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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법칙 (요 1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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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이야기입니다만 최근 들어 우리사회가 황금만능, 인명경시, 도덕과 윤리의 실종(失踪) 등 (重病)을 앓고 있다고 야단들입니다. 친부모를 잔인하게 인존속살인(尊屬殺人)사건, <살인공장>을 차려놓고 소위 '있는자'에 대한 '없는 자'의 갈등이 표출된, 부유층을 무차별로살해 해온 <지존파>일당의 범행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군대에

5.16, 1

2.12 사건같은 하극상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병들이 소대장에게 반말을 지껄이며, 소대장을 길들인다며 소대장을 집단 구타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어서 사격장에서는 사병이 지휘관들 향해 K2 자동 소총을 무차별 발사하여 장교 3명이 살해된 사건이 터졌습니다. 동국대학교에서는 제자가 스승을 폭행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들 사건을 놓고 분석한 결과 소위 '낮은 자', '못 배운자'의 자', '배운 자'에 대한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대해 사회 각계 원로와 시민 단체등이 도덕성 회복운동에 계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최근 반인륜적 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원인이 우리의 전통적인 효(孝)사상
이 실종된데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데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윤리의식을 회복하자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없는 자'의 '있는 자'에 대한 갈등, '낮은 자'의 '높은 자'에 갈등, '못 배운자'의 '배운자에 대한 갈등 등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하게 범죄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의 급속한 고속 성장에 그 원인이 있는듯 생각됩니다. 빈부의 격차는 어느 나라 사회든 항상 있어 왔으나 기독교인은 그 빈부의 격차가 갈등 요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달란트의 비유(마25:14-30)서 밝혀 주듯이 물질이란 근본적으로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 주인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맡은 것'이라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가막힌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에 바탕을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아인식(自我認識)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고후6:8)....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6:9) 무명한 자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로다.
이는 자아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처럼 기독교 신앙을바탕으로 한 삶의 가치관 형성과 자아인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인간성 회복과 도덕성 회복의 길은 직 예수 밖에는 없습니다. 작금 인간성 회복, 도덕성 회복을 위해 기독교, 천주교, 불교, 광복회 등 사회 각계 원로들 50여명이 <孝 세계화 운동 본부>를 발족시켰습니다.<孝 세계화 운동 본부> 김삼열 본부장은 사회의 이같은 병리현상(病理現狀)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효>라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부모를 모시는 사람에 대해서는 세제감면, 특별수당지급, 휴가 등의 혜택을 주어 효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로 만들자는 취지를 밝히고 있습니다.그리고 이러한 일을 추진하기 위해 효도세(孝道稅)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구청 세무계 직원들이 국민들의 혈세(血稅)를 수백억원씩(앞으로 얼마나 더 밝혀질지 모르지만) 횡령하여 온통 나라가 시끄럽고 문민정부에 대해 불신과 배신감이 팽배한 이때 또 <효도세>를 신설한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효도세>가될지 뻔한 이치입니다.<孝 세계화 운동 본부>를 만들어 <도세>를 거두어 들인다고 인간성과 도덕성이 회복되었다는 역사적 증거가 있습니까 세금에는 명수들인 선진국들 가운데 소위 윤리 지수(倫理 指數공생공존<共生共存>해야 는 인류사회는 고도의 지능보다 남을 배려하고 남과의 관계덕목을 고양시키는 윤리적 성숙이 더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데 이것을 측정하기 위해 지능지수, IQ처럼 각 개인의 윤리적 성숙도를 측정하는 EQ<Ethic Quotient>를 말합니다.)윤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까 고려대학교 총장은 도덕재무장만이 사회의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소학 등 유교(儒敎)의 경전을 대학 교육 필수과목으로 하겠다고 합니다. 유교나 불교는 이미 이 나라에서 실패한 종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는 오직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일어나는 일입니다.모든 생명의 창조주는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은 모두 마귀(사탄)의 역사(役事)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생명을 잃도록 미혹한 것이 마귀입니다.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인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마귀(사탄), 죄,사망 이 세가지는 지옥의 삼총사입니다. 마귀는 죄를 짓게하고 죄는 사망을 하므로 함께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죽며, 절망시키며, 분열시키며, 혼란을 야기시키며, 파괴하는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인 것입니다.
(요20:31)....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또한 마귀를 없애려 오신 것입니다. 마귀의 세력을 없애는 길은 오직 생명이신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이 시대적인 상황을 성서를 통해 바로 인식해야만 합니다.
