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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제의 기쁨으로 사는 인생 (요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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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과 모험을 찾아 한평생 온 세상을 돌아다닌 문자 그대로 싸돌아 다닌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추구한 직업의 다양성과 그가 추구한 주거지에만도 기네스에 올라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운전기사, 투사, 사냥꾼, 종군기자, 낚시꾼, 권투선수, 시구, 사업가, 군인, 작가, 그는 17세에는 스페인에서 투사가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구급차에 운전병으로 일했습니다. 그리스와 터키의 전장에서는 종군기자로 일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코끼리와 사자를 사냥하며 전문적인 사냥꾼의 경지를 경험했습니다. 쿠바에서는 군수 공장을 경영하는 사업가로서 발휘했고, 틈틈이 즐기는 바다낚시는 그는 전문적인 수준의 낚시꾼으로 도달하게 했습니다. 파리에서는 특파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파리와 스페인을 무대로 한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탄 비행기는 두 번이나 떨어졌지만, 그는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결혼에 실패했지만, 또 네 번 실패,,또 결혼에 실패했습니다. 그가 쓴 소설에 작품에 첫 머리는 이런 의미심장한 질문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말라 얼어 비틀어진 표범 시체 하나가 나둥글어져 있다. 과연 표범은 높은 산봉우리에서 과연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을까요 그는 마침내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 60세 되던 해, 1967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그가 애용하던 사냥총으로 그의 관자놀이에 겨눈채 방아쇠를 당기어 이 땅에서 그의 운명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작품의 주인공처럼 그는 정상의 산봉우리에 서서 쓰러져 피 흘리는 표범의 운명을 감수했습니다. 킬리만자로의 노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노인과 바다의 작가에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인생스토리, 그는 한평생 기쁨을 찾아 헤매였습니다. 그는 스릴을 찾아 일생을 헤매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찾아다고 생각했던 기쁨이 소위 행했던 인생장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는 자신의 존재를 더 이상 이 땅에서 존재해야할 의미를 갖지 못했고, 결국 그의 인생을 비극적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함께 읽은 성경본문에는 결혼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고, 가쁨을 상실하는 위기에 처했을 때 오히려 그 위기를 더 커다란 축제의 기쁨을 경험하는 기적의 순간으로 바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오늘의 본문을 가르쳐 예수님의 지상생애의 첫 번째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이 기적은 갈릴리 가나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적은 오늘날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동일하게 기다리고 있는 기적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쁨을 잃어버리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기쁨대신에 온갖 유형의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슬픔과 우리의 가슴을 짓누르는 절망이 다스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바꾸는 희망을 기적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이 가능하다고 본문은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런 기쁨이 가능하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삶의 본질이 기쁨이라고 가르칩니다. 성령의 열매에는 기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묘사할 때에 그 나라는 희락에 나라, 기쁨의 나라라고 말하고, 예수님이 그리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잔치집과 같은 곳이라고 그분은 우리에게 묘사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이 잔치집 같은 기쁨이어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인생을 사는, 교회안에 있는 성도들의 삶을 보면 잔치집 같은 기쁨보다는, 초상집 같은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마당에 초상집 같은 이런 슬픔을 축제의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이런 기적을 보이기를 원하신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오늘 본문과 같은 기적은 오늘 이러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기쁨을 회복하길 원한다면, 축제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첫째로, 주 예수님을 초청하십시오.
