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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데 (롬 0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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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주간동안 휴가를 겸하여 토론토 한인 장로교회의 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카나다를 다녀왔습니다. 사흘간의 집회를 전후로하여 토론토에 있는 친척의 집도 방문하고 이곳 저곳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누가 카나다를 천당 바로 밑인 구백구십구당이라고 했다는데 자연의 아름다움만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이 그렇게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할만큼 자연이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집회를 마치고 다녀온 여행은 평생 있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생활하면서 저는 하나님의 창조에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방향은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때문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우리 인간을 위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힘쓰셔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그것을 맨 마지막에 창조하신 우리 인간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이 아름다운 세상을 주시기 위하여 그토록 힘써 세상을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속에 충만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 넘치는 사랑이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생명과 아름다움의 근본이요 원칙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사랑을 원칙과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리고 자연이든 사랑하면 살고 미워하면 죽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의 법칙인 것입니다. 미워하기 까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도 아닌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경우에도 생명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름다움은 사랑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아름다움은 맹목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아름다움의 목적이며 생명의 원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신 넘치는 사랑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를 모든 아름다움의 목적으로 그리고 모든 생명의 원인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몇일동안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생활하면서 제가 온 몸으로 체휼한 하나님의 멧세이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최고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의 결론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연 뿐만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에서와 십자가 사건에서 더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잘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개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 설교에는 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어떤 교인이 '오늘도 우리 목사님이 개소리()를 하셨다'라고 이야기해서 사람들이 웃었다는 이야기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보다도 헐씬 더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을 개를 거의 사람과 동등하게 생각을 하고 키웁니다. 저는 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개와 사람은 구별하니까 별로 걱정을 않하셔도 될 것입니다().
개를 가족과 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개 아비'라고 한번 불러 보십시요. 아마 그분들은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그분들을 '개 자식'이라고 부르면 문제가 심각해 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개를 사람취급하는 것은 인정하여도 자기를 개 취급하는 것은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우리가 개가 되었다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비천함입니다. 그 비천함은 어떤것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비천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단 하나의 이유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시고 죽도록 고민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은 자신에게서 옮겨달라고 땀이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는 기도를 세번씩이나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예수님께서 지신 까닭은 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멧세이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그 한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시도 그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를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깨끗하고 반듯한 의인이 될 때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로울 때도 사랑하시고 불의할 때에도 사랑하십니다. 의와 불의는 사랑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의한 자가 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불의한 자가 되었다고 미워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해놓고는 이제는 네가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께서 너를 버리셨고 너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속이지만 그것은 거짖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너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사랑하리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니 회개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거나 불의할 때나를 불문하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났을 때나 못 났을 때나를 불문하고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 그리고 건강할 때나 약할 때를 막론하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의 말씀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5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8-39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끊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며 보편적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은 우리에게 놀라운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은,

첫째,우리에게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키에르케고르라고 하는 철학자는 절망을 죽음에 이른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절망이 죽음에 이른 병이라면 소망은 생명에 이르는 약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과 같은 소망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에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1절-32절)
얼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으신 분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나님은 바울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곧 소망인
것입니다.
둘째, 우리에게 기회를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도 우리에게 환난도 있고 곤고함도 있고 기근과 적신 그리고 위험과 칼도 있는 것을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찾아 낼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다시말해서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편안함과 형통함도 합력하여 악을 이루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에게 우연한 일이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필연이며 우리가 쉽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그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그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 드디어 그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고난도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역경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순경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실족하고 망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은 우리에게 기회를 줍니다. 그리하여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합니다.

셋째, 자신에 대한 교만하지 않은 당당한 자신감을 가져다 줍니다. 사람은 사랑받지 못할 때 초라해지고 그 초라함은 그 어떤것으로도 대체가 되지 않는 불행감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그 초라함은 열등감으로 발전하고, 그 열등감은 교만으로 때로는 미움과 시기와 원망으로 발전하여 자신과 주위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이 초라함과 쓸데 없는 열등감에 빠져 불행해 지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은 당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아름게 자신의 삶을 승리로 이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어려운 여건과 환경 때문에 낙심하고 절망중에 있는 분들은 없으십니까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으며 모두가 다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며 쓸데 없는 열등감과 외로움에 빠져 슬퍼하고 미워하며 자신과 타인의 삶을 파괴하며 사시는 분들은 없으십니까
자연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한번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용히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초라하고 못난 사람이 아니며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셨는데 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이 하나님의 사랑은 끊을 수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얼마든지 아름다워 질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생명의 풍성함으로 부요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잠시 당하는 환난과 고난 까지도 기회로 삼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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