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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소식을 주시는 분 (눅 0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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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게는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늦게 집에 들어와서도 마감뉴스에 혹시 내일 좋은 일 안 생기나 TV채널을 돌려보고,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 어떤 좋은 일 안 생겼나 신문을 뒤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듣는 소리는 좋은 소식보다 슬프고 어려운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소식을 듣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들으려고 TV를 틀면 먼저 누가 죽었다는 소리가 먼저 나옵니다.
누가 은행을 털다 잡혔다는 소식, 어디어디에 불이 났다는 소식등, 나쁜 소식이 더 많습니다.

사람의 심리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더 흥미롭다는 인식을 갖어서인지, 매스컴은 좋은 쪽보다 나쁜쪽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며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진정한 흥밋거리도 없고, 정말 기뻐할 일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가장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가슴을 하나님에 대한 좋은 소식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과 교회에 대하여 나쁜 정보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비리만 캐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MBC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교회나 하나님에 대하여 나쁜쪽의 정보만 기억하고 퍼트리려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처럼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와 하나님에 대하여 좋은 소식만 기억하시고 그 좋은 소식을 전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좋은 소식만 주시는 분이십니다.
첫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에도 하나님은 아담 내외에게도 좋은 소식을 주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3:15)는 희망의 소식을 주셨습니다.
죄에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처럼 죄지은 아담에게 죄의 댓가로 형벌을 주신 것이 아니라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셨다는 좋은 소식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은 좋은 소식을 주셨습니다.
아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브라함에게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좋은 소식을 주셨습니다.

이 말을 믿지 못하고 장막뒤에서 코웃음치던 사라에게 재차 기한이 이를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분명히 확시키주는 좋은 소식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가족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알았던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방 민족까지 구원하시겠다는 좋은 소식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좋은 소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라고 보냈지만, 모세는 이리핑계 저리핑계를 대며 사양했습니다.
첫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갑니까 겸손한척하며 뒤로 뺏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가라고 하시자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를 보내신 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내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핑계를 대면서 못가겠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또 핑계를 댓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보낼자를 보내소서. 나는 못갑니다.라고 아예 말을 잘라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에서의 종살이로부터의 해방이 가장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의 소식을 모세를 통해서 전해주시고 해방시켜주시려고 하는데도 모세는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못 가겠다고 버티고 버티는 모세를 결국에는 보내셔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시겠다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주셨던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며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와 사망의 종노릇을 하며 어둠과 실망속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들려주시려고 못가겠다, 안가겠다는 모세를 어떻게 해서라도 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택한 자녀들에게 늘 좋은 소식만을 주시던 하나님께서 성탄절을 통해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죄와 사망에게 종노릇하는 모든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죄를 사해주시겠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셨던 것입니다.

이 좋은 소식이 바로 오늘 본문 10절에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메시야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며 좋은 소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실제로 이 땅에 오셔서 좋은 소식, 좋은 말씀-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이 복음은 사망이라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죄악에서 건지시고 영생을 주시는 기쁨의 소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기 예수의 탄생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되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가장 기쁘고 복되고 좋은 소식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서로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들끼리, 카드를 나누거나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이번 성탄절에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받아 본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무슨 선물이든지 받게 되면, 마음이 기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선물을 허락하셨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은혜와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감격과 기쁨으로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돈도, 명예도 이것 때문에 뒤로 제껴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 주님을 만난 구원의 감격이 날로 새로워 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처음에 주님을 만난 그 기분과 그 감정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오늘 말씀에서 제일 먼저 들은 목자의 초심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목자들이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삶이 깨끗했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당시에 가장 자기일에 성실하게 일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 기웃거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서 비리와 야합하지 않고 오직 성실하게 양들을 돌보며 열심히 살았었던 사람들입니다.

메시야의 탄생의 좋은 소식은 이렇게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를 탐하는 사람들에게 오지 않고, 낮고 보잘 것 없는 일이지만 그것에 충실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찾아오시는 것은 차별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1장 5절에서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고 말씀하신 대로 주님은 약한자에게 죄에 묶인 자들에게 억울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억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양심적으로 살았는데, 땀 흘리고 살았는데, 애쓰고 살았는데, 이 수고한 만큼, 자기가 정말로 바르게 산만큼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남보다 가난하고, 남보다 약하고, 남보다 낮은 처지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사랑하고 긍흉히 여기시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돕고, 이런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소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목자들은 밤에 자기 양 떼를 돌보는 목자들과 같이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았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복음은 이들에게 더 쉽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불의한 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세상을 의롭게 통치하실 메시아를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주셔서 필요를 채워주시고, 응답해주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시는 모든 일들이 좋은 소식 복된 소리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들을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소식은
첫째로 용서의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했고, 하나님을 어겨서 하나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런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예배시간 마저 빠지기 일수이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기보다는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기도생활은 거의 하지 못하고, 봉사도, 구제도, 전도도 하지 못하는 게으른 자들이었습니다.

