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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받으려면 (요 0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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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20절에서 자신이 온 목적을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풍성함 삶을 주기위해 왔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생명도 얻지 못하고 풍성함도 얻지 못한 채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니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하나님의 주시는 은혜

지금도 그렇지만 왕의 행렬이 지나갈 때면 고개를 들 수 없고,가까이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왕이 평복을 입고 민정시찰을 할 때는 평민들과 함께 대화도 하고,식사도 하고,손을 만져주는 경우가 있습니다.이것이 은혜입니다.지금은 고인이 된 성경학자 반하우스 목사님께서 ‘위를 향한 사랑은 예배요, 바깥을 향한 사랑은 자비요, 허리를 굽힌 사랑은 은혜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솔직히 우리의 행위를 보면 하나님을 만날 자격도 없고, 더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이런 우리들에게 자녀가 되게 하시고, 직분과 축복을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히 무료라는 점입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할 것은 빈손 들고 나아가 주시는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만드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에서 참 평안을 빼앗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행위에 앞섭니다.그러므로 여러분들의 행위를 하나님의 은혜에 앞세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은혜를 아주 풍성하게 베푸시지만 받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로 번지수를 잘못 찾았을 때 즉 은혜는 오직 주님을 통해서만 주어지는데 엉뚱한데 가서 은혜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불신하거나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더 의지하고,스스로 완전하게 되려는 노력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못받게 만듭니다. 셋째는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교만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율법을 다 지킴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자들은 자기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바리새주의자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려는 자들입니다.우리는 겸손해야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다섯째로 은혜의 집인 말씀안에서 살지 않고 멀리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로 진리를 떠난 삶을 살 때 은혜를 받지 못하고 받아도 다 사라집니다. 본문에 반복해서 은혜와 진리란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가짜 은혜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3.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믿어야 은혜받습니다. 14절에 말씀대로 주님은 은혜가 충만한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을 통해서 주어지는데 믿음은 히브리서 12장 2절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과 은혜의 관계를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은혜는 수원지요 믿음은 수도관과 같습니다. 둘째로 오직 주님께 나가면 됩니다.몸이 성전에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심령이 주님께 나오는 것입니다.심령이 주님께 나아오는 것은 바로 기도와 말씀묵상입니다. 셋째로 은혜는 받아야 내것이 됩니다.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했습니다.받지 않으면 내 것이 못됩니다. 넷째로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우리는 14절에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란 말씀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여기서 거하시매(tabernacle)란 말은 “천막에 머무르다”는 뜻입니다. 성막은 광야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천막으로 예배의 장소요,모임의 중심이요,양식을 공급하는 장소였습니다.그러므로 충만한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오늘의 성막인 교회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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