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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생하도록솟아나는샘물 (요 0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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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는 세계에서 4,000 여 명의 정신

과 의사들이 모여 '정신 치료에 있어서의 인간의 가치'라는 주제로

세계 정신과 의사 대회가 열렸습니다.이 대회에서 3명의 강사가 차

례로 주제 발표를 했습니다.

첫번째 강사는 롬(H.P.Rome)박사로,그는 인간이 진정한 가치

를 발견하는 길은 인간의 마음 속에 '믿음'이 있을 때라고 했습니

다.그에 의하면 인간은 믿음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게 된다는 것

이었습니다.

두번째 강사는 잰즈(H.W.Janz)박사였습니다.그는 인간의 가치

를 '소망'속에서 찾았습니다.그는 인간의 마음 속에 '소망'이 있을

때 인간으로서의 긍지와 삶의 보람과 의미를 갖게 된다고 하였습니

다.

세번째 강사인 시친(C.A.Sejuin)박사는,인간은 누구나 상처받은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고 하면서,그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할 수 있

는 길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이 무조건적인 사랑

은 인간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며,좌절과 회의(懷疑)의 구렁텅이

에서 탈출할 수 있는 끝없는 능력을 공급해 준다고 하였습니다.

주제 발표를 한 이들은 신학자도 종교학자도 아닌 정신과 의

사들입니다.그들이 찾은 인간 가치의 회복의 길이 믿음,소망,사랑이

었던 것입니다.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인간 회복의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의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

으나 심각한 심령(心靈)의 갈증(渴症)을 겪고 있는 파괴된 인간성

(人間性)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

을 만나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일시(一時)에 그 갈한

것을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참 사랑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그 여인은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 여인에게 참 생

명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그 여인은 목마른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

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

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 4:13-14)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

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한

7:37-39)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21:6-7)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는 곧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성령은 예수님을 믿는 자면 누구든

지 값없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靈)이 너희 안에 거

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예수 없는 인생은 사실 죽은 인생입니다.성령은 죽은 자를 '살

리는 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천국문에 다다랐을 때 베드로가 우리를

맞으러 나와서 우리에게 종이와 연필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자,열 개의 문제를 내겠다.만약 그

중에 일곱 개 이상을 맞추면 그 사람은 천국으로 들어간다.하지만

네 개에서 일곱 개 사이를 맞추면 연옥에서 기다려 주어야겠다.만

약 세 개 이하로 맞춘다면 미안하지만 즉시 지옥행이다. 자,준비

는 되었겠지 일 번 문제, 당신은 어떤 세례가 옳다고 믿는가 침

례(浸禮)인가 재계(齋戒)인가 아니면 관수(灌水)인가 또 삼위일체

의 이름으로 받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성자의 이름만으로 받는 것

이 옳은가 침례는 세 번 물에 잠기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거룩한

깃발 밑으로 통과하는 것이 옳은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줄로

이으면 된다. 이제 큰일났습니다! 옆 사람의 것을 컨닝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도 없습니다.양쪽을 살펴보니 한쪽

에는 구세군 출신이 앉아 있고,한쪽에는 영국 국교회 출신이 앉아

있는데,당신은 침례교도거든요.그러니 컨닝을 해봤자지요.세 사람

모두의 답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매사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에 분열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에세례를 어떤 방식으로 베풀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 속에 와 계신 예수

님이십니다. 서는 교리시험 따위가 없습니다.베드로가

칠판과 종이,연필을 가지고 기다리고 서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대신

베드로는 청진기를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리 시험을

치루기 위해 책을 잔뜩 짊어지고 천국문에 이를지도 모릅니다.베

드로 선생님,시험을 보려고 하는데 책상이 어디 있나요 하지만

베드로는 들은 척도 하지않고 여러분에게 청진기를 들이댑니다.두

근 두근 두근 두근.좋아,통과! 천국에 들어가도 돼. 저,베드로

선생님,감사합니다만 그러면 시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됐어,

심장이 뛰는 걸 보니 살아 있군,그거면 됐어.

구원이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워진

것을 아노라.(요한1서 3:14)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아들이 있는 자에

게 생명이 있는 것이지 올바른 교리가 있는 자에게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생명입니다!.

예수가 사랑입니다!.

