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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뒤엉킨 실타래와 같은 감정 (잠 1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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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터널과 감정
자동차를 몰고 시원스레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정말 쭉쭉 뻗는 고속도로를 달리노라면 얼마나 상쾌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달려 보면 달릴 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정체 구간도 만나고 또 터널도 만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집으로 가게 될 것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그곳에는 어제든지 들어오기 전의 화창한 밝은 태양이 그곳에도 비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감정도 이와 같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감정의 동물인지라 이러한 감정의 기복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이 신앙의 성숙에 지대한 장애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실수하고 신앙과 믿음조차도 감정으로만 처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결코 우리의 믿음의 길에서 감정이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① 감정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감정은 참으로 미묘합니다. 인간의 기술이 발전하여 인간과 흡사한 컴퓨터나 로보트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결코 그들 속에 감정만큼은 창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감정은 천사들의 감정과도 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감정을 자극하는 환경이나 육신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많은 아름다운 노래와 문학, 그리고 시와 그림들이 인간의 정서와 감정의 소산물이라는 사실은 인간만이 예술작품의 창조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성경도 문학 양식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② 감정의 소용돌이
성경 속에서 가장 격앙된 감정이 드러난 사람의 이야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한나’라는 여자의 이야기 일 것입니다. 사무엘상 1장에 그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재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뇌케 하더라.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한나의 감정이 얼마나 소용돌이 쳤겠습니까
실로 우리는 이처럼 한없는 고통 속에 감정을 주체치 못하는 이야기와 사건들을 너무 많이 봅니다.
얼마전입니까 그만 아내가 약을 올린다고 술을 마시고 돌아온 남편이 잠든 애들과 부인에게 석유를 붓고 자신도 기름을 덮어쓰고는 불을 질러 일가족이 몰살을 한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붙잡지 못하고 이성과 상식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그만 사고를 저질러 버리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수습할 수 없을 정도의 문제가 발생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감정의 골이 깊어질 때 사람들은 이것을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인간의 병은 대개의 경우 이 스트레스가 깊어질 때 생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여러 가지 감정을 푸는 방법을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스트레스가 쌓일 때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십니까
대개의 청소년들은 교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노래방’을 갑니다.. 전에는 오락실에 가는 것이 고작 이었는데 제법 대담해져서 ‘노래방’에 가기도 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감정의 기복이 심한 녀석들은 본드를 흡입하기도 하고 약물을 섭취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성인이 되신 여러분들은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십니까
제 경험으로는 한 때 엄청나게 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감정을 주체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데 오히려 술을 마시면 감정이 폭발해 버리고 맙니다.
아무튼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붙잡히지 않는 것이 감정인 듯합니다.

2. 감정의 사람 삼손
강한 사람이 마음이 여리다는 말들을 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런 사람이 한 명 등장합니다.
삼손입니다.
이 친구는 하나님 앞에 특별한 사람 나실인 입니다.
나실인이란 날 때부터 구별되어서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고 성결하게 키워지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감정과 욕구는 누르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옆으로 불거져 나와 터져 버리는 것입니다. 삼손이 자랐던 환경은 욕구를 억누르는 환경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결국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참고 억누르는 훈련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자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움을 입고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치를 때에 그는 얼마나 많은 감정의 기복을 느꼈겠습니까
일전에 어떤 교회 목사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6.25때 학도병으로 갔다가 적군인 북괴군을 죽이는데 차마 적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죽였다는 공포감 때문에 관절염으로 10여 년간을 앓았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예수를 만나 감정을 다스리고 병을 이겨 결국 목사가 되었노라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삼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삼손이 이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삼손은 전쟁을 치른 후면 어김없이 기생 집을 찾았습니다. 그의 감정을 풀어 주고 개인적인 얘기를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속에 있는 마음을 털어놓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부인한테 하지 못하는 얘기도 술집 마담에게 가서 털어놓는 것을 봅니다. 삼손은 아예 이러한 생활이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위로자를 찾기 위하여 믿고 이야기했던 그 상대가 그만 삼손을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형벌과 감옥으로 집어넣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 이루어 놓은 것을, 조금만 참으면 되는 것을 순간의 감정에게 져 버려서 회복하기 힘든 실패의 자리로 주저앉아 버렸던 것입니다. 가정 주부가 남편과 가사 일상의 무료함이라는 감정을 이기 지 못해 가정이 파탄이 나는 이야기가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이여!
여러분들은 그 감정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어디로 가십니까
여러분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럽게 가지고 있는 여러분들의 해방 공간은 어디입니까 그곳에서 우선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파멸이 오고 맙니다. 나오십시오. 그리고 성경으로 돌아와 우리의 모습을 분석해 봅시다.

