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복받아 마땅한 자원자들의 헌신 (느 11:1-2)

첨부 1


저는 미국의 수도인 와싱톤 DC 근교에서 10년 이상을 살며 목회를 해 왔습니다. 제가 그곳에 사는 동안 손님들이 방문하면 꼭 모시는 가는 관광 코스들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백악관이나 링컨 기념관 그리고 스미소니안 박물관등 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코스외에 가능하면 한곳을 더 모시고 가곤 했습니다. 사실 한국분들은 그 곳을 가는 것을 별로 흥미롭게 생각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중요 손님들이 미국 워싱톤을 방문하면 국빈들에게 빠질수 없는 코스이었기에 미국을 이해하는데 좋으리라고 믿어 제가 반 강제적으로 모시고 가곤 했습니다. 그곳은 알링톤 국립묘지였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위시한 여러 익숙한 이름의 미국 지도자들의 무덤들을 찾아볼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묘지 방문의 절정은 이런 유명한 사람들의 묘지가 아니라 소위 '네명의 무명용사의 무덤'입니다. 이 무덤앞에서 소위 가드들의 엄숙한 교대식이 매시간 있고 방문객들은 이 곳에서 반드시 발걸음을 멈추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투어를 고안한 의미는 한 나라를 지켜온 것은 반드시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 소위 무명의 영웅들에 의한 것이라는 교훈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 느헤미야 11장, 그리고 이어지는 12장은 느헤미야와 백성들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건축된후 이 성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헌신한 무명의 자원 봉사자들의 모습을 증언하기 위해 기록됩니다. 성이 건축되는 이상으로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성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우선 백성들의 10분의 1을 예루살렘 성내에 살도록 제비를 뽑아 인구를 재배치하였습니다. 2절에 보면 그것만으로 모자라 자원자들을 모집하여 성내에 살게 하였고 이렇게 자원하는 자들을 백성들이 축복했다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얼른 생각하면 도시에 사는 것이 더 좋을듯 하지만 당시의 예루살렘 성은 아직 정리되지 못한 상태였고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공격의 대상이 될수 밖에 없었기에 성내에 사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고 또한 여러 책임져야 할 일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일에 기꺼이 자원자로 헌신하였고 느헤미야는 이런 헌신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기 위해 11:3이하에서 자원 봉사 헌신자 리스트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 리스트를 통해 특별하게 그 헌신이 기억되어야 할 사람들의 명단을 매우 꼼꼼하게 지적하여 기록합니다. 우리는 이 리스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없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할 영역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할 헌신의 영역들은 무엇입니까

1. 성전 사역에 대한 헌신입니다.

11장11-12절에 보면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가 형제만 822명이었다고 기록합니다. 대단한 숫자의 헌신이 아닙니까 예루살렘 성내에 할일들이 많았겠지만 성전 사역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이만한 숫자의 자원 봉사자들이 동원 될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에게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된 것이어도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예배를 통해 그들은 인생을 사는 진정한 비전과 용기를 얻을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섬기는 일에 형제들이 앞을 다투어 자원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구약의 성전개념이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그대로 동일하게 적용될수는 없지만 예배의 중요성은 신약에서도 결코 폐기된 일이 없습니다. 예배는 천국에 가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가장 중요한 의무요 특권이 아닙니까 이 예배를 예배답게 드리도록 헌신하는 일-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또한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이 예배를 가르치고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가르치는 교육사역은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만일 당시에 이 성전 사역에 헌신하는 일군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까요 그런데 만일 이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 사역이나 교육사역에 헌신을 주저한다면 그래서 더 이상 복음의 영광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누려지지 못하고 계승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그 어느 날 우리의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앞에 서게 될까요 과거에 지금보다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훨씬 열악했던 사회적 조건에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예배당을 짓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주일 학교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르쳐 주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주님을 예배함이 가능할수 있었다면 이제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우리의 시대에서 우리 몫의 헌신을 드려야 할까요 이 달이 지나가기 전에 우리 중에서도 또 다른 822명이 일어나 예배 봉사팀원으로 혹은 다양한 연령의 주일학교 부서에서 교육 목자들로 헌신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2. 관리 사역에 대한 헌신입니다.

