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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수가 흐르는 곳 (겔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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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두 말할 것도 없이 물은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들에게 물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 물이 없어서 고생하고, 어떤 때는 그 물이 많아서 피해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할 정도로 모든 것이 넉넉하지만 때로는 가뭄이 들어 고생하기도 합니다. 광주에서도 [격일제] 급수를 한 적도 있듯이 물이 없어서 걱정인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여름이면 태풍이나 장마로 인해 우리 나라는 전국적으로 물 난리를 겪는데, 그러나 주변이 온통 물로 가득 하지만 정작 먹을 수 있는 물은 얼마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식수로 할 물은 귀하기만 하니, 소위 풍요속에 빈곤이요, 홍수 속에서 갈증이란 말이 실감이 날 때가 있습니다. 물만을 가지고서도 우리는 이런 위기 속에서 살아 갑니다. 더구나 이런 문제는 영적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본문 에스겔 47장은 성령 강림절은 영적으로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에게 성령의 생명수, 은혜의 생명수를 소개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을 깨달아 하나님의 귀한 뜻대로 사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몸 말
먼저 에스겔이 이 환상을 보기까지의 민족적 상황을 보면, 에스겔은 선지자 이기도 했지만,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에스겔이 살던 때는 느부갓네살 왕이 다스리는 바벨론 제국의 힘이 강하여 유대의 여호야긴 왕을 비롯한 지위 높은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잡아갈 때 에스겔도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환난이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예루살렘의 성전은 파괴되고 예루살렘은 함락될 것이라는 환상을 보여 주셨는데, 하나님이 이런 징계를 내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에스겔이 환상중에 바라본 예루살렘 성전은 우상의 소굴이었습니다. 성전 구석 구석에 우상이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성전에 찾아와서 우상에게 경배했습니다. 심지어 성전의 담을 헐어보니 한 골방의 사면에는 우상들의 그림이 가득했고, 이스라엘의 대표자인 70인의 장로들이 향로를 피우고 우상에게 경배까지 하였습니다(8장).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10:18, 11:23). 하나님은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 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14:14)하신 대로 성전은 파괴되면서, 나라는 멸망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바벨론으로 끌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방치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된지 14년이 지난 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이 새롭게 세워질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40장). 그리고 성전을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성전에 가득한 모습도 보여 주셨습니다(43:1-5). 에스겔 43:7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제하여 버린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그들 가운데 거할 것이라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새롭게 세워질 하나님의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 온 땅을 소성시킬 것을 보여주신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생명수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탐욕의 우상, 투기의 우상이 가득한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을 제하여 버려야 하겠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체 하면서도 골방 은밀한 곳에서는 우상에게 분향하는 가증한 모습은 버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 더욱 은혜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교회는 생명수가 흐르는 곳입니다.
에스겔이 환상에서 성전의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 나왔듯이 교회의 문지방에서 생명수가 흘러 나와, 목마른 사람이 이 문을 통해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생명수는 구체적으로 성령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막절의 행사가 끝나는 날 예수 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요한 7:37-38)고 하셨는데, 예수 님이 말씀한 생수는 [성령]를 가리킨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에는 생명수의 성령이 흐릅니다.

또한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은 반드시 제단을 거쳐 흘러 내렸고, 제단을 거쳐 흘러 내린 물은 점점 불어 나서, 모든 생명을 소생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성전의 제단은 짐승이 희생 제물이 드려지는 곳으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체험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누구나 다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또한 희생의 제물로 드려 헌신하는 사람만이 생명수가 흐르는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시록 11:1-2절에서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하며 진정으로 성령 충만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고 하면, 성전 문을 지나 제단 밑으로 나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함께 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성전 미문 앞에 앉아있던 앉은뱅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매일 미문에 있었지만 평생 구걸하는 신세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도 베드로를 만나 예수 님의 이름으로 [다리에 힘을 얻고 일어서서 성전에 들어갈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행 3:8).

