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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된 성탄 축하 (눅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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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새 천년 첫 성탄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 가정 위에 평강의 왕으로 이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차고 넘치는 성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성탄의 기원

성탄절이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문헌 상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335년경부터 시작되었다는 설과 354년부터 기록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성경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지만 AD175-183에 안디옥 교회의 주교였던 데오필로스 기록을 근거로 해서 12월 25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는바와 같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자 마자 사탄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시고 생명 보존을 위해 애굽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리고 그가 복음을 증거할 때에도 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극소수였습니다. 복음이 확산되는 동안에도 온갖 핍박과 시련으로 얼룩진 상황에서 복음은 증거되었습니다.

이런 경황에서 예수님의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하고 잔치를 베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그러기에 그의 생일이 언제냐 하는 질문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마1:이나 눅2: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오시었고 임마누엘하사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탄의 기원을 구지 밝힌다면 후일 구원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만민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감사하고 고마워서 그가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고 기뻐하며 영광을 돌린 것이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요 유래가 되는 것입니다.

2.성탄을 잘못 축하하는 사람들

결국 성탄절을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를 논하는 사람들의 사고는 나를 구원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진정 감사한 사건임을 바로 고백하지 못하는 냉소주의적 발상을 가진 자들의 논쟁인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가진 현대 신학자들이나 이단들은 성탄을 지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목청을 돋우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성탄을 지키라는 명령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은 글자 그대로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고난과 멸시 죽음을 위해 오신 것이요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사건인데 하나님이 그날을 축하하고 기념하라 하실리 만무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기독교가 성탄을 축하함으로 하나님께 아부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경 눅2:13-14 을 보면 주께서 탄생하실 때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라고 기뻐한 사건이나

또 먼 동방으로부터 세 사람의 박사가 가장 귀한 예물을 가지고 머나먼 길을 달려와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린 사건과

또 어두운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양을 내어버리고 베들레헴 마굿간까지 달려와 말구유에 누이신 아기를 보고 기뻐 경배한 사건을 볼 때 우리도 그 날을 기뻐하며 축하함이 지극히 성서적이요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마땅한 본분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박대한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1)여관주인입니다.: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요셉이 호적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내려갔을 때 이미 그곳 모든 여관들은 만원 사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어느 여관이고 저들에게 방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생복락을 주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다면 결코 이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시며 왕중에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마굿간에서 출생하시고 누우실 곳이 없어 말구유 말밥통에 누우셨다는 것은 기가 찰 사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당시 여관 주인들이 죽어 주님 앞에 서서 무슨 말고 변명했을까요 유구무언이요 쥐구멍에라고 들어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현대인들 중에도 그의 마음에 세상의 지식과/ 교만/ 세상의 쾌락과/ 탐욕/으로 가득하여 메시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빈방이 없어 성탄을 기뻐하고 감사하기는커녕 비난하고 비판하거나 아니면 이날이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있는 날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범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세상 것으로 내 심령이 만족할 정도로 모든 것을 얻었다 해도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했다면 그는 사실 거지요 결국에는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욕을 마음으로부터 철저하게 비워버리세요.
쾌락을 비우세요.
교만을 비우세요.
진정 내 마음에 구주 오심을 감사로 축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두번째로는 당시의 율법사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저들은 성경연구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기에 메시야가 어디서 날것인지를 환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이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받은 후 저들에게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겠느냐 라는 질문에

(마2: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관념적인 신앙이라 말합니다. 그저 아는데 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지식은 될지언정 신앙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저들은 한결같이 예수그리스도에게 도전하였고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데 앞장섬으로서 그 지식이 무용지물이요 자신들을 심판과 저주에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성경적인 지식이 있는가 가 아니요 그 말씀을 믿는가 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믿고 따르는 자에게 주님은 천국은 저들의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마18:3)

3.성도의 사명:

새 천년 뜻깊은 성탄을 맞는 성도들의 사명은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의 복음이 사탄의 간교와 인간들의 교만한 지식에 의하여, 왜곡되지 않도록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항상 살아 역사 하시는 예수님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예수님께서 내 삶 속에서 날마다 새롭고, 힘있게 역사 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세주이신 주님께서 내 마음 속에 또 다시 새롭게 탄생하시기 위한 계절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통하여 주 예수께서 내 마음속에 계신가를 확인하고, 마굿간 같은 누추한 심령이지만 전능하신 주님을 영접함으로 새로워지고 거룩해지며, 삶이 아름다워지고, 영생을 확신하는 역사가 매년 매년 새로워지게 해야 합니다.

이런 생명있는 영적인 역사가 우리의 심령 속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사탄과 불신자들에 의하여 복음이 무력화되고, 신화화되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웃음거리가 되게 합니다.

복음을 복음되게 하는 사명을 인식하는 계절이 성탄의 계절입니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때가 성탄절입니다. 예수의 사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 성탄입니다. 우리는 성탄을 통하여 주님께서 내 마음속에서 날마다 새롭게 믿어지고, 느껴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억할 때마다 주님이 내 심령 속에서, 생활 속에서 새롭게 힘있게 역사 하실 수 있도록, 주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을 본받아 나를 산제물로 드리는 헌신의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이는 우리가 올바른 믿음과 자세를 가지고 성탄을 맞이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올해 성탄에는 진정 주님께서 내 마굿간 같은 심령에 임하시도록 마음을 열고 우리 주님을 감사함으로 모시는 축복된 성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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