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늘이 열리면 벧엘이 된다 (창 28:10-19)

첨부 1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장자가 대를 이어서 가문을 계승하고 축복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와 합작을 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채서 자기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에서가 알게 되어 야곱을 해칠 것 같아서 어머니는 야곱에게 밧단아람(하람)의 외가(外家)로 도망가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장막생활을 한 야곱에게는 별 준비 없이 급히 떠난 800KM정도의 먼 도피 여행은 외로움과 두려움이 절정에 달했을 것입니다.
하란의 외삼촌댁을 목표로 하루종일 걸어서 루스라는 곳에 왔습니다. 루스의 뜻은 황당하다라는 뜻입니다. 말그대로 야곱은 모든 현실이 황당했을 것입니다. 공연히 축복을 계승받는다고 욕심을 부려 아버지를 속이고 형하고도 철천지 원수가 되었는가 하는 후회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형이 아니더라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광야길에서 위험한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도 엄습했습니다.
이제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진지하게 들리지 않았던 그의 부모 이삭과 리브가의 권면이 생각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기도에 대해서 강조하시던 내용들이 두려움과 교차하면서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야곱은 기도의 방법을 택했습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공포에 질려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생사가 달린 문제이고,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 인도해 달라는 애절한 기도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고 꿈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사닥다리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는데 그 위에서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보니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 지며 땅의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올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일어나니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그가 베개하였던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황당하고 캄캄하며 절망의 땅이었던 루스가 소망과 기쁨의 땅인 벧엘로 바뀌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루스 땅에 하늘문이 열리니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집이 되고 보호의 처소가 되며 축복의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 본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벧엘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3가지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벧엘은 위로의 집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야곱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모든 것을 고향땅에 두고 고독하고 삭막한 광야를 지나가는 야곱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보석도 아닙니다. 그를 어루만져 주는 위로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집을 떠나 홀로 있는 야곱에게 그 광야의 밤은 무섭고 슬프고 외로운 밤입니다. 그를 사랑해 주던 부모님이 얼마나 그리웠겠습니까
그런데 그 때 하늘문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네곁에서 도와주리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의 음성으로 야곱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왜 교회에 나옵니까
위로 받기 위해서 나옵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심령은 깊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괴롭고 답답하고 캄캄한 마음이 현대인들의 공통점입니다. 누구 한 사람 깊은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고들 한탄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해서 항상 불안감에 쫓겨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자녀)을 위로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위로해주지 못합니다. 쾌락 등 세상적인 매개체로 잠시동안 아픈 현실을 잊게 해 줄 수 있으나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위로하기는 커녕 상처을 주고 괴로움을 줍니다. 위로 받기 위해 찾았던 그 대상이 오히려 약점 삼아 철저하게 아픔을 줍니다. 참된 위로자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땅에 오셨습니까 상처받은 인간들의 마음을 싸매주시는 위로자이십니다.
여러분, 상처받고 오셨습니까 갈기갈기 찢겨지는 마음의 아픔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셨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위로해 주실 줄 믿습니다.

2. 벧엘은 보호의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야곱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입니다. 험한 광야를 통과해서 가야 하는 야곱에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야곱은 모르는 길을, 표지판도 없는 길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표지판이 있어도 처음 가는 길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몇번씩 물어야 되고 길을 잘못들어 몇번씩 되돌아 오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도로가 정비되어 있어도 길찾기가 어려운데 넓은 광야에서 방향도 모르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얼마나 황당합니까 게다가 마실 물도 없고, 사나운 짐승들은 언제 나타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보호해 주시며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 됩니다.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나운 짐승들도 원수 마귀도 손을 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험한 광야라 할지라도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보호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물질도 명예도 지식도 아닙니다. 결혼을 하면서 백년을 약속한 배우자는 어떻습니까 그들도 완전히 보호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일생을 동반자로서 보조를 맞추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있어서 부모는 어떠합니까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이런 유대인의 전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출생을 하고 조금 자라면 바닷가에 카페트를 깔고 어머니가 아이를 두 손으로 감싸안아서 조금 떨어져 서있는 아버지에게 던집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두손을 벌리고 아이를 받는 척하다가 손을 거두어서 아이가 바닥에 떨어져서 울음을 터트립니다. 우는 아이를 부부가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가야, 네 아버지나 어머니를 믿지 마라. 네가 의지하고 믿을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너의 일생에 온전한 보호자가 되실 수 있단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여러분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곳에 피할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며 피난처가 되십니다.

3. 벧엘은 축복의 집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야곱의 앞길은 캄캄합니다. 생계대책도 없이 미래에 대한 확실한 계획도 없이 광야를 지나 타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당신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20년 후에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 말씀(창32장)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올 때는 단신으로, 무일푼으로 왔지만 20년 후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는 많은 식구들을 거느리고 든든한 재력가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

벧엘은 축복의 장소입니다. 하늘문이 열리면 벧엘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삽니다. 여러분들의 가정과 직장, 처소가 벧엘이 되어야 합니다. 황당한 인생의 루스가 축복의 벨엘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문이 열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늘문이 열리게 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기도하면 열려집니다.
갈멜산상의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늘문이 열리면서 불이 쏟아졌습니다(왕상18:36-38).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며 부르짓을 때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시며 그들을 치러 온 블레셋 사람들에게 우뢰를 발하여 이스라엘을 도와주셨습니다(삼상7:5-12). 고넬료가 간절히 기도하므로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듣게 되고 하늘문이 열려서 그 가정에 축복과 은혜가 넘쳤습니다(행10장). 하늘문이 열려야 은혜가 임하고 신령한 축복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시험과 환난이 들어오는 가정, 교회에 언제나 하늘의 문은 활짝 열어줍니다.

둘째로 믿고 순종하면 하늘문이 열려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나아갈 대 홍해바다가 열리고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천사의 인도를 받으며 믿고 나아갈 때 옥문이 열려졌습니다(행12:7-10) 아브라함이 믿고 순종하며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하늘 문이 열려졌습니다. 예수께서 한 소경을 보시고 그 눈에 진흙을 이겨 바르시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소경이 믿고 순종하며 가서 씻으니 눈이 열려 보게 되었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순종할 때 하늘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셋째로 주를 위해 희생할 때 하늘문이 열려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희생하며 땀을 흘리는 사람을 위해서 하늘문이 열려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 위로 나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더니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님의 갈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려는예수님 앞에 하늘문이 열리며 하나님께서 확인해 주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앞에 하늘문이 열려집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을 때 하늘문이 열려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주님의 영광 때문에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늘문이 열려집니다.
사도요한이 복음증거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되어 고통 가운데 기도할 때에 하늘문이 열리며 미래에 되어질 일들을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며 봉사하는 사람에게 하늘문이 활짝 열려집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하늘문이 열리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사업과 직장과 삶의 터전에 하늘문이 열려져서 보호와 축복과 위로 가운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와 믿음과 희생의 열쇠를 마음껏 사용하셔서 하늘문이 활짝 열려져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