3. 감정은 다스려야 합니다.
인간이기에 ‘희.노.애.락’의 감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숨겨서도 안됩니다.
자연스런 감정의 표현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또 감정이 없이 살 수는 없지만 감정으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냉철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삼국지에 보면 감정형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관우입니다. 그는 장기적인 계획에 의해서 움직이기보다는 즉흥적인 감정에 따라 행동합니다. 때로는 폭풍노도와 같은 에너지를 방출합니다만 대개의 경우 그 에너지는 실패로 귀결 되어 자신을 곤경에 몰아 넣습니다. 작전이나 지략에 의해서 행동하기보다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적군에게 포로가 되기도 합니다. 적장인 조조의 식솔이 되기도 하고 그에게서 은혜를 입기도 합니다. 상황이 바뀌어 조조를 잡아 죽일 수가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의리를 중히 여겨야 된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그를 놓아주고 말아 버립니다. 조조는 관우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관우군 쪽으로 도망쳤던 것입니다.
감정의 사람은 쉽게 적에게 헛점을 보입니다.
그래서 성경 야고보서는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은 주께 구하여도 얻지 못하나니 이는 저가 바람에 일렁이는 바다 물결 같아서 정함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충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정은 우리를 움직이는 큰 에너지입니다. 창조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가 적절하게 쓰이면 건설 사업에 도움이 되지만 일순간에 터져 버리면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에 장애물이 되는 이 감정을 부정만 하지 마십시오. 서두에 보았던 한나의 경우 감정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사무엘상 1장 10절부터 보니까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나가 그 억울한 감정을 주체지 못하고 바깥에 나가 술이라도 한 잔 먹고 남편과 브린나에게 자신의 감정 그대로를 터뜨렸더라면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상황은 분명히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었을 것입니다. 브닌나와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고 전무후무한 피비린내 나는 치정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가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사람에게는 감정을 숨기고 하나님께 가서는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여호와께서 풀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원한이 깊고 마음의 상처와 골이 깊었지만은 그는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도와주시기를 구했습니다.

4. 결론적으로
① 하나님은 우리의 친한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감정을 아십니다. 우리의 슬픔과 고통과 감정의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를 이해하십니다. 원통함이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탄식하십시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 나의 아버지 정녕 내 마음을 읽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②예수님을 붙들고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주님도 감람산에서 울며 아버지께 호소했습니다.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십시요” 얼마나 피끓는 절규입니까 십자가 위에서도 울었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여러분들의 고난과 고통은 십자가를 생각하고 그분의 고난을 생각할 때 풀어질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내가 지면 하나님이 나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③성령은 우리의 상담자 즉 카운셀러이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에서 보혜사 성령 즉 곁에서 상담하여 주시는 영이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처음에는 폭풍 같은 감정이 가라앉는 것 같지 않지만 조금만 더 기도하면 성령께서 여러분 마음을 위로하시고 다독거리시고 들어주시면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의 장애물, 감정을 격동케하는 악령의 꾀임에 속지 마시고 믿음으로 기도함으로 감정을 다스려 새로운 신앙의 도약이 되도록 일어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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