 나요, 이기적인 나인 것입니다. 이런 내가 경계되고 부인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성공적으로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목사인 저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는 진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안에도 동일하게 타락힌 내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런 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우리교회가 비전센타를 완공하고 공식으로 입당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저는 뜻깊은 이날 공개적으로 교우들 앞에서 목회자로서의 고백과 약속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내에는 우리교회와 같은 이런 성장의 계기가 축복만이 아닌 물량적 대형교회에로의 타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을 저는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수년전 우리교회 5주년 기념식에서 무소유적 목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고백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고백의 의미는 제가 목회를 통해서 제 자신의 어떤 물질적 이익도 얻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교우들은 제가 과연 그런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궁금해 하실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오늘 이 특별한 날 공적인 고백을 다시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수년전 그 고백을 했을 때 저는 봉급을 아예 받지 않을 것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되면 교회 행정이 어렵고 스태프들의 봉급체계를 만들기 힘들다는 건의를 받아들여 일단 봉급을 받되 다시 교회에 헌금하겠다는 마음의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고 지난 1월초에도 작년 한해 제가 약속을 지켰는지 궁금하여 재정국장 박상기 집사님에게 문의를 했더니 받은 만큼 다시 교회에 드렸다는 것을 확인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드릴뿐입니다. 저는 저 자신 뿐 아니라 우리 교회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존재하고 헌신하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저는 단 일원의 헌금도 목사인 저 자신의 의도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쓰여지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할 것을 약속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우라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마땅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구원을 아름답게 이루어 갈 뿐 아니라, 주께 합당히 여김받는 인생으로 쓰임받게 될 줄 믿습니다.

자, 그러면 자신을 구원하고 쓰임받는 인생을 사는 둘째 비밀은 무엇입니까

둘째 비밀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인생을 살다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경험하게 되면 그런 사람, 혹은 그런 사건을 가르쳐 자기 십자가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남편이 십자가라고-혹은 시어머니가 십자가라고, 혹은 속썩이는 자식들이 십자가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몸의 질병이 십자가라고-혹은 잘 경영되지 못하고 있는 자기 사업이 십자가라고, 심지어 팔리지 않는 부동산이 십자가라고 합니다. 또 어떤 순진한 교우들은 십자가를 지라고 하니까 십자가 장식하고 돌아다니라는 말인줄 알고 늘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닙니다. 어떤 청년 형제가(자매가 아닌)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녀서 제가 형제님, 십자가는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지고 다니는 것이에요 하니까, 그렇게 하지요하더니 십자가를 뒤로 돌리면서 목사님, 이렇게 하면 지고 다니는 것 아닙니까하더라구요.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십자가의 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정답을 말씀드리면 예수님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가 십자가로 가신 이유, 십자가를 지신 이유,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이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한마디로 그것이 그를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생을 하고 지독한 고통을 당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다면 그 고생, 그 고통은 그냥 고생이요 고통일 뿐 십자가는 아닌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정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어떤 고통도 즐겁게 견디고 참으며 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다가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의 기대를 따라 정직하게 일하다가 부정직한 동료들에게 고통을 당한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탈세하지 않고 정직하게 세금 내다가 망했다면 나는 그것도 십자가를 지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의 삶을 살고자 하는것-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다시한번 솔직한 고백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사실 목회를 하면서 이 목회생활이 제 기질에 맞지 않는다고 느낄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질상 틀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인의 속성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한 곳에 처 박혀 목회 하기 보다 프리랜서로 여기 저기 다니며 설교하고 글쓰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 공식으로 비전센터에 입당하면서 우리 교회가 비전을 실현하는 건강한 공동체로 굳게 설 때까지 기꺼이 저 자신을 구속하고 살겠다는 고백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고통도 기꺼이 견디면서 말입니다. 사실 저에게 있어서는 이런 목회의 구속 자체가 고통으로 느껴지지만 이제 이런 목회의 기회 자체를 저의 즐거운 십자가로 수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때가 차면 제가 은퇴하게 될 때 저는 아무런 조건없이 결코 교회에 부담을 드리지 않고 자유인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약속 하고자 합니다. 저로서는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목회의 길을 가는 저다운 삶의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가 십자가를 지는 저의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자신을 구원하고 쓰임을 받는 인생을 사는 세 번째 비밀은 무엇입니까

