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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러나의 축복 (출 0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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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나 불신자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때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신앙이 독실한 사람일수록 무슨 일을 당하든지 낙심하지 않고 항상 여유 만만한 삶을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과연 성도들에게 그 같은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되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는 말씀처럼 어떤 일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도록 섭리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음의 원하는대로 잘되는 것만 축복이 아니라 정반대로 원하는대로 잘 되어지지 아니 할지라도 지나고보면 오히려 그것이 축복일 수 있음을 믿기 때문에 어떤 경우를 당하든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같은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통해서 잘 나타내 보여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성경 출애굽의 역사 속에 나타난 “그러나”의 축복입니다.

1.이스라엘의 형통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실 때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고 약속하셨지만 야곱의 일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할 때까지 215년간에는 70명에 불과 하였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니 하나님의 약속은 헛되지 아니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머문 115년간 동안에 (출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는 말씀처럼 70명이 번성하여 장정만 60만 명으로 증가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조급하거나 현실만 보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를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크게 번성할 수 있게 된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1)좋은 환경
애굽의 고센 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바로가 요셉에게 (창47: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땅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 고 한 것처럼 매우 비옥한 곳이었습니다.
인간은 주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환경에 처해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능력이 좀 부족한 사람도 잘될 수 있고, 좋지 못한 환경에서는 큰 능력을 가지고도 그것을 다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만일 오늘 내가 다른 사람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임을 깨닫고 크게 감사해야 할것입니다.

2)요셉의 공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칠년의 풍년과 칠년의 흉년을 지혜롭게 잘 극복함으로 인해 요셉은 애굽 역사상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이 천시하는 목축업을 하면서도 애굽에서 괄시를 받지 않고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국무총리로 선정을 한 공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요셉이 아무리 크게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절대자가 아닌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에 때가 되니 늙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출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라는 말씀처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통치하는 새 시대가 오고 말았습니다.