(마8: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더라(마8:29)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8:30) 마침 멀리서 많은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마8: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여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 보내서 한대 (마8:32)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마8: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마8: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귀신들려 심히 사나와 아무도 가까이 하지 못하는 사람이 예수를 만나게 되므로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동네에 무덤 사이에서 동네 사람들을 두렵게 하며 괴롭힌 귀신들린 사람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었으나 그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 귀신들린 돼지 떼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몰사하게 되므로 재산의 큰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귀신들린 자의 고침과 돼지 떼의 몰사를 두고 동네 사람들은 예수가 자기 동네를 떠나가주기를 간구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으로 인해 두려워하며 살던 것이 예수 때문에 이제 안심하고 살게 된것은 생각하지 않고 몰사 당한 돼지 떼만을 아깝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귀신들려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고는사람이 예수를 만나 그 <인간성이 회복>된 것을 기뻐하지고, 그리고 그 동네에 참 평화가 오게 된것을 망각하고, 단지 몰사당한 돼지 떼, 물질에만 눈이 어두워 예수를 추방하는 것이 <생명>을 잃어버린 현대 사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보다 물질(돼지 떼)을 더 중시하는 사회에 결코 사망의 세력인 귀신들이 떠나갈리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보다 물질을 더 중시하는 것은 공산주의 사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북한의 공산당으로 인하여 수많은 생명을 잃었고, 또 지금 생명의 위험을 가져오고 있지만, 남한의 인명경시 풍조의 만연,물질만능주의의 사회 현상 등은 역시 공산당 못지않게 이 사회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생명>의 예수를 잡아 죽이고, 강도 <바라바>를 놓아주는 것이 인간 사회입니다.인간성의 회복과 도덕과 윤리의식의 회복은 이 사회에 <예수>가 살아나야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인간의 존엄성 회복(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게 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요12:26)너희들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한 알의 밀알처럼 사는 것입니다.(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죽어 지내는 사람이 많아질 때 그 사회에 생명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법칙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요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삶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죽음으로서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안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며 열매도
못하게 됩니다. 그것이 열매를 맺히게 되는 것은 차가운 땅에 떨어져 무덤 속에 매장되는 것처럼 그 곳에 묻힐 때입니다. 교회가 성장하게 된 것은 많은 순교자의 죽음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초석이다라고 하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들이 죽었기 때문에 교회는 산 교회가 된 것입니다.
전라북도 하리 성결교회에 문형일집사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성결교회의 역사는 비록 오래 되었으나 발전하지 못한 채 초가 삼간 예배당의 지붕이 낡아서 비가 새고 형편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문집사는 이런 형편을 보고 교인들에게 성전을 새로 지어보자고 권유했더니 교인들은 지레 겁을 먹고 하나 둘 교회를 떠나기 시작해 나중엔 몇 명만이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할수 없이 문집사는 자기의 전 재산인 논 서마지기를 팔아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배당 문턱 아래까지 겨우 짓고 나니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는 제단앞에 엎드려 기도를 시작했는데 그때는 마침 장마철이라 그 장마가 다 끝나도록 기도한 후에 어느 날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는데,며칠 전에 신문에서 과학이 사람의 눈알도 이식할 수 있다는 내용이 생각났던 것입니다.웬일로 그런 생각이 스쳐갔는지 곰곰 생각해 보다가 아 내 눈을하나 팔아서 예배당을 다시 지으라는 지시인가 보다하고 전주 예수 병원 안과에 가서 그런 말을 하니 그 갸륵한 마음에 간호원도 울고 의사도 울고 또 그 소식을 들은 원장인 선교사도 너무 감동되어 울며 교회를 그처럼 사랑하는 문집사를 위해 악수하고 사진을 찍은 후에 미국의 신문에 소개하길, 한국에는 자기의 눈알을 팔아서 예배당을 지으려는 성도가 있다. 누구든지 이런 일에 참여하고 싶은 이들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사방에서 성금이 걷혀지고 선교사는 그것으로 예배당과 주택을 지어주고 또 문집사에게는 논 여섯마지를 사서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밀알이 있을 때 교회와 사회는 꽃이 피고 생명의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8.15해방 후 김구는 새 나라의방향은 나라를 세우는 건국과 교회를 세우는 건교(建敎)에 있다고 역설하며, 즉 건국과 건교를 동시에 함이다....경찰서열을 세우지 말고, 교회 하나를 세우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신국가 건설을 할터인데 '기초없는 집을 세우지 말자.' 곧 만세반석되는 그리스도 위에 이 나라를 세우자고 역설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규식도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잡고,다른 한 손으로는 우리가 서로 서로 붙잡고 나가자며 신앙을 중심으로 단합을 호소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나라 민족의 생명은 예수믿는 성도, 교회에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하고,덴마크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유대인에게 가슴에 노랑 별을 달게 했습니다. 그 당시 덴마크 왕이 있었는데 크리스챤 10세이었습니다. 이 왕은 국민들,곧 기독교인들에게 우리도 가슴에 노란 별을 달자고 호소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노란 별을 달아야 하는 그 날이 밝았을 때, 가슴마다 별을 단 덴마크 국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유대인도 덴마크 시민인데, 차별하려면 우리도 차별하고, 죽이려면 우리도 함께 죽이라는 시위였습니다. 나치의 학살이 가장 적었던 점령지가 바로 덴마크였습니다. 크리스찬 10세 국왕을 선두로 기독교인들이 일치단결하는 사랑의 실천으로 유대인들을 최대한 보호했던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생명을는 것은 우리 사회를 예수화(복음화)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예수가 살고 내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살기 위해서는 자아(ego)가 죽어야 합니다. 