본문 16절을 읽어 보십시오. 성경은 레위 족장이었던 삽브대와 요사밧 두 사람의 헌신을 기록하기를 이들은 하나님 전 바깥일을 맡았고라고 증언합니다. 성전 사역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성전 밖에서도 여러 사역이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들은 아마도 좀더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건물 관리와 관련된 잡다한 사역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바깥일들이 안정되지 않고는 성전 사역이 또한 효율적으로 진행될수 없다는 면에서 볼때 안의 일 못지 않게 중요한 사역들이었던 것입니다.19절에는 성의 문지기들이 이들과 합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도합 문지기로만 172명이 봉사했다고 기록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정황에 비추어 본다면 이들은 주차장에서 봉사하는 차량 사역자 같은 분들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하러 오시면서 이런 봉사를 하는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를 표현해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감사는커녕 그들의 지시를 협력안하심으로 그분들의 봉사의욕을 좌절시키신 일은 없으셨나요)당신에게 더 좋은 아이디어가 계시다면 당신이 혹시 차량 팀 사역으로 봉사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저는 또한 저와 여러분이 우리 교회의 보이지 않는 여러 관리 파트에서 이름없이 빛도 없이 봉사하는 여러 분들을 기억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섬기시는 분들은 또한 우리의 격려가 모자란다 해도 여러분의 봉사를 본문의 레슨처럼 성경의 저자인 성령 하나님께서 잊지않고 기억하고 기록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이야 말로 '잊혀지지 않을, 잊혀져서는 안될 하나님 나라의 영웅들'인 것입니다.

3. 기도 사역에 대한 헌신입니다.

11:17말씀을 보십시오. 거기에 우리에게 매우 낯선 인물'맛다냐'라는 사람이 기억됩니다. 그는 어떤 사역을 감당한 사람이었습니까 저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었다고 증언됩니다. 우리는 이 사역의 역할을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기도 사역에 헌신한 리더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가 자랑하는 사역의 하나가 중보 기도 사역인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지금 예배하는동안 바로 이 순간도 예배가 아름답게 주께 드려지고 설교자에게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도록, 그리고 성도 여러분이 은혜받도록 지금 이 시간에도 기도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 것을 아시는지요 여러분이 기도 제목을 카드에 써서 제출하기만 하면 여러분의 기도제목들을 가슴에 품고 하루 10시간 이상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 중보하는 기도 사역이 우리 교회 중보기도실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지난 번 빌리 그래함 따님 앤그래함 여사의 잠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도 잠실 체육관에 마련된 중보 기도실을 지킨것도 우리교회 중보기도 팀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도 이런 사역에 헌신할수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이 가을 중보기도 훈련을 받으시고 사역의 모험에 참여하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과거에 훈련을 받으시고도 이 사역에 떠나 계시던 분들의 컴백을 보고 싶습니다. 아직은 봉사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봉사의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4. 찬양 사역에 대한 헌신입니다.

11:22에는 웃시라는 이름의 매우 낯선 사람하나가 소개 되고 있습니다. 노래하는자 아삽 자손 곧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샤바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이렇게 길게 그의 족보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조상이 노래하는자 아삽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삽이 누구입니까 12장 46절을 보십시오. 그는 옛날 다윗과 더불어 찬양사역의 부흥을 가져온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시편 찬양들은 다윗이나 아삽(12편 정도)에 의해 시와 찬양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웃시는 바로 이 아삽의 후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봉사한 영역이 바로 23절에 보면 노래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제공하는 등의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가문의 전통을 살려 찬양 사역에 헌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그가 직접 찬양 사역을 하기보다 찬양하는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고 찬양에 전념할수 있도록 찬양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일에 봉사하였는데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찬양사역의 일환으로 동일하게 소중한 헌신으로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느헤미야 12장 27절 이하에 보면 이렇게 지원받은 찬양하는 자들이 어떻게 찬양사역에 헌신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특별히 성곽이 완공되면서 성가대와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활동의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7절과 28절을 보십시오.-42절과 43절에는 그들이 이렇게 헌신한 결과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43절에는-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 하게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찬양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기뻐 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또한 찬양하는 모두에게 기쁨을 주셔서 즐거워 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헌신은 헌신하는 자들을 행복하게 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43절을 계속 읽어 보시면-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 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섬김의 결과로 하나님이 즐거워 하시고 자신이 기뻐하고 이웃들이 기뻐할수 있다면 왜 이런 섬김을 주저하시는지요 당신에게 찬양의 재능을 주셨다면 더이상 주저하지 마십시오. 성가대원으로 경배와 찬양팀으로 목장교회내에서 찬양부장으로 섬겨 보십시오.

5. 목장 사역에 대한 헌신입니다.