3)하나님의 축복
이스라엘 백성들이 낯선 애굽 땅에서 그처럼 번성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한 번 약속하신 것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간다고 할지라도 잊지 않고 기억하시며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축복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보호막이 되어주었던 요셉은 죽었으나 영원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보호하심으로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더욱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의 절대 원인이 요셉이나 고센 땅의 외적이기 전에 (신 10:22)애굽에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볼 때는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 가능성 여부를 보고 믿으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을 때 비록 더딘 것 같지만 가장 적당한 때에 최선의 축복으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의 부족이 아니라 인류 구원 역사를 위해 하나님이 쓰시는 선택받은 민족으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무슨 일을 성공하고자 할 때 좋은 환경도 중요하고 인간적인 도움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임을 잊지 말고 어려움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고 형통할 때는 도와주신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아무리 외적인 여건이 좋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번성하게 되며 하나님이 막으시면 아무리 인간이 힘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설령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게 되며,더욱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지하게 되며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는 개인적인 체험이나 지식이 아니라 객관적인 진리의 말씀인 성경으로 그 말씀 안에는 무수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미 이루어졌고, 지금 이루어져가고 있으니, 다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히 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2.이스라엘의 고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축복을 받을 때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사단의 시기와 훼방이라는 점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번성이 축복으로만 여겨졌으나 오히려 그로 인하여 바로왕의 마음에 시기심을 불러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큰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세상에서 물질적인 부귀와 번성만이 하나님 축복의 전부가 아니며 그로 말미암아 좋을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고통을 당할 때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1)바로 왕의 시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 바로는 이스라엘의 번성을 보고 (출1: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라고 말한 것처럼 두려워하며 시기하였습니다.
번성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중노동을 시켜서 반역을 꾀하지 못하고 지쳐서 힘이 약화되게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박해는 더욱 가중되어 (출1:13)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하여 (출1:14)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고 한 것처럼 갈수록 심하였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의 번성의 절대 원인이 외부적인 데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같은 박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그렇지 아니하였습니다.
정반대로 ( 출 1:12)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라는 말씀과 같이 오히려 학대를 받을 수록 더욱 번성하였다 는 말씀처럼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게 된 것은 환경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러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인간의 생각으로는 약화되어야 마땅하나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어떤 환경과 악조건에서도 오히려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2)사내 아이의 죽임
이스라엘의 번성을 시기하는 바로는 사단의 사주를 받는 악독한 임금임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출1:16)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고 산파들에게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다 죽이라는 끔찍한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대를 이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가장 극악한 방법인 살인죄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풍요가 더 이상의 축복이 아니라 고난이 되었으며, 아들을 낳은 것이 더 이상의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 되었으며, 애굽이 더 이상 축복의 땅이 아니라 고난의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바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산파들은 사내 아이들을 죽이지 아니하였는데 그 이유는 (출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고 한 말씀처럼 눈에 보이는 애굽왕보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만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어른이나 아이나 태중에 생명이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 같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인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이처럼 인위적으로 막으려고 하였지만 놀라운 사실은 (출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라고 한 말씀처럼 학대를 받으면 약화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더욱 창성하게 되어지는 축복을 하나님이 주심으로 막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그러나“의 축복 인 것입니다.
바로 왕은 산파를 이용하여 교묘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히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도리어 역 이용하셔서 (출1: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라는 말씀처럼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으며, 또한 (출1:21)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말씀처럼 산파들까지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로 미루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번성은 환경의 결과나 요셉과 같은 인간의 도움 때문이 아니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애굽은 짐승들의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제사를 드리며 사치와 향락이 극치를 이루는 사단의 본부이며 영적 불모지와도 같았지만 그곳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하는 하나님이 감추어두신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아합 왕 때도 다 타락한 것 같아도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는 말씀처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들이 있었다면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115:13)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시115:14) 여호와께서 너희 곧 너희와 또 너희 자손을 더욱 번창케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무리 세상이 악할지라도 그 환경에 오염되지 않고 믿음을 지켜나가는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1)택할 길을 가르치시며 2)친밀하게 하시며 3)구원해 주시며 4)부족함이 없게 하시며 5)불쌍히 여기시며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고난의 섭리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이나, 하고자 계획하는 일만은 형통하게 되기를 소원하는 기복 신앙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우주 과학시대에도 여전히 돼지 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미신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떠한 종교입니까 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를 믿는 성도들을 잘되게 하실 수 있으시지만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백성들을 항상 형통케만 하시지 아니하시며 때로는 불신자들보다 더 가혹한 시련을 맛보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난은 어떻게 생각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방관하듯 내버려두시는 것이며 과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민족이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민족인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하지만 그럴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사랑이 중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그 축복을 받았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은 그로 인해 세상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망각하는 신앙의 후퇴가 오지 않도록 깨어 근신해야만 합니다.
(히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당하는 고통은 외적으로는 정치적인 이유 같으나 내면은 종교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돔성이란 애굽어로 아툼 즉 태양신을 의미하는 신의 집이란 뜻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신전을 건축하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되면서 더욱 핍박을 받음으로 오직 이스라엘이 살곳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 뿐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창28: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형통하기만 하고 이같은 고난을 받지 않고 비옥한 고센 땅에서 번성하기만 하였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 해볼 때 40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1)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구경조차 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결코 애굽을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이주시킨 궁극적인 목적은 무산되고 마는 것이며
2)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잊은 채 애굽의 우상 숭배에 빠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영원토록 버림받은 땅이 되버리고 말았을 것이며
3)이스라엘의 문화와 도덕은 부도덕한 애굽 사람들을 모방하고 오염되어 부도덕하고 패역한 백성들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바로 왕에게 핍박을 받았으나 더욱 번성하는 축복을 받았으며, 번성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번성으로 인해 가혹한 박해를 받았으나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합력 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었으니1)고센 땅이 아무리 비옥할지라도 이스라엘의 정착지는 아니며
2)가나안 땅이 아무리 메마르고 흉년이 들지라도 돌아가야만 하는 약속의 땅임을
바로 왕의 핍박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우는 자명종이었습니다.
또한 이같은 핍박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 창 15:13,14)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는 예언의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결 론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순한 한 민족의 과거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종말론적인 구속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언약하신 대로 번성케 하시고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것처럼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하여 내실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평화롭게 되고 사업이 형통하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시기를 당하기도 하고 또한 불신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환난을 당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버리신 것이 아니라 ( 요 16:33)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환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변함이 없으며 교회는 핍박을 받아 왔으나 더욱 견고하고 번성하여 왔으며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던 세력은 멸망을 당하였으나 교회는 그로 인해 더욱 순결하고 거룩해졌으며 성도들은 더욱 경건해지고 서로 단합하게 되었으며 하늘에 소망을 가지게 하였다면 번성만이 아니라 고난도 역시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화나 저주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복되고 유익한 축복인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만사 형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 믿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유익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나태와 안일에 빠지게 하고 세속화를 가속시키게 하기도 하고 하늘에 소망을 약화시키게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깨끗한 고기는 차고 맑은 물에서 잘 자라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을 때로는 고난의 길로 인도하실 지라도 그것은 화가 아니라 ”그러나“의 축복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닫고 끝까지 인내하기 바랍니다.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만을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영적 이스라엘입니다.1)세상을 사는 동안 때로는 애굽의 고센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때로는 불신자들이 시기할 만큼 형통의 축복을 받을 때도 있는가 하면
2)정반대로 형통함으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에게 시기와 멸시를 받으며 고난을 받게 될 때도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3)성도들의 최종 목적지는 세상이 아니라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라고 말씀한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나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아니라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변함없이 고난 중에서도 형통케하시는 “그러나”의 축복을 주심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믿고 약속의 땅인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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