예수를 죽이는 정치, 경제,문화, 종교는 제아무리 많은 운동본부를 세워본들 그 사회 국가에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살리는 정치, 예수를 살리는 경제, 예수를 살리는 종교, 예수를 살리는 문화, 예수를 살리는 교육, 예수를 살리는 운동이 일어나야만 인간의 존엄성이 회복되고 아울러 도덕과 윤리의식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를 살립시다! 내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내가 죽고 예수를 살립니다. 자아(ego)가 죽을 때 생명의 영(靈)이신 성령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자아가 죽을 때(self-denial) 자기 중심주의(ego-centric)에서 하나님 중심주의(God-centric로 변화되어 삶의 가치관이 바뀌게 됩니다. 죽음은 누구나 싫어합니다. 어느 팝송가사에서도 천당을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나 천당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노래가 있천당은 모두가 좋다고 하지만, 천당에 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죽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김익두 목사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높은 산 위에 있는 광산을 방문하셨습니다. 아주 높은 곳이어서 광산까지 올라가려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실어나르는 조그마한 케이블 카를 타야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시어 전도를 하시자, 어느 광부가 여기서는 전도하지 말라고 장난기가 섞인 농담을 했습니다. 이유를 알아 본 즉, 얼마 전에 미국 선교사가 이곳을 다녀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케이블 카를 타고 광산에 올라가던 중 그만 고장이 나서 케이블 카가 잠깐 멈추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황하여 아래를 내려다보니 천길만길 깊은 계곡이라 그 줄이 끊어지는 날이면 정말 끝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선교사는 얼마나 놀랐던지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광부는 당신들은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고 전도를 잘 하면서도 죽는 것은 우리와 똑같이 싫어하고 무서워한다고 비꼬았습니다. 입장이 난감한 목사님은 돌아서서 잠깐 기도를 하셨답니다. 하나님, 급합니다. 지혜를 주셔하겠습니다.라고. 그랬더니 선뜻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광부에게 말했습니다. 그 당시는 학질이 유행하던 시기여서 당신네들 학질을 앓아 본 경험이 있소하고 물었습니다. 학질이란 병은 묘하게도 하루 건너뛰면서 증세가 나타나는데, 대단히 추워서 벌벌 떠는 무서운 병입니다. 광부가 앓아본 경험이 있다고 하자, 학질에 반드시 먹어야 하는 키니네 약 맛이 어떠냐고, 그리고 먹을 만 하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 약은 쓴 맛으로 유명해서 먹으면 나을 줄 알지만 다들 먹기 싫어하는 약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이것을 응용해서 설명하시기를 천당가는 것이 좋은 줄 알지만 죽는 맛이 쓰기에 죽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고 잘 설명을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천당이 확실해도 죽음의 고통을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의 아침을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모르실리 없습니다. 썩는다는 것은 아픔이요 고통입니다.
(요12:27)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 때를 위햐여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그러나 십자가 후에 부활 승리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고통과 아픔을 이겨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십자가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자아가 죽을 때 십자가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누가 죽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죽으셨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죄 없으신 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요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십자가는 영광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자리입니다. 십자가는 자아(ego)가 죽어야 하는 곳입니다. 자아가 죽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바로 여기에 십자가에 생명의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가 생명으로 넘치는 길은 한 알의 밀처럼 땅에 떨어져 죽는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5천년 전의 볍씨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져 죽어 썩지않으면 5천년 아니라 수십만년이 된다 할지라도 한 알 그대로 입니다. 교회 생활을 10년,20년, 아니 평생을 했어도 십자가에 자아가 죽지 아니하면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미국 교회 교인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 달구지같은 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밀어야만 가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둘째 연(鳶,kite)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끈을 붙들고 있지 않으면 언제 어디로 날아갔는지 날아가버리는 사람'을 말합니다.셋째 고양이 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이는 '줄곧 토닥거려줘야 만족하는 교인'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넷째 풋볼(미식축구)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이는 '다음 순간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는 교인'을 말합니다. 다섯째 풍선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잔뜩 부풀어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교인'을 말합니다. 여섯째 전구(電球)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이는 '쉴새없이 켜졌다 꺼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교인들은 모
두가 자아가 십자가에 완전히 죽지 않아서 자기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 사이를 왔다 갔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믿고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생명의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영광된 가정과 교회, 그리고 생명력 넘치는 사회가 되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참조:과거 전통사회에서 우리의 결혼 후보자의 윤리 지수를 높이는 윤리 기준들>

