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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의 참된 의미 (레 2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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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백성들의 환호를 들으면서 예루살렘에 자랑스럽게 입성하신 종려주일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동안 그리도 많이 핍박하고 배척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포부도 당당하게 승리의 입성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한번 눈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입성하시는 장면을 그려봅시다. 그 동안 그렇게도 예수를 미워하고 박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도나도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자신의 옷을 벗어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일시에 찬양하리로다 우리의 임금 예수!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뿌듯한 그러한 장면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 승리의 입성은 바로 고난과 아픔의 전주곡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간과해 버리고 있었다는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바로 그 모진 고통을 향해 이를 악물고 전진하는 비장의 발걸음이었습니다. 그 길은 바로 나를 살리기 위해 나의 모든 죄짐을 대신지는 아픔의 길이었고 나의 죽음을 대신 죽어 주는 한없이 무거운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왜 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하시고 무험난하고 무서운 고통의 길을 선택하셨습니까 그것은 누가복음 4장 18절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던 첫번주일 회당에서 설교하시며 이사야 61장 1절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사역을 설명하셨듯이 심령이 가난한자들에게 복음을, 죄의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영의 눈이 먼 자들에게 밝은 빛을 그리고 악의 권세에 억눌린 자들에게 참 자유를 선포하시고 베푸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험난한 고통의 길을 향해 비장한 발걸음을 옮겨 놓으신 것은 바로 우리에게 이전에 전혀 누려 보지 못했던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하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하면 오늘을 사는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를 소유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도 인간들 사이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이기심과 죄악으로 사랑과 정의 참자유의 샘은 메말라가고 불의와 죄악의 강물만이 한없이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종려주일 고통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우리의 몸에 부어주시고 그 속에서 참된 자유를 소유하고 그리고 말라가는 참자유의 샘을 다시 넘치게하여 서로가 서로를 위해 나누어주고, 자유를 선포하며, 하나님 앞에서 공의를 찾을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유의 모습은 바로 구약 레위기 25장에 기록된 희년의 규례를 온전히 지킴으로 이루어 질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희년의 규례를 온전히 지킴을 통하여 인간의 욕심으로 말미암을 수 있는 여러 구조적인 잘못들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본래 희년이란 자유와 안식을 선포하는 기쁨의 해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나타난대도 일곱번째 안식년을 지낸 후 첫번째 해 즉 50년째 되는 해의 속죄일로부터 시작되어 일년간의 기간을 지키는 것으로, 그 기간 동안에 땅은 경작을 쉬고, 토지의 소유권은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며, 노예의 해방을 선포하여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공의를 선포하는 해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희년의 참된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몇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인간의 참된 자유는 속죄와 회개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 하반절로 부터 9절의 말씀을 살펴보면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며 제 50년을 거룩하게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희년을 선포하고 자유를 선포하기 위해 먼저 속제일의 규례를 철저히 지켜야만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자유와 안식을 말하는 입들은 셀 수없이 많음에 반하여 참된 속죄를 통해 얻어지는 하나님의 참된 자유와 안식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음을 살펴보게 됩니다. 이는 그저 아무 의미없이 부르짓는 자유와 안식이 진정한 참자유와 안식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참자유와 참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또 오늘 고통과 고난의 길을 향하셨습니다. 따라서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속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심을 받지 못하면 그 어떤 자유와 평화도 이루어 질 수 없으며,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참자유와 참평안을 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결국 참된 자유와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속죄의 참회와 자복함이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유와 화해 평화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유와 평화의 외침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외침들이 헛된 구호와 외침으로 끝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서로가 참된 회개를 통한 자기 성찰이 없이 남들의 변화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화해와 자유를 향한 변화가 있어지기를 바라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이 변화되고 내가 먼저 자기 성찰을 통해 손을 내밀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속죄와 회개를 통한 자기 성찰과 자신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결단코 어떤 화평과 자유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모든 것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본문 이후 13절로 17절에는 희년에 따른 토지 매매법이 기록되어져 있으며, 18절로 22절에는 안식일을 준수할 것과 그 방법에 대하여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13절로 22절을 읽어보면 오늘 우리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토지매매법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토지의 매매 행위 그 자체는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형편에 따라 토지를 사거나 팔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당한 상거래를 통하여 매매하여야 할 것과, 그 토지의 소유권은 희년 까지만 인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토지를 팔 때에는 희년까지만의 기간을 계산하여 땅값을 계산하여야만 하며 토지를 산사람은 희년까지만 자기의 땅이며 희년을 맞이하면 그 땅의 원 소유자에게 땅의 소유권을 돌려주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년과 희년을 꼭 지킬 것이며 안식년 전 해인 육년째 되는 해에는 2년 먹기에 충분할 만큼의, 그리고 희년의 바로 전인 일곱번째 육년에는 일곱번째 안식년과 희년까지인 3년간의 충분한 양식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시리라는 약속을 해주고 계십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소유이며 사람들은 바로 이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 애굽으로부터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내셔서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인간이 자신들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매매한다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정해 주신 소유자를 인간이 임의로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바로 모든 땅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다만 그 땅을 잠시 부여받아 관리할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만 할 것은 오늘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오직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맡겨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바로 이것이 결여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산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그 삶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소유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보게 됩니다. 