예수가 없는 곳에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가 없는 곳에 사랑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각양 각색 크고 작은 갈증을 지니

고 삽니다.특히 생존 경쟁이 치열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끊

임없이 타인과 자신의 현실적 부귀를 비교하여 상대적 목마름에 시

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갈증은 바로 영혼의 갈증이

라 하겠습니다.수백 세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지상의 갖가지 쾌락

의 잔들을 홀짝거려 오면서 그것들에게서 궁극적인 즐거움을 발견

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악의 즐거움은 잠깐 동안(시 90:5,벧전 1:24)

이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시90: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

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그렇습니다.세상에 속한 즐거움의 꽃들은 오늘 피었다가 내일

시들어 죽을 것들입니다.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성과를 이

룩하여 부와 명성과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들이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이

는 마치 망망 대해에서 표류하는 자들이 주위에 그렇게도 많은 바

닷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만약 그들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바닷물을 마신다면,오히려 갈증은 더해지고 종국에 가서는

목이 타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참된 만족은 없을까요 사람이 영원히 세상

을 헤매며 신기루(蜃氣樓)를 쫓다가 실망만을 계속 되씹어야 할까



아닙니다.인간의 마음을 참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이 계십니

다.여러분에게 생명의 물을 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시며,그 분이 주는

물을 마신다면 다시는 목마름이 없을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께서 주시는 성령입니다.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성령을 베풀어 주십니다.

중국의 진시왕은 불사약을 구하려고 천진난만한 동남동녀(童男

童女) 500명을 영주 삼신산으로 보냈습니다.불교에서 정신 수양을

통하여 인생사에서 오는 108번뇌를 물리치고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

려 한 것도 영생의 욕구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영생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이란 생명

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그리고 그 은혜는 믿음으

로써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사람들은 마치 본문의 사마리

아 여인처럼 예수께서 자신을 밝히 드러내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영

생의 생수를 마실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어

느 한 민족이나 일단의 사람들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

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함입니

다(요3:16). 예수님은 이러한 그의 사랑을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

락질과 천대를 받아야 했던 부도덕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친히 생수

를 주심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은 모든 죄인들에게 영생하도록 솟아

나는 생명수를 값없이 나누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수천만금의

재산이 있어도,달나라를 가는 지식이 있어도,천하를 호령하는 권세

를 가졌다해도,절세 미인이라할지라도,제아무리 많은 선행을 쌓았다

해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생명,구원,사랑을 값으로 환산하여 파시지 않습

니다.하나님은 생명을,사랑을 거저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고 그리스도와 그 분이 주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에 영원토

록 솟아나는 생명수를 마시게 되며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죄의

생활에서 돌아서는 순간,그 모든 마음을 예수께 드리는 순간,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모든 죄를 회개하고 생명수이신 예수께

서 주시는 '사랑의 생수'를 받아 마셔야 합니다. 한 번도 만난적

이 없는 사마리아 여인의 모든 과거를 다 아시는 주님은 우리의 모

든 것도 다 알고 계십니다.따라서 세상의 어떤 것도 주님으로부터

숨겨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여인에게 깊은 사랑을 베푸셨던 예수님은 지

금 이 시간에도 회개하는 모든 자들을 당신의 따뜻한 사랑으로 감

싸주시며,아울러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수를 선물로 주

실 것입니다.

주님밖에는 살 소망이 없음을 알고 자신의 죄인됨을 솔직히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타임지에는 한 기업가의 인생이 한 페이지 전체에 실

린 적이 있었습니다.그는 아리스토틀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라

는 사람으로서 타임지는 그를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재계 거물들 가

운데 하나'로 평하고 있었습니다. 오나시스는 겨우 17세의 나이에

고국 그리이스를 떠나 한 몫 잡아보려고 3등 선실에 몸을 싣고 아

르헨티나로 갔습니다.단돈 100달러로 시작한 것이 4년 후 그가 21

세가 되었을 때에는 백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그는 냉정하고 단호

한 사업꾼으로 평판을 날리게 되었습니다.그는 부와 그 부가 가져

다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타임지 기자는 오나시스의 말을 직접 인용하였습니다.요즘 세

상에서 중요한 것이 돈 밖에 더 있습니까 지금은 돈 있는 사람들

이 왕족이고 귀족이라구요. 그러나 아들 알렉산더가 비행기 사고

로 죽는 일이 발생하자 오나시스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습

니다.그의 한 측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그는 하룻밤 사이에 폭삭

늙어버렸어요, 갑자기 노인이 되버렸다구요. 프랭크 브래이드

(Frank Brady)는 자신의 책 <오나시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

다.아들의 죽음과 함께 그 역시 죽었다. 오나시스는 계속 신경장

애로 고생하다가 2년 후 딸 크리스티나 혼자서 지켜보는 가운데 쓸

쓸히 죽어갔습니다. 그에겐 부는 있었지만 사랑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파괴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인간의 갈증을 영원히 충족시킬 수 있습니

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더러워진 인간의 사랑을 정화(淨化)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깨어진 인간의 사랑을 재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야 참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

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야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됩니다. 예

수님을 진실로 믿으시고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신 행복하신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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