1.그 가문에 족보나 전래된 문집(文集)이 있는가 없는가.

2.조부모나 부모에게 조석으로 문안드리는 가풍이 있는가 없는가.

3.어릴적 부터 남녀유별(男女有別)이 가려 길렀는가 아닌가.

4.가문에 그 집 나름의 장 김치 술 등 특유한 전승되는 음식 솜씨가 있는가 없는가.

5.사내아이는 <소학>(小學)을, 계집아이는 <여사서>(女四書)를 읽혔는지 않읽혔는지.6.밥먹을 때 어른보다 먼저 숟가락을 들거나 숟가락을 놓는지 그렇지 않는지 등이 그 결혼 후보자의 윤리지수 측정기준이었다.
이같은 윤리 성숙도로 그 가문과 사람 됨됨이를 측정하는 관습이 있었다. 혼담이 오고 갈때 통혼(通婚)조건으로 그 상대 가문의 윤리적 성숙도를 내탐(內探)하는 관습이 그것이다. 그 가문의 윤리적 성숙이 바로 그 자녀의 윤리적 성숙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그 밖에도 윤리성숙도를 따져보는 기준은 다음과 같이 다양했다.

1.길 다닐때 신발 끄는 소리 내지말며,

2.밥먹을때 씹는 소리내지말며,

3.치마입을때 바람소리 내지말며,

4.손덥힐때 입김소리 내지말며,

5.개 닭 쫓을때 나무라는 소리 내지말며,6.졸면서 코고는 소리 내지말며,

7.앓는 소리 내지말며,

8.추야장 깊은 밤에 한숨소리 내지말며,

9.걸을때 신 뒤축 꺾어 신지 말며,
10.손씻고 물방울 튕기지 말며,
1

1.남들 앞에서 잇새 쑤시지 말며,
1

2.개발딛고 담너머 보지 말며.
이같은 옛 전통사회의 측정항목들은 오늘에 다 맞는 것이 아니나 현대에 참조할 만한 EQ문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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