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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있는 사람-다윗 (시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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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 편은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그것은 복과 화에 관한 것으로 모든 인생은 이 두 길 가운데 한 길을 걷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곧 복있는 자의 길과 악인이 걸어 가는 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복 있는 자의 길을 걷기 원한다. 이 길은 다윗이 그렇게도 원한 길이었다. 때문에 시편 구절구절마다 하나님의 복을 사모한 시인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시편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시인의 걸어간 복있는 자의 길을 걷기를 사모하고 있다.

복있는 자의 길은 어떤 길인가

1.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
악인의 꾀란 정당하지 못한 행동을 생각하는 것이다. 악한 사람의 충고나 계획을 말한다. 악이란 무엇인가 렘 2:19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악이란 하나님의 생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말한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라고 불렀다. 예수님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하셨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선이란 하나님이 선에 비교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청년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을 던졌다.
청년의 생각에는 무엇인가 선을 행하고자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여야 하겠는가 하는 질문이다. 모르긴 해도 이 젊은 이는 여러해 동안 지내면서 나름대로 선을 행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선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속이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선이란 다른 어떤 이보다 조금 낫다는 것이지 선을 행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아담과 하와의 심성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단지 정도의 차이요 그것이 나타나고 감추어지고한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동을 비난한다. 그의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속여 취한 것이 그 순간 달고 맛이 있는 것 같으나 후에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한 것을 잠언 기자는 20:17에서 기록하고 있다.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 !

2.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죄인의 길은 하나님의 목적에 어긋난 길을 말한다. 중앙 아프리카에 널리 알려진 관습가운데 이런 관습이 한가지 있다. 대상이 길을 잘못 들어서 처음 길로 되돌아 나온 다음에는 언제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곳에다가 커다란 나뭇가지를 가로질러 놓고 또 땅에는 고랑을 내어서 뒤따라 오는 대상이 자기들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죄인의 길이란 무엇인가 아담과 하와의 길이요, 아간의 길이다. 노아의 길이요 소돔과 고모라의 길이다. 롯의 절못된 선택이요 롯의 사위들이 걸어간 길이다. 그들의 길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불러들인 길이었다. 그러므로 죄인의 길이란 하나님의 창조목적과는 거리가 먼 길을 의미한다.

3.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
인간의 오만함이란 겸손과 거리가 먼 자리를 말한다. 케이라는 사람은 오만에 대하여 종교적인 의무에 대한 생각을 비웃는 자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사람은 신앙생활을 조롱하고 악을 저지를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는 사람이 오만한 사람이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오만한 사람들을 피하기 위하여 수도원에 올라간다고 하여도 거기서도 오만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오만한 자들이 반드시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오만함이란 인간의 마음 속에 쉬임없이 드나들며 인간을 농락하고 있다. 그들은 평화를 깨트리고 질서를 파괴하며 하나님의 의와는 관계없는 일을 부단하게 나타낸다. 오만함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주님의 교훈에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가진 성품이다.

악이란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마음에서 영역을 넓혀간다. 하나의 죄가 또다른 죄를 포섭하고 마침내 여러가지 죄들과 연합하여 큰 곤경에 빠지게 한다. 다소간허풍이 담긴 이야기이지만 '인도의 거미가 만드는 거미줄은 너무나 튼튼해서 때때로 사람도 그 거미 줄에 걸린다.'는 말이 있다. 사악한 인간의 생각이 거미 줄 같이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이라 하여도 그 가느다란 죄의 줄은 마침내 인간을 사망의 구렁텅이로 묶어 버리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인생의 말년에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을 비교하면서 하나님께서 의인의 길에 주신 복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아들 압살롬의 모반 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사울왕의 무차별 공격도 여러차례 극복하였고 불레셋의 무례함도 믿음으로 이겨나갔다. 그러나 압살롬의 반역은 참으로 마음이 아픈 것이었다. 오죽하면 그가 죽었을 때 '차라리 내가 죽었더면 ... 내 아들 압살롬아 !'라고 부르짖었던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백성들의 재판을 가로채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은 일이나 멀건 대낮에 궁궐옥상에서 후궁들과 동침한 사건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상천외한 일이었다. 그의 잘못된 지혜는 한 모사꾼이 그에게 있어서이다. 아히도벨 ! 그는 전에 다윗을 도와 일했던 신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압살롬의 편에서 압살롬을 좌우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원컨대 아히도벨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옵소서.'(삼하 17:23)

하나님은 압살롬의 그 좋은 머리채를 상수리 나무에 걸리게 하였고 다윗의 장군 요압은 창으로 압살롬을 찔러 죽었다.(삼하 18:)

나는 여러분들이 죄인의 길에 서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당부한다. 때때로 우리는 악인의 길을 부러워 할 때가 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 마지 않는다. 사악한 길에 동참해 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복있는 자의 길에 서기 바란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한다. 바울은 그의 서신 에베소서에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선언하였다.(엡 2:10)

복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묵상하는 자이다.
율법은 모세의 법을 말한다. 보다 넓게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즐거워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들렸을 때의 일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이다.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분주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앞에 앉아서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말씀듣기를 좋아 하였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마르다나 마리아 모두 다 주님을 기뻐하여 집에 모셨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마리아가 이 좋은 일을 택하였다고 칭찬하셨다.