예수님을 초청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갈릴리 가나에 혼인잔치에 기적의 사건들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관찰되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거기에 계셨고, 거기에 청함을 초청을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자! 요한복음 2장1절에 보시면,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가시니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이제 2절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2절 시작!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그 잔치에 청함을 받았다. 이렇게 성경은 기록합니다. 성경학자들 가운데는 이 초청은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다나엘이라는 제자에 의해서 초청되었다고 추측해봅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2장 직전인 1절을 보시면 나다나엘이라는 한 제자가 빌립을 만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나다나엘이 그분을 만나 그분을 메시야로 깨닫게 되는 것으로 1장이 마무리되어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1장2절에 보면 제자들을 소개하면서 이 나다나엘 대해서 그는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가나사람 나다나엘이라고,,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가나 출신이었던 나다나엘이 갈릴리 가나 자기동네에 큰 잔치가 열렸을 때 자기가 따르기 시작한 스승인 예수님을 초청하고 싶었고, 동료 제자들을 초청하고 싶어서, 예수님이 거기에 오게 된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추측이죠 그러나 또 다른 성경학자들은 아마도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가 이 혼인잔치 집과 친척 관계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거기에 청함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이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괜히 남에 집에 참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그 잔치집에 생긴 문제를 끌어안고 그 것을 해결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아서 마리아가 이 혼인잔치의 집안과 중요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는 것입니다. 가능한 추측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가 청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나다나엘이 초청했건, 마리아가 초청했건, 그분이 청함을 받았습니다. 아니 저는 갈릴리 가나에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오라고 초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장에 보시면 세례요한, 침례요한이 온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오셨다고 그분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우리가 기다려 왔던 온 세상 짐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소문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틀림없이 갈릴리 가나 작은 마을 가난한 마을에 살던 사람도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다면 그 메시야를 이 잔치가 있었을 때, 우리 동네에도 초청하자는 동네사람에 컨텐던스 ,동의가 있었을 거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마을 사람들의 초청을 기쁘게 수락하셨을 것입니다. 여하튼 예수님이 마을에 오셨어요. 잔치집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달라졌습니다. 이 작은 마을은 더 이상 작은 마을이 아니라 중요한 마을이 되었습니다. 이 작은 잔치는 평범한 잔치가 아니라 중요 한 잔치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청함을 받았던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 그것을 입회하여 바라보게 되는 목격자가 되는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10번 이상 성지를 가이드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성지 순례를 하게 되면 볼 때가 너무 많아요. 어떤 장소는 빼놓고, 어떤 장소는 들어옵니다. 그런데 한번도 빼놓지 않는 장소는 갈릴리 가나예요. 그러나 갈릴리 가나는 사실 너무나 작은 마을입니다. 가보면 실망을 많이 해요. 그러면 빼놓으면 사람들이 난리예요. 갈릴리 가나 어디 있냐고. 그곳 안가느냐고 그래서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마다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갈릴리 가나마을. 스크린에서 보시는 것처럼 산골아래 아주 작은 마을, 마을 한복판에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을 경험한 곳으로 일컬어지는, 전해내려 오는 그 장소 위에 카톨릭과 희랍정교회가 기념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서 갈릴리 가나에 이 마을을 사람들은 순례자들은 꼭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잔치가 예수님을 초청했을 때 이 잔치가 중요한 잔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예수님을 초청하는 가정마다 그 가정이 중요한 가정이 된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하는 개인마다 중요한 개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마당에 예수님을 초청하시고, 예수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시면,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중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요한복음2장 직전에 들어오기 직전에,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2장 12절에 보시면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셨다면, 이제 무엇을 하시든 어떤 일을 하시든 항상 예수님을 먼저 초청하세요. 예수님을 모시고, 기획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계획을 세울 때, 어떤 잔치를 집에서 열 때 예수님을 먼저 초청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래도 예수님이 오시면 오늘 이 자리가 불편할 것 같다면 그런 잔치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잔치에 예수님을 모시고 참여하기가 불편하다고 하시면 가지 마세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야하는 참여해야 하는 잔치라면, 예수님 같이 가시자고 초청하세요. 예수님 기꺼이 동생하실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시면 여러분! 그 자리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주님이 기적을 행하실 자리로 기억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내 인생의 마당에 기적이 필요하십니까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적이 필요하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할 일. 주 예수님을 초청 하시기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을 초청하세요.

