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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강가로 나갑시다 (겔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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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양수에 쌓여 10개월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물은 인생의 고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은 유연하고 부드럽습니다. 그 온도에 따라 변화무쌍합니다. 액체가 고체가 되기도 하고, 고체가 다시 액체가 되기도 합니다. 온도의 변화에 따라 액체가 기체로 바뀌기도 합니다. 인체의 80%는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물은 생명유지에 절대로 필요한 필수품입니다. 에스겔 47장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구원의 역사가 강수와 같이 흘러갈 날이 올것을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환상속에서 그 강을 여러번 건너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강을 떠나려 했을 때에 다시 강가로 돌아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과연 에스겔 선지자가 다시 돌아갔던 강은 어떤 강이었습니까

1. 그 근원이 성소에서 시작된 강이었습니다.

(1) 강마다 그 근원이 있습니다. 한강은 수도 서울을 가로지르고 있는 전장 514Km의 대동맥입니다. 한강의 상류는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북한강의 근원은 금강산이요, 남한강의 근원은 태백산맥의 대덕산 중턱의 작은 샘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던 생명의 강의 물이 나서 제단을 중심으로 돌아 끝없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1절)
(2) 여기 성소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한복음2:19이하의 말씀엔 예수님의 육체를 가리켜 성전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소에서 물이 스며나게 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수가 공급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물이 제단을 돌아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여기 제단은 번제단이요, 희생의 제단입니다. 즉, 성소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원된 이 강은 제단을 중심으로 굽이쳐 돌아 뻗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에게 영원한 생수의 은혜가 흘러가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계22:1)
(3) 결국 에스겔이 환상중에 보았던 생수의 강이나, 사도 요한이 보았던 천국의 생명 강수는 생명수의 강이요, 구원의 강이며, 진리와 평화와 복음과 은혜와 성령과 생수의 강인 것입니다. 이 생명수야말로 우리의 영혼이 살아 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축복은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공급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다 주를 떠날지라도 예수님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의 교회를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2. 점점 더 깊어지는 강이었습니다.

(1) 히브리어중에는 강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3종류의 단어가 있습니다. 즉, 나할(급류), 폐력(실개천), 아피킬(운하)입니다. 본문에 쓰이는 단어는 나할로서, 풍성하게 넘쳐 흐르는 급류를 의미합니다. 처음 이 강은 성전 문지방에서 겨우 스며나오는 적은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흘러감에 따라 창일한 물로 변합니다. 바다라도 다 채울 수 있는 엄청난 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의 강수가 온 세상을 뒤엎고도 남을 만큼 풍성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특히 에스겔 선지자는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여 한 사람의 안내를 받아 그 강을 여러번 건너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 안내자는 척량줄로 1천척을 척량한 후 건너게 했습니다. 그 강물의 깊이는 맨처음엔 발목에 올랐고, 무릎, 허리, 그리고 그 다음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물이었습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사랑의 역사, 구원의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은혜의 체험을 척량줄로 척량한 후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의 척도를 기준하여 더 깊은 은혜의 강가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째, 낮은 곳에서 맴돌지 말고 더 깊은 곳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깊은 고차원적인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첫단계는 발목에 새힘을 얻어 열심히 출석하며, 심방하는 것이빈다. 둘재단계는 무릎끓고 간절히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세째단계는 겸손히 엎드려 남을 섬기며 봉사하는생활입니다. 네째단계는 완전히 헌신하여 오직 성령의 지시만 좇아 사는 성령충만한 생활입니다. 바람직한 싱앙생활은 이렇게 첫단계에서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전진하는 생활입니다. 이런 전진이 없는 생활은 곧 퇴보요, 타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겸손히 더 큰 은혜의 강가로, 점점 더 고차원적인 은혜의 세계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모든 병을 치료하는 생명의 강이었습니다.

(1) 본문 8절에 소성함을 얻을지라고 했습니다. 여기 소성함이란 헬라어 니라과우로서, 그 뜻은 치료되리라는 뜻입니다. 또한 아라바는 사해 바다의 입구를 뜻합니다. 즉, 죽음의 사해바다에 이 강물이 흘러 들어가니 그 죽음의 바다가 치료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헬만 헷세는 물은 생명의 소리, 존재하는 것의 소리, 영원히 생성하는 것의 소리이다라 했습니다. 과연 물은 신비한 것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독성을 제거합니다. 잡념을 없이 해줍니다. 생기와 시원함과 힘을 공급해 줍니다. 때로 약수는 불치의 병도 고쳐 줍니다. 백거이는 물은 사람을 평화롭게도 하며, 사람의 기혈을 맑게도 한다. 그래서 나는 물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2) 이렇게 약수가 우리의 육체적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면, 말씀의 생수, 은혜의 생수, 성령의 생수는 더욱 더 우리의 삶을 소성케 하는 효험을 가지고 있다할 것입니다. 과연 이 생명의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며, 소성함을 얻으며, 모든 것이 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9-10절) 또한 강 좌우에는 각종 실과가 자라서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며,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12절)고 했습니다.
(3) 우리 예수님은 죽음의 사해 바다에 영원한 생명의 생수로 찾아 오셨습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넘치는 급류와 같이 사막같은 세상, 광야같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모실 때 시련도, 불황도, 고난도, 실패도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생명의 강가를 떠나지 말고 이 생명의 강가에서 길이길이 살며 새 생명과 풍성함과 시들지 않는 새 생명의 축복과 참된 안식의 복을 누리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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