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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라 (요일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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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관계에 대해서는 늘 미숙하게 느껴짐.
그래서 깊이있는 관계에 대해서 늘 갈망, 그리움이 있어왔다
자연히 성경에서도 ‘관계’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된다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 두가지
a. 관계회복에 대한 접근이 너무 표면적이지 않는가
대화 기술, 상대방 이해, 청취, …...
B. 관계회복에 대한 접근이 너무 원리적이지 않는가
문제 인식. 그러나 그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정이 내 안에 생겨나지 않음
cf. 열정.

2. 요한일서의 접근방식
-베드로와 바울과 요한
베드로-어부, 주님이 처음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바다에 그물을 내리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역할, 그는 왕국의 열쇠가 맡겨짐으로 하나님이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여는 역할. 오순절 때 새로운 성령의 사역을 시작, 고넬료 전도를 통한 이방인 전도의 문을 열어놓음.
바울-텐트를 만들고 세우는 사람. 그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세워가는 역할. 그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놓을 뿐 아니라, 초대교회가 바른 복음적 토대위에서 세워지도록 헌신했던 인물
요한-그가 부르심 받았을 때, 그는 그물을 수선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대교회안에 잘못된 움직임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사람들을 다시한번 순수한 복음의 토대위로 돌이키는역할.
-베드로는 하나님의 왕국에, 바울은 하나님의교회에, 요한은 하나님의 가족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의 가족들인 신자들의 삶 속에 무엇인가 잘못된 움직임이 있는 것을 알아채고, 이것을 수선하고 고치는 역할을 하게된다.
요한 당시에 신자들의 삶속에 있었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1) 생활에 방종한 사람들이 나타남
(2) 신자들간에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관계가 깨어짐
(3)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있음
우리는 우리의 복잡한 문제가 있고, 삶이 미궁속에 빠진 것 같아 보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3. 이런 문제를 사도요한은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요일1:1 태초에-처음 시작을 말하는 태초. 과연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
성경은 태초부터 있었던 것은 어떤 지식이나 사물이 아니라, 조직이 아니라, 한 인격이 있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다닌다, 성경공부를 한다, 봉사를 한다....이런 차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와의 인격대 인격의 만남이요 관계이다.
기독교의 근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이다.
Cf. 마틴 부버, [나와 너]
-그분은 어떤분이신가
1:2 영원한 생명, 생명의 말씀(로고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 인생에 중요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의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렇게 중요해 보이던 관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때로 그 관계는 깨어지고 단절되고 얼룩으로 끝나버리는 관계들이 있다.
우리가 인정해야될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갖는 모든 관계는 완전한 만족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실망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근사해 보여도 “별수 없는 인간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다.
물통과 산속의 샘물:산속의 샘은 스스로 채워진다. 그것은 계속 흘러 넘쳐 다른 것에 물을 공급한다. 그러나 물통은 펌프나 두레박으로 채워야 한다. 따라서 만약 물통이 정말 가치있으려면 열심히 물을 채워넣어야 한다. 우리의 인간관계는 물통과 같다. 그 관계는 한계가 있다. 가만두어도 좋은 관계는 없다. 열심히 물을 채워넣어야 한다. 그러기에 아무리 좋은 인간관계라해도 그것은 결국 피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말라버리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관계는 계속해서 샘솟는 샘물이다. 그것은 차고 넘친다.
-1:1
그런데 복음은 무엇이냐 하면 이 영원한 생명, 생명의 로고스를 우리가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분과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이다.

-1:1-2절의 결론 /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문제들 속에서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우리의 삶의 여러 가지가 갑자기 문제가 생길 때, 인생이 갑자기 피곤할 때,
그것은 바로 예수님과의 관계에 이상이 있다는 적신호입니다.

하나님 형상-교제
이것은 창세기에서도 볼 수 있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많은 논란. 목적에 있어서는 동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인간의 처음 창조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한 것이다.

폴 투르니에 “인간의 삶은 크게 두가지 영역으로 창조됨. 노동과 휴식. 낮에 일하고 밤에 휴식하도록 창조됨. 노동의 영역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과 관계하고, 휴식의 영역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인간의 삶은 적절한 균형을 이루게 된다는 것. 그런데 인간의 삶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 인간은 근본적인 휴식을 잃어버리게 되고, 인간의 삶은 피곤에 찌들어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Cf. 자동차와 설계, 그리고 운전
여러분 피곤하다고 느끼십니까 우리의 피곤의 이유가 일때문일까요 어떤 사람들때문일까요
이런 것들은 부분적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렸기에 인간의 삶은 피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간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다시한번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과의 관계의 토대(1: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하나님의 주도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하나님이 시작하셨다.
우리가 요구하기 전에 이 생명이 스스로 나타나셨다.
-성경은 언제든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하나님이 시작하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수24:2-3)
(느9:7)
(겔20:5)
(눅19장) 삭개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주도권을 갖고 행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10:14-15)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두 번째 이유를 많이 생각한다. 하나님이 우리와의 교제를 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두 번째 이유이다. 첫 번째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교제를 대단히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하시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마지못해 교제해 주시는 분이 아니다. 억지로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와 교제하시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열망이요, 하나님의 기쁨인 것이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와의 교제를 간절히 원하신다.
-진정한 교제의 시금석 거기에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가
(요일1:4)
그래서 그는 그 교제의 장소에 그는 함께하시는 분이시다.
(요일1:3, 마18:20)
하나님이 쓰셨던 사람들바로 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겼던 사람들이다.
모세-출33:11/ 그의 얼굴, 수건...
청교도 시대의 어느 설교자, 여관과 사환

-하나님은 우리와 이 기쁨의 관계를 원하신다.
당신은 이 하나님과 기쁨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이 기쁨의 교제를 잃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5. 하나님과의 교제회복
(1) 죄를 해결하라(1:5-2:2)
빛되신 하나님과의 교제-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5-7절.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시킨다
얼굴을 가리운다
(사54:8)
(사57:17)
(사64:7)
(렘33:5)

우리 모두 이 죄문제에서 예외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8-10.
자백해야 한다.
(요일1:9)
(대하7:13-14)
(민6:24-26)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화목제물이시다. 2:1-2
화목제물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제물
(2)하나님께 순종하라(요일2:3-11)
범죄한 사람은 하나님을 피하게 마련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후 수풀속에 숨었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불러내셨읍다.
요나는 배 밑창에 들어가 숨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지중해 한가운데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사람은 다시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요나는 회개하고서 하나님이 말씀앞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주님과의 교제 그분은 우리 교회의 머리, 주인이시다. 그리스도외에 다른 대상에게 바치는 충성은 영적 간음이다.

(3) 우리의 전존재를 다걸고 하나님을 사랑하라(2:12-17)
“ 한 영혼의 가치와 탁월성은 그 영혼의 사랑의 대상에 의해 측정된다”/하나님의 기쁨
(마22:37-38)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 . 내가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면, 다른 이웃들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다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런 열정이 생긴다.
이것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두가지 있다.1) 사탄-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지내는데, 대적하는 자가 있다.
2) 세상적 태도-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 생길 때 이것은 곧 다른 형제에 대한 태도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궁핍한 형제를 봐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마저도 자신을 위해서 쓸 것이다.

Cf.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나는 미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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