그리고 두 번째로 예수님께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께 기도하셔야 합니다. 어느 잔치에도 문제는 존재합니다. 어느 가정에도 문제는 존재합니다. 어느 공동체에도 문제는 존재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피해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어요. 적극적인 사고방식에 저자인 유명한 닥터노먼 빈센트 필박사가 살아계셨을 때 어떤 젊은이가 뉴욕으로 그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상담을 했습니다. 상당의 끝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박사님 전 지금까지 저가 갔던 직장들이 너무나 힘든 직장들이었습니다. 문제투성이의 직장이었습니다. 기왕에 상담한 김에 박사님 저에게 문제가 없는 직장하나 소개시켜 주실 수 없으십니까 그가 필박사가 뜻박에도그러지요 뭐 선선히 대답하시는 겁니다.제차 타세요 이 청년을 자기차에 태웠습니다. 한 테블럭이상 드라이브를 하더니 갑자기 어떤 공원앞에 서었요. 그건 공동묘지였습니다. 필박사는 공동묘지를 가르치면서 이 청년에게중요한 이곳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유일한 직장이란 말이오 문제가 없는 유일한 직장.무덤이예요. 무덤.. 살아있는 한 우리는 문제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떻게 다룰 줄 아는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문제를 핸들할까요 기도도 문제를 다루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잔치집에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그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포도주가 떨어진 그런 문제조차도 해결할 수 있는 주님이심을 알았고, 믿었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그분은 하인들에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저분이 예수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저분이..저 예수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나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에 3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 포도주가 떨어졌어요.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예수님께 말한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가 아닙니까 기도는 자기의 문제 자기의 아픔, 자기의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열고 말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훌룡한 기도의 모범자였다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아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아니지만, 카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녀는 훌룡한 기도의 모범을 보이신 분임을 틀림이 없습니다. 자..그런데 마리아의 요청앞에 예수님은 뜻밖에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4절 한번 읽겠습니다. 4절 다같이 시작! 주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한국교회와 사회 보면요 기독교가 한국 땅에 처음 왔을 때, 한학자들, 한문 공부하는 한학자들이 성경 읽다가 이 대목에 와서 시험에 들어서 예수 안믿은 사람이 많대요. 아니 어머니보고 어떻게 여자여! 라고 말할수 있느냐 효를 모르는 종교다.. 그래서! 떠나가셨대요. 여러분도 시험에 들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기서 여자라는 단어는 본래 희랍어에서는 구나잇라고 쓰여있습니다..구나잇. 그러나 유리암 박클리라는 사람은 성경학자는 이 단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과거의 로마의 황제인 어거스틴은 저 이집트의 퀸이였던 클레오파트라를 만났을 때 제일먼저 황제가 클레오파트라에게 한 말이 구나잇. 구나잇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영어로 적절하게 번역하자면 이것은 우먼이라는 번역보다 더 합당한 번역은 레이디 입니다.레이디..이것은 존칭이예요. 굉장한 존칭입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부인! 보다 훨씬 더 높은 것. 레이디.. 여러분 아내를 높여드리고 싶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조금 형식적이지만, 정중하게 같이 앉아있는 아내에게 한번 말해 보세요. 레이디!! 한번해 보세요..다같이..레이디!! 그것은 존칭입니다. 불란서에 가면 마담이라고 합니다. 마담! 마담이 존칭이예요. 불란서 존칭이래요. 그래서 파리에 어떤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거기에는 자매들에게 이마담! 김마담! 했더니 이 자매들이 갑자기 또 화를내요. 이상해서 마담이 존칭이래며. 내가 마담이라고 하는데 왜 화를 내세요 목사님! 이마남이라고 하는게 아니라..마남..이라고 마남..김 마남..정..그렇게된다는 거예요. 이마남과 마남이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어쨌든 이게 존칭이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더니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요청이 응답됐어요.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처음부터 믿고 있었습니다. 저분이 결코 내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믿음을 결코 부끄럽지 않게 여겼습니다.