1996년 이 한해는 성도 여러분께서 율법을 즐거워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계 1:3 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기록하였다. 복 받기를 원하거든 말씀을 부지런히 읽도록 하자.(500독 하기 실패) 성경 읽기는 신앙생활의 기본이다. 1996년 이 한해는 여러분의 듣는 귀가 복되기를 바란다. 성숙한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실력있는 사람도 상대방의 말을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면 자기 의사전달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듣는다는 것은 순종과도 관계가 있다. 순종은 듣는데서 시작한다. 이사야는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하는 부르심을 듣고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을 하였다.

말씀 듣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은 말씀 순종하는 것도 즐거워한다. 고넬료의 이야기는 그래서 들을 수록 감동적이다. 그는 이방사람이었다. 그러나 환상 중에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하였다. 사도 베드로를 모셔왔고 그의 분부하심을 귀 기울여 들을 때에 성령의 능력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였다. 말씀 듣기를 즐거워 하면 성령의 체험도 덤으로 받게 된다.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 석달을 머물러 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고자 하였다. 오벧에돔이 복을 받는 것을 보고 내린 결심이었다. 아비나답의 집에는 20년을 모셨어도 복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불과 석달을 모셨으나 복을 입었다. 오래 믿었다고 복 받는 것은 아니다. 즐거워하며 믿어야 한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즐거움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하다. 그러나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시인은 말한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지 못하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 악인의 길은 여호와의 인정하시는 길이 아니다. 이제부터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하며 오직 한분 예수를 따라 살며 복된 삶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날이 추우면 기러기 이야기가 어울린다.
기러기 한 떼가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한참을 가던 기러기들이 잠시 휴게소에 들렸다. 조용한 농가에는 집 거위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고 있었다. 잠시후 길을 떠나자는 지휘자의 음성이 들렸다. 그러나 그들 중한마리 기러기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 거렸다. 식곤증이 들었던 모양이다. 동료 기러기들은 그에게 강권하며 말하였다.
지금 날아 가지 못하면 영영 날아 갈 수 없어 !
자 정신 차리라구 ! 일어나 가야 돼 !

기러기는 먼 길을 날아오느라 피곤했고 배가 고파서 허둥대며 곡식 낱알을 쪼아 먹다가 자기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눌러 앉게 되었다. 기왕에 내려앉은 김에 이 추운 겨울을 여기서 편히 지내고 동료들이 다시 이 길을 지나 내려 갈 때에 따라가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또다른 기러기는 몇일 더 묵으면서 뒤 따라 가지 ... 하는 생각에 동료 기러기들에게 먼저 가라고 인사를 하였다.
사실 몇날 씩 고공을 날아 가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밤도 낮도 없이 날아 가다가 때로는 적들의 공격을 받기도 하는데 이렇게 거위들 틈에 섞여 살며 별로 수고도 없이 편안히 먹고 마시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다. 거위와 함께 지내는 농장생활은 매우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힘들여 수고하지 않아도 먹고 잘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자 반복되는 안일한 삶에 권태가 찾아왔다. 만족함이 없었다. 마침 동료들의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 왔다. 먼 발치에서 동료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고 그는 '이제야 말로 떠날 때가 되었다.' 라고 생각하였다. 동료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그는 힘 껏 날개를 폈다. 하늘을 날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날 수가 없었다. 안일하게 먹고 마시며 지내는동안 너무 몸이 무거워 진 것이다. 두 세번 더 시도해 보았으나 기러기의 몸은 이미 날개 짓을 잊어버린 상태가 되었다.

다윗은 인생의 말기에 복있는 자의 길이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통하여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악인과 함께 하는 것보다도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 복 되다는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 하여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고 주야로 묵상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선언하였다. 그의 인생 길에 매우 소중한 안내자로 모신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이성을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 아래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하며 우리를 멸망의 길로 안내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의 길을 힘써 걷는 새해가 되자! 것이 복있는 자의 길임을 다윗은 경험 속에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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