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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보호 (창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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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장성하게 되면 부모의 보호가 필요없고 도리어 부모를 보호하게 되지만 아무리 나이 가 많아도 하나님의 보호마져 필요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매 순간마다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을 (시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 개 그늘 아래 감추사 라는 말씀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시되 육신만이 아니라 (시121:7) 여호와께 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라는 말씀처럼 영혼까지 지켜주심을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약속의 땅에서 멀어질 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세상에 살면서 항상 조심해야만 할 것 중에 하나는 해야만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일을 잘구분하며, 머물러 있어야 할 자리와 떠나야만 할 자리를 잘 구분하여 혼돈하지 말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가리켜 (롬4:11)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 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는 말씀처럼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넘어졌 던 것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바로 알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처음 접하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 당도하였을 때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갔었다가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여 크게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창12:10-20), 그로 부터 24년의 세월이 흘러간 후 (창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 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라는 말씀처럼 블레셋 땅 그랄로 내려간 것입니다.

당시 중동 지방에는 내방한 외지인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 끼지 아니하고 얼마든지 후궁으로 취할 수 있는 악습이 있었으며, 또한 정략적으로 강대국과 혼 인을 하여 유대 관계를 맺는 풍습이 있었습니다(델리취).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내려가서 (창20:2)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 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라는 말씀처럼 사라를 누이라고 하였다가 아비멜렉에게 욕 을 당하게 되는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2.보호하시는 하나님 만일 사라가 아비멜렉에게 욕을 당하게 된다면 이삭을 약속받은 사라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이며 구속사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일입니다.

바로 이것이 서지 말아야 할 자리와 가지 말아야 할 자리로 내려간 아브라함이 자초한 위기였습 니다. 이것은 소돔을 택하였다가 수치를 당한 롯과 그랄을 택한 아브라함과 큰 차이가 없이 인간 의 연약함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34:7)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 는도다 라고 한 말씀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을 지키시되 그 성도들이 믿음이 좋을 때만 이 아니라 믿음이 연약해져서 시험에 빠질 위험에서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위급한대로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려는 아비멜렉 에게 (창20: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 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고 하신 말씀처럼 꿈에 현몽하여 사라와 가까이하지 못하게 사라를 지키셨습니다.

아비멜렉은 아무런 죄책감없이 관습을 따라서 한 일이지만 그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 으며 (창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 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는 말씀처럼 도리어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없이는 자신의 생명이 위험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비상한 방법으로 구원하심은 결코 아브람이 선해서가 아니라 비록 실수와 허물 이 많을지라도 그의 택한 백성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이같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 이는 누구도 세상에서 안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조상도 약속의 땅을 잠시라도 떠날 때 남을 실족시키는 죄를 범했다 면 연약한 오늘 우리들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들처럼 허물을 들추기를 좋아하며 아브라함의 약점만을 보시는 분이었다면 아브라함은 벌써 죽었을 사람이었으며, 오늘날 우리도 이처럼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안연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죄인을 대신하여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대속의 사랑으로 말미암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롬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 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롬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경성하여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성령을 의지하 며,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아서 나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불신앙의 자리로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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