오늘 문제가 있으십니까 혹시 포도주가 떨어지셨습니까 기쁨이 떨어지셨습니까 포도주는 유대인들에게 인생의 기쁨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격언중에 그들이 격언처럼 사용되던 말이 있습니다. 포도주가 없으면 기쁨이 없다네. Without wine, there is no joy. 라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포도주가 없으면 기쁨이 없다네. 그런데 누가 이런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 기독교가 술을 금하는 것은 잘못이야. 엉뚱한 데서 은혜를 받아요. 그것은 본문의 중심 주제가 아니예요. 이 포도주는 기쁨의 상징으로 나온 것이예요. 혹시 그런 것을 가지고 있으면 끝나고 나한테 개별적으로 오세요. 그러면 그 당시의 포도주와 오늘날의 포도주가 얼마나 달랐는가 라는 것을 제가 증명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당시의 포도주는 거의 물의 수준입니다. 고급물의 수준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중요한 것은 기쁨이 떨어졌다는 것이에요. 기쁨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찾아오고 곤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곤란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럴 때 절망합니다. 포기합니다. 마치 헤밍웨이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배운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직 기도를 배운 사람만이 이런 상황속에서도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시는 여러분! 기도는 기적의, 기적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기적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슬픔이 왔습니까 예수님을 초청하십시오. 그리고 그 분에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세 번째로 그분께 순종하십시오.
예수님께 순종하십시오.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이 소개하는 기적의 결정적인 열쇠는, 기적이 가능했던 결정적인 열쇠는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특히 하인들의 순종이 본문에서 돋보이지 않습니까 7절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7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여러분이 하인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어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아니 우리가 필요한 것은 포도주입니다. 물이 아닙니다. 포도주입니다. 그러지 않았어요. 아구까지 물을 채우는 순종을 했습니다. 다음절을 보세요. 8절입니다. 다같이 시작!-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아니. 여러분이 하인이라면 물 갖다가 주면 어떻게 되요 물먹으라고 우리가 어떻게 망신당하라고요 그러나 이 하인들은 갖다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순종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어요. 이것은 순종의 기적이에요. 다시 말하면 이것은 믿음의 기적이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기적이었고 이것은 순종의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렇게 믿음으로 순종했던 하인들은 이런 모든 일어나는 것에 대한 진정한 목격자였고 기적의 비밀을 간직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9절이 참으로 흥미로워요. 자 다같이 9절을 읽겠습니다. 시작!-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네. 그 파티에 전체준비의 총책임을 맡았던 사람도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는 알더라 하인은 알더라. 하인들은 알더라. 순종한 사람은 알아요. 여러분! 기적은 순종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비 되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적은 요행수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예요. 기적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순종하는 사람만이 기적의 비밀을 간직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저가 함께 상식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합리적인 상식과 이성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과 제가 합리적 이성을 존중하지만 이성에만 묶이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성적 사람보다 훨씬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순종의 사람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믿음과 순종으로 주님의 기적을 경험하시는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순종이 가져온 기적은 어떤 기적이었습니까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넘쳐나는 포도주의 기쁨이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 당시 유태인들의 결례. 집에 손님이 오면 손이나 발을 닦기 위해서 그 예법에 의해서 놓여진 그 항아리. 일반적으로 한 항아리는 한항아리당 20-30갤론의 물을 부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섯 항아리면 약 120-180갤론의 포도주가 예비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약 120-180 갤론의 포도주가 준비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학자들의 의하면 한 사람이 큰 잔으로 열 잔씩 돌아가도 200명분을 대접할 만한 분량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풍성한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양적으로만 풍성함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비할 데 없는 맛을 지닌 포도주였던 것입니다. 이 맛을 맛본 사람들이 본문을 보면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보통 잔치집에 가면 처음에는 좋았다가 나중에는 점점 나빠지는데 이 집은 갈수록 좋아진단 말이야.