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전능자 하나님 (창 18:9-15)

첨부 1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는 ‘전능하심’입니다. ‘全能’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능치못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자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실제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자연법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법의 특성은 ‘실상’을 먼저 봅니다. 현실을 바라보며 판단을 내립니다. 소위‘과학주의’의 영향은 이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을 가장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이 기준대로라면 사라의 ‘비웃음’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아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너무 늙어서 출산하기에는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11-13절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라의 ‘실상’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불가능 했습니다. 그런 사라에게 아이가 생긴다니 기가막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땅의 법으로 하늘의 법을 재고 땅의 일로 하늘의 일을 바라보니 비웃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적을 비웃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의 품성을 향해 사도 바울은“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고전 2:14) 라고 오히려 비웃고 있습니다.

2. 믿음은 ‘소망의 실상’을 바라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은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 진정한 믿음은 우리의 시선을 ‘실상’에 두지 않고 실상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바라봅니다. 현실은 우리의 기대 수준과 맞지않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이미 아이출산이 불가능한 나이일 수 있습니다. 민수기 13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이 그토록 원했던 가나안 땅이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39에 기록된 바와 같이, 나사로의 생명이 끊어져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는 시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믿음은 이 실상에 매이지 않습니다. 실상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현실은 우리에게 넘을 수 없는 산같이 보여도 우리의 믿음은 능치못할 것이 없는 여호와의 손길을 바라보고 의뢰함으로써 실상을 바꾸어버립니다. 하나님은 믿고 의뢰하는 자에게 자신이 하나님됨을 알리길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자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에 대해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아 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