마음속에 수많은 죄를 지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입히면서 나 자신의 잘못된 교만으로 나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받아 주시고 허물을 덮어주시며, 교만한 우리의 마음에 상처주지 않으시려고 조금씩조금씩 우리를 녹여서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저는 이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저에게 예수님은 놀랍도록 은혜롭고 좋은 분이십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 주님은 좋은 소식으로 나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도 새해에는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좋은 소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항상 밝은 모습으로 기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이 복음은 지금 뿐 만이 아니라. 심판 때에도 믿는 자들에게 기쁨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들은 자기가 살아온 생애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서서 설명할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이 심판은 분명히 임한다는 것과 심판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심판은 그 자신의 행위에 따라 심판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분명하고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은 그렇다면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아니면 공포와 불행의 소식이겠습니까
이 대답에 따라 분명히 그가 살아온 삶의 질과 내용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육신의 편리와 이익만을 추구해온 사람들에게는 불안한 소식일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 사람들에게 심판은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그보다 앞서, 예수 믿지 않고 거부한 사람들에게 심판이란 공포와 불안의 소식이 될 것입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하는 자들도 심판은 나쁜 소리로 들려올 것입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려면 심판 받을 때 쌓아놓은 선이 자신의 악보다 많아야 됩니다.
그러나 그럴 자신이 있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이들은 심판이 불안할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 앞에 위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에 이를 수 없다(롬3:20-23)고 했습니다.
자기의 의를 자랑하고 자기의 공적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심판은 나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좋은 소식-기쁨의 소식이 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법에 완전히 순종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 때문에 하늘에 들어가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롬5:1-2).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의롭다함을 받고 영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성품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정죄는 이미 제거된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의 마음은 심판에 대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기쁨을 가져오는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천사를 통하여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이 기쁨을 우리는 이제 오시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이 땅에서도 기쁜 소식이지만 심판날에 더 기쁨의 소식이 되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죽음에도 기쁨의 소식이 됩니다.

파스칼은 인간을 별것 아닌 존재로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을 별 것 아닌 사람으로 보았냐면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는 자를 별 것 아닌 자로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제 아무리 유식하고 고상하고 위대하다고 자처해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위대한 지식인 산지식 즉 하나님께 대하여 무지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겉으론 태연한 척하고 대범한 척하고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 같아도 그러나 실상은 살얼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하여 전설이니 신화니 꾸며낸 이야기니 비웃지만 결국은 심판과 죽음앞에서 공포에 떨며 죽을 것입니다.

사망은 우리가 생각하도 싫은 우울하고도 슬픈 단어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기세등등한 살인마라 할지라도 죽음을 앞에두면 겸손해 지고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살인마라고 했던 사람들도 결국은 다 예수 믿고 사형장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그 사망은 공포와 두려움의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그래도 희망을 갔고 사형장으로 갔을 것입니다.

밀톤은 사망은 영원의 궁전을 열수 있는 열쇠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오늘날 너희를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이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만, 사망은 영원한 궁전을 여는 열쇠가 되고 사망은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사망은 도둑입니다.
사망은 인간의 소망과 생명을 약탈해 가는 약탈자입니다.
사망은 무시무시한 추수꾼입니다.
사망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갑니다.
지혜있는 자도, 강한자도, 위인과 성인들…, 한 사람도 제외 없이 데리고 갑니다.
그래서 이들 모두에게 사망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믿고,
다윗의 동네에 우리를 위하여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에게는 사망까지도 기쁨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자기에게 주신 좋은 소식 때문에, 그 좋은 소식을 감출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스데반에게는 이 좋은 소식이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기 때문에 죽으나 사나 오직 이 좋은 소식만을 증거하는 것이 기쁨이었기 때문에, 죽으면서까지 복음을 전하며 환하게 웃으며 죽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죽음에도 좋은 소식이기 때문에 스데반은 웃으면서 죽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복음은 사망에도 좋은 소식임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동네에 오신 예수께서 우리의 기쁨이고 좋은 소식이라는 것을 스데반의 죽음만큼 더 아름답게 표현된 것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스데반만이 아니라 다윗의 동네에 오신 아기 예수는 마귀와 사망의 권세를 멸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을 주신 좋은 소식은 모든 인류뿐 아니라 오늘 성탄절에 경건하게 경배드리는 여러분에게 똑같은 기쁨이 되고 좋은 소식이 될 줄로 믿습니다.

반복되는 성탄절이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가거나, 잠깐동안 우리의 생각 속에만 있다가 사라지는 날로 전락되어지지 않도록 믿음을 세워나가시기 바랍니다.

이날이 있었기에 우리가 범사에 기쁨이 있고 예수님께서 오신 성탄절이 있기에, 심판에도 무서워 떨지 않을 수 있고 죽음 앞에도 담대하여 오히려 이 모든 것이 기쁨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을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죽는 순간까지도 웃으면서 죽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천지창조이래 인류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메시야를 보내주신 다는 것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이래 최대의 뉴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죄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메시야를 보내주신 바로 그날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탄절을 통해서 이미 메시야를 맞았고 구원받은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우리의 모습에서 기쁨의 소식을 전해야 됩니다.

삶에서 늘 감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기쁨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만 전해주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삶의 참된 기쁨은 땅에 있지 않습니다.
물질에 있지 않습니다.
대학에 있지 않습니다.
좋은 직장에도 있지 않습니다.
권력이나 명예에는 더더욱 있지 않습니다.

우린 그 사실과 그 말씀을 천사의 음성에서 듣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 복음이 2000년 성탄에 경배드리는 설보교회 모든 성도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001년에도 다른 어떤 일보다 다윗의 동네에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가장 가장 기쁜 소식, 가장 좋은 소식이 되기를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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