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것은 예수님의 레슨인 것을 아세요 이것은 평범한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가까스로 우리의 필요만 채우시는 분이 아니라, 이런 풍성한 축제의 기쁨으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적은 단순히 기적이 아닌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 표적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결정적으로 그가 어떤 분이신가를 믿게 하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단순한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뭐라고 했습니까 표적. 영어로 sign이예요. sign. 그냥 miracle이 아니라 sign. 표적이라는 것은 길거리에 가면 sign 이 있습니다. 간판이 있어요. 부산!-그 간판이 부산이 아니예요. 부산가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지.. 그것은 교훈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표적에는 놀라운 교훈이 있습니다. 어떤 교훈. 예수님은 이런 일을 행하시는 분. 빈 항아리 같은데.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지면 우리 안에서 놀라운 기쁨을 만들어 내시는 그런 분.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 있는 분. 그는 진정한 메시야. 이 기적은 예수가 어떤 분이시며 예수가 무슨 일을 하실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그런 놀라운 사인에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잘. 그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이신 예수. 메시야이신 예수. 인생의 필요를 갓갓으로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놀라운 분.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이 기적을 결말로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가 놀라운 분이라는 것을. 그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그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었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었더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가 처음 제자들을 위해 이런 기적을 행하셨다면 그는 오늘의 제자들을 위해서도 동일한 기적을 행하시지 않겠습니까 그가 갈릴리 가나의 이름 없는 마을에서 이런 역사을 행하셨다면 오늘 우리의 마을에서도 동일한 기적을 행하시지 않겠습니까 그가 이름도 표기되지 않은 혼인집의 주인인 무명의 가정을 위해서 그리고 이 무명의 신랑 신부를 위해 이런 기적을 행하셨다면 나같은 무명의 가정을 위해서도 무명의 인생을 위해서도 동일한 기적을 행하시지 않겠습니까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런 기적이 필요하시다면 먼저 그분을 초청하십시오. 그분에게 이제 기도해 보시지요. 그리고 순종을 결단해 보십시오. 만약 내가 처하고 있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초청하고 그 분앞에 결단하고 그 분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결단을 하신다면 그 순간 기적의 축제가 시작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축제의 기쁨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이메일을 하나 받았는데, 주님의 선교명령에 순종하여 비교적 최근에 분당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중국 연변으로 떠나 교수생활을 하는 분의 부인되시는 자매님으로부터 아름다운 이 메일 편지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가족들이 우리교회에 나오시는데, 한마디로 이 편지를 읽으며 이 분이야 말로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분이로구나 하는 느낌이 가슴 가득히 밀려 왔습니다. 한 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연변의 가을은 코스모스 꽃들이 들꽃들이 맑은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흰 구름이 미루나무 숲 사이로 반짝이며 비치는 가을의 햇살이 싸늘한 가을바람이 조용히 제 곁에 다가와 속삭입니다. 저와 친구가 되어 이 아름다움에 함께 머무르고 싶다고. 요즈음 이곳 건너편 미루나무 숲길을 산책 하곤하면 미루나무 숲 사이로 비껴 가는 가을 햇살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이 정경을 마음으로 스케치 해두고 있습니다. 또한 오는 길에 들녁에서 보라빛과 핑크빛 들꽃들을 한 아름 꺽어들고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집에 와서 여기저기 들꽃으로 단장을 했습니다. 바하의 무반주 협주곡을 들으면서 연변에서의 단순한 생활 이곳에서 욕심없이 이렇게 사는 것도 아주아주 행복한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1원짜리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 시장을 보며 먼지투성이인 곳을 누비고 다녀도 목사님! 왠지 행복하고 왠지 재미있고 행복함이 넘치곤 한답니다. 비록 타고 다니던 그랜저 자가용이 없어도 비록 값비싼 옷을 입지 않아도 비록 좋은 집에 살지 않아도 비록 제 마음에 드는 좋은 가구가 없어도 구름 타고 오실 사랑하는님을 기다리며 들꽃들과 더불어 사랑을 속삭이는 큰 기쁨이 마음속에 넘고 있습니다. 이 기쁨이 부럽지 않으세요. 이 기쁨을 누리고 싶지 않으세요 이 기쁨이 여러분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주님앞에 순종으로 결단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주님은 2천년 전 이 진지한 기쁨. 진정한 행복을 빼앗긴 인류를 위해 이 땅에 오시사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슬픔. 우리의 절망. 우리의 슬픔과 절망의 원인인 죄를 지고 그는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기쁨을 되돌려 주시며, 희망을 되돌려주시며, 가슴 가득하도록, 넘치도록. 이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부활하신 그 분을 내 삶의 한복판에 다시 주인으로 다시 모실 수가 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인생에 주인이 되어서 나를 다스릴 수 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의 마당은 잔치의 마당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런 잔치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주인되게 하십시오. 다스리게 하십시오. 그러면 오늘 기적이 시작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축제같은 기쁨. 그 놀라운 잔치가 시작되는 놀라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을 축제의 주인으로 모십시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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