인간적인 욕심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나의 뜻 나의 생각을 앞세우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의 소유주이신 하나님의 뜻에 항상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도가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단지 그분께 예배드린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일상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오직 그분의 뜻에 따라서 살 때에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고, 그분께서 정해 주신 규례를 잘 지킬 때에만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염려에 얽매여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안식일의 규례를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 버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떨어지지 않거든 하물며 너희들일까 보냐 하고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을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20절로 22절까지를 살펴보면 혹 너희 말이 우리가 제 칠 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하여 제 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년쓰기에 족하게 할찌라 너희가 제 팔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 구 년 곧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식을 먹으리라 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의뢰하면 하나님께서도 전적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안식년과 희년에는 아무거나 심거나 거두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20절의 제 칠 년은 바로 희년 직전의 안식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한 해에 경작을 하지 못하면 다음해에 아무것도 거둘 수 없으며, 또한 희년이 겹치면 이년동안 추수를 못하고 희년 직전의 제 육 년에는 삼년먹을 분량의 양식이 추수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 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희년이 도래하면 삼년씩이나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를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걱정에 대해 이미 그 해결책까지도 마련해 놓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삼년간을 바로 48년째 되던 해에 추수한 것으로 능히 먹게끔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 모든 것을 의뢰하고 그분이 시키시는 대로만 따라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며, 염려하지 않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기에 우리로 모든 염려로부터 자유하고 오직 그분의 뜻이 무엇인가를 항상 살피고 그 것을 따르며 그분께 영광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유와 화평을 위하여 노력하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희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자유와 화평의 선포였습니다. 요즈음 한국교회에서는 1995년을 통일을 위한 희년으로 잡고 온 교회가 하나가 되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희년은 바로 자유와 평화의 선포와 그 것을 통하여 참된 민족의 일치를 이루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 희년은 기업의 회복을 통해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분명히 구분해 줄뿐 아니라, 과도한 탐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과 정열을 잃어버릴 위험에 항상 놓여 있는 이스라엘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들고, 피치 못할 형편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잃어버리고 종이나 노예의 신분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동족들에게 자유를 되찾아 줌으로 말미암아 민족의 진정한 일치를 이루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희년을 맞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능력이 되는 형제들을 통하여 땅이나 종으로 팔리게 된 형제를 되찾도록 권면하고 있으면 만일 그 것이 불가능하게 될 때, 희년까지 기다려 해방을 얻을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희년에는 종으로 팔려 왔던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모든 가족들에게까지도 모두 자유를 주도록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십니다. 물론 이 사실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첫 피조물들로 이루게 하셨던 가정이라는 소중한 모임을 보호하고 그 모든 구성원이 다시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보호하심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종이든 자유자든간에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귀중한 백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죽어도 하나님을 위하여 죽고 살아도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형제가 돈이 없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신의 몸을 종으로 팔아야 할 때, 절대로 이방인의 종으로 팔리지 않도록 하고, 아울러 동족을 종으로 샀을지라도 종처럼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바로 보는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는 요한일서 4장 20절의 말씀이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드시 바로 형제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자유를 제공해 줌으로 진정 하나님 안에서의 일치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동족과 형제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자신과 같이 여기며 사랑해야 할 의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희년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 자유는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참된 의미에서의 회개와 속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서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나와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야 하며, 특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자들에게 모든 어려움과 염려로부터 해방시키셔서 모든 풍족한 것으로 채워주시기에 오직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 모든 일에 걱정이나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완전히 맡겨 버리는 삶을 영위함으로 말미암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이며, 이기적인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 버리는 불의한 자리에서 벗어나서 동족과 형제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어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더욱 중요한 한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희년이 가지고 있는 이 모든 의미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한 구속의 사역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지위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감수하신 그 엄청난 고통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 자유가 선포되고 참된 화평이 그분의 모든 사역을 받아들인 우리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사역을 통해 놀라운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사람으로써 우리도 그분의 삶을 우리의 몸과 삶속에서 그대로 그려내고 똑같은 향기를 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종려주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그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서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분께만 영광을 돌리기 위해 희년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항상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그 분께서 당신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복을 충분히 받아 누리며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참 자유를 항상 전파하고, 그들을 감화시켜 참된 화평을 맛보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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