앉은뱅이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에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앉은뱅이처럼 평생을 다닌다고 해도 성전문에 걸터앉아 있는 사람은 그 깊은 은혜를 체험할 수 없고,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향해 내 마당을 밟을 뿐이니라(사 1:12)고 하면서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진정으로 성전문을 지나 제단 앞에 나오듯이, 교회 문턱만 밟던 신앙에서 이제는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함께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생명수]의 깊은 맛을 알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생명수가 넘쳐 흐를 때 은혜가 더해 집니다.
무엇보다도 은혜의 깊이가 날마다 더해집니다. 성경을 보면 맨 처음에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 나올 때는 [졸졸졸] 흐르는 듯 했고, 처음으로 일천 척을 척량하고 건너가 보니 물이 발목에 잠길 정도 였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충만을 입은 사람에게 처음으로 나타나는 증거로 처음에는 알듯 모를 듯 은혜를 받지만, 점점 은혜의 깊이가 더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옛날에는 구역장이나 인도자가 불러내야 마지못해 교회를 나왔지만 이제는 발목에 물이 올라 스스로 교회에 다니는 것이 즐겁습니다.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봅시다. 그는 매일 나왔지만 제 발로 걸어온 일이 없이, 사람들이 업고 오거나 메고 와야했습니다. 그러나 발과 발목에 힘이 오르니 제 발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성전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다음에는 무릎에 물이 오릅니다.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여 더 내려가서 건너가니 물이 무릎에 올랐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은혜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무릎꿇는 즐거움을 체험합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내게는 가장 귀하다는 찬송가 482장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다시금 일천 척을 더 내려가서 건너본 물이 허리에 잠겼습니다. 이것은 봉사의 은혜를 받아 무엇인가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은혜를 들어가면 이제는 물이 나를 인도합니다. 땅을 기대고 서 있을 수 없는 헤엄할 물입니다. 이렇게 깊은 곳에서는 내가 땅을 의지하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나를 건너주듯이 성령의 은혜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들의 심령이 [생명수]가 흘러 넘쳐서 은혜의 깊이가 갈 수록 깊어지는 귀한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생명수가 소생하게 됩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로 인해 바다의 물이 소성 하였습니다. [아라바] 즉 사해로 흘러 사해가 살아났습니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물고기가 살아나고 모든 생물이 나타났습니다. 생명수는 이름 그대로 생명을 주는 물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역장이나, 교사등의 교회의 일들이 맡겨지면, 구역 식구가 자꾸 줄어들거나, 학생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이것은 그 일을 담당하는 자들의 영적이 상태가 병들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맡은 곳에서 점점 힘을 잃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은혜를 받지 못한 연고입니다. 내게 생명이 없기 때문에, 내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생명수가 흐르지 않기 때문에, 믿음 없는 사람을 살려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제단앞에 나와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가는 곳마다 사람을 살립니다. 성령이 충만한 죽어 있는 심령이 살아납니다. 내가 은혜를 받으면 신기하게 생각될 정도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바닷물이 소성하듯이 담당하는 모든 곳이 살아 움직입니다. 물고기가 번성하듯, 새로운 식구들로 번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내 자신이 성령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생명수가 흐르는 곳에 실과가 끊이지 않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습니다.
생명수가 흐르는 좌우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않아 실과가 끊어지지 않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까닭은,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으로,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은 성도의 삶이 얼마나 충성한 복을 받게 되는 가를 말해 줍니다. 시편 기자도 은혜 받아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모든 행사가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성령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마치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그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8)고 했습니다.

마무리의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성령 충만한 성도의 삶은 시들지 않고 항상 풍성합니다. 날마다 달마다 새 열매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잎사귀도 버리지 않고 약재료로 쓰일 정도로 모든 것이 은혜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면, 먼저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해 보기를 바랍니다. 혹시 은혜의 생명수가 말라가고 있지 않는지, 여러분의 뿌리가 어디를 향하는지 확인해 보고, 만일 잘못되어 있다면 돌이켜 은혜의 생명수를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심령에 생수의 강이 흐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성전 문에 기대고 서 있지 말고 제단 앞으로 나와서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마시십시오. 이미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신 분은 더 깊은 은혜를 사모합시다. 성령의 충만, 은혜의 충만을 통해 죽은 심령을 살리며 날마다 달마다 새로운 축복의 열매를 삶 속에서 가득 맺는 택함 받은 백성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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