셋째는, 주님을 신실하게 좇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비밀은 주님을 좇아가는 것,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두가지 지침(자기를 부인하는 것,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다소 소극적인 것이었다면 이것은 적극적인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날마다 지속적으로 순종되어야 할 명령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우리의 신실성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곳에서 신실하게 주님을 좇아가야 합니다. 사실, 이 명령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순종한다면 전자의 두가지 지침은 훨씬 수월하게 순종될 수 있습니다. 너무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자기 부인을 위해 애쓰기 보다 주님께 내 인생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도하게 자기를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책방에 들어가 보십시오. 오늘날 서가를 채우는 절대 다수의 책들은 소위 우리의 자존감, 자긍심을 높여주기 위한 소리로 차고 넘쳐 납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이 많은 심리학자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깊은 열등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한 심리학자는 현대인의 3분의1정도는 병적 열등감의 포로가 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도움이 부족해서 입니까 자기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폴 비츠(Paul Vitz)라는 심리학자는 현대의 가장 무서운 종교가 있다면 '자기 숭배'(self-worship)의 이단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본래 자기숭배의 유혹은 사단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까 네가 하나님이 되리라고. 그러나 예수님은 사단에게 주 너의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날 인간복제의 가능성이 보이면서 이런 인간숭배는 절정에 도달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인간이 인간을 만들 수 있다면 인간이 곧 신이 될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복제가 과연 창조의 차원과 같은 것일까요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떤 복제교의 교주 과학자가 신에게 도전을 했다고 합니다. 나도 이제는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러면 내가 아담을 만들때와 꼭같이 인간을 만들어 보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하지요.하고 그는 자신만만하게 흙을 집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갑자기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야, 내 흙 가지고 만들지 말고, 너희 흙으로 해하셨답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여전히 존재의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오늘의 본문 다음에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 곳이 어디인줄 아십니까 변화산상이었습니다. 이 산상에서 그는 친히 신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의 절정에서 36절에 보면 제자들은 잠잠하며 오직 예수만 볼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를수 있고 그분을 볼수 있을 때 우리는 자기숭배의 유혹에서도 자학의 열등감에서도 해방될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을 따르며 그분에게 쓰임받는 기쁨으로 충만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저의 인생이 그렇게 다만 주의 제자로 쓰임받는 기쁨을 구하며 살고자 합니다. 제가 처음 찬양 축제 드리는 날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예수님을 태우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던 한 마리의 어린 나귀가 되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저는 또한 저와 함께 우리 교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주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임재하시는 주님을 환영하며 겉옷을 벗어 던지고 다만 그분을 우리의 왕으로 인정하고 찬양하는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공동체인 지구촌 교회가 또한 이 시대에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다만 주의 영광을 찬미하는 구원의 공동체가 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진정 우리의 비전처럼 우리 공동체가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우리 스스로를 잃어버리기로 결심한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쓰시는 놀라우신 주의 영광을 보게 될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이 구원받기 위해 우리 자신이 잃어버려지는 것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설교 적용 질문>

1. 본문 23절에 의하면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한 세 가지 지침은 무엇입니까

2. 자기를 부인한다는 참된 의미는 무엇이며 그렇지 않게 곡해 될 수 있는 생각들은 무엇일까요

3. 십자가를 진다는 참된 의미는 무엇이며 그렇지 않게 곡해 될 수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오늘날 각자의 삶에서의 자기 십자가를 나누어 보십시오.

5. 주님을 구체적으로 잘 따르기 위해 우리 각자가 포기하거나 희생할 것들은 무엇인지를 나누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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