어떤 분들은 아니 여기에 목장사역도 나오는가 궁금한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장사역도 나옵니다. 11장 3절을 보십시오. 여기 유다 지역과 예루살렘 도는 다시 여러 지역 성읍들로 나누어 리더를 세웠고 이 리더들의 이름들이 4절이하에 동시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이나 예루살렘을 둘러 싼 유다 지역에서 떨어진 이스라엘 각처의 향리와 촌까지도 리더들이 세워져 백성들의 필요를 공급하고 그들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11장 25절이하에 보면 성경은 이 모든 곳에서 섬긴 무명의 지도자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이들은 모두 지역 리더들로 헌신한 자들로서 오늘 우리 교회의 조직으로 말하면 지역의 셀 리더들 곧 목장 사역의 지도자들이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또한 12장 12절이하에 보면 제사장들은 제사장들대로 다시 여러 족속으로 나누어 각 족속의 족장을 세워 섬기게 하였습니다. 일종의 특수 목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래서 누구의 필요도 간과되지 않았고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정착할수 있었습니다.

우리교회는 개척사역의 초기부터 마을 단위의 목장 사역을 강조해 왔고 목장사역의 비전을 다음과 같이 강조해 왔습니다. 급속하게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지구촌 교회안에서 마을별 혹은 특성별로 교우들에게 안정적인 가족구조를 제공하여 교회정착과 영적 성숙, 공동체적 봉사를 실현하도록 섬기며 더 나아가 목장 재생산을 통한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하고자 한다.(지구촌 교회 목장교회 사역비전) 오늘 교우 여러분은 이 비전실현을 위해 기쁘게 목장 사역에 헌신하고 계시는지요 아니면 오늘 당신은 어떤 사역에 헌신하고 계십니까 중요한 것은 참여와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헌신자를 기억하십니다. 그러나 구경꾼은 그의 기억의 대상이 아니십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우리는 헌신자의 자리에 서기를 주저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한때 헌신하다가 쉽게 헌신을 포기하고 구경꾼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가 무명의 자원 봉사를 할때 직면하는 가장 큰 내면의 좌절은 나의 수고와 봉사를 아무도 기억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그것을 큰 소리로 부인합니다. 성령께서 성경을 기록하면서 오늘의 본문에 그들의 이름들을 일일히 기록한 의도가 무엇입니까 주께서 그들의 수고를 결코 잊지 않으셨다는 것이 아닙니까

1964년의 일입니다. 경기도 포천 백암산 비무장 지대에 배속된 한 초급장교가 빨간 단풍이 물들어가기 시작한 초가을 오후 순찰도중 잡초만 우거진 비무장 지대의 양지바른 산 모퉁이에서 이끼낀 돌무더기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는 이어 이 돌무더기 한쪽에서 녹쓴 철모와 썩은 나무등걸 같아 보이는 팻말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 나무 팻말이 어느 무명용사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전우애로 새겨진 일종의 묘비임을 알아 차립니다. 갑자기 그의 눈 앞에 자기 또래의 젊은 무명용사의 환상이 지나가자 그는 아직도 화약 냄새 가시지 않은 이 돌무덤곁을 떠날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글이 지워진 나무 팻말대신 민족공동체를 위해 인생을 꽃피우지 못하고 헌신한 젊음을 기억하며 주머니에 버려져 있었던 꾸겨진 종이 한장을 꺼내 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 시에 곡을 부쳐 탄생한 국민 가곡이 '비목'이었습니다. 초연히 쓸고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그렇게 해서 이름모를 이 비목의 사연이 그리고 비목의 주인공의 헌신마져 우리 모두에게 기억될수 있었다면하나님 나라를 위한 무명의 성도들의 헌신을 주께서 잊으실까요 오늘의 메시지의 결론으로 히브리서의 한 말씀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6:10)

그렇다면 이제 이 가을 구경꾼의 삶을 청산하시고 하나님의 사역에 자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자원함을 기다리십니다. 2000년전 자원해서 이땅에 오시사 십자가에 당신의 생애를 거신 주님, 그의 죽음으로 당신과 나를 구원하신 그분이 이렇게 속삭이는 음성을 들으셨는지요. 자원함이 기회이었단다. 사역은 내게 축복이었단다. 죽음도 내게는 기쁨이었다고. 그리고 그분은 그분의 제자들이 동일한 자원 봉사자로 헌신하는 것을 기대하십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의 결산의 날에 그분처럼 고백할것을 기대하십니다. 자원함이 기회이었습니다. 사역이 축복이었습니다. 이제는 죽음도 기쁨입니다고. 이 행복을 놓치지 마십시오. 복받아 마땅한 헌신의 기회를 잃어 버리지 마십시오.

<설교 적용 질문>

1. 느헤미야 11장의 대의는 무엇입니까

2. 본문 2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 본문 16절에 나타난 사람들의 헌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 본문 17절에 나타난 맛다냐의 헌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 오늘 나는 자원자로서 어떤 헌신을 주께 드리고 있는지 나누어 보십시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