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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려움이 길을 만든다 (행 0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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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잠옷입고 불렀으면 더 좋았을텐데. 오늘 특별새벽기도 4번째 시간입니다. 어려움이 길을 만든다. 어려움이 길을 만든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를 고치는 사건이 3장에 나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를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듣기 싫어가지고 이 제사장과 사두개인은 제자들을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대개 우리들을 핍박하는 것들을 보면은 신앙없는 신앙인이 핍박하는 거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핍박하는게 아닙니다. 아예 안 믿는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믿다가 낙심하는 사람들, 아니면 잘못 믿는 사람들이 대개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반응이 벌어지는데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면 핍박이 임합니다. 그것이 첫 번째 반응이고 두 번째는 동시에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들을 감옥에 집어 넣은 얘기가 1절부터 3절까지 나오지요. 사도들이 백성에개 말할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부활을 안믿는 다는 것이지요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전문 고로 이튿날까지가두었으나.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시에 부흥이 일어나지요. 4절 보십시오. 말씀을 듣는 사람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그러니까 핍박과 부흥이 동시에 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핍박속에서 복음전하는 제자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깨닫고 우리도 이런 핍박과 부흥을 동시에 맛보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핍박이 우리에게 오히려 길을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엉터리 신자가 거의 없는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가짜 신자가 거의 없는곳. 핍박이 있던 공산권이나 이슬람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는 핍박이 있으니까 가짜가 설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 자체가 희생이고 예수 믿는 자체가 뭐 생명건 모험이고 목숨건 일입니다. 옛날에 우리 처제가 목이 안좋아서 그랬는지 어디서 얻어오라고 해서 늙은 호박하나를 얻어온적이 있었거든요. 그거를 안방에 두고 며칠을 보낼때 그 썩는 냄새가 보통 냄새가 아니더라구요 늙은 호박 썩는 냄새, 지금 생각해도 밥맛이 떨어질 정도로. 저는 그걸 바라보면서 이게 우리 성도의 모습, 교회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별로 어려움이 없는데 점점 온도가 높아지니까 호박이 썩더라구요. 그래서 그 냄새가 어마어마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핍박과 시련이 있으면요 썩지 않습니다. 핍박이 우리를 오히려 싱싱하게 만듭니다. 야고보서 1장에 보니까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헙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그 이유가 뭐예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고, 그 인내가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기 때문에 너희로 온전하여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 하는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의 어려움이 우리를 오히려 싱싱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은 하나님께서 어떤때에는 우리에게 핍박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려움들을 허락하십니다. 그게 우리에게 기회가 될 때가 많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요,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어려움이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옥이 아니었으면 요셉같은 사람이 ‘바로’ 왕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빽도 없는 자였고 길도 없는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감옥이라는 곳에 2년을 집어넣은 것을 통해서 바로에게 갈수 있는 하이웨이. 길을 닦아 났잖아요. 그게 아니었으면 술 맡은 관원, 떡 맡은 관원을 어떻게 만납니까 고위층 관원을 어떻게 만나요 낮아지는 감옥속에서 그들을 만나게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어요.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도로공사중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지. 길 닦아주는겁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이끄시기 위해서, 길 닦는 중입니다. 내 어려움이 하나님의 길이라는거 잊지말아야 합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 보십시오 제가 볼 때 교회 개척하는데, 빌립보 교회가 제일 쉬웠던거 같습니다. 이유가 뭐예요 감옥에 갇혀 들어갔습니다.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뭐 기도하고 찬송 좀 했습니다. 찬송 못할거 없잖아요 찬송좀 했더니 그걸 통해가지고 간수 온 가족이 변화가 됐잖아요.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다 구원받고 거기다 덤으로 루디아 붙고, 귀신들렸던 여종 몇 명좀 오고 그러니까 초창기 개척 멤버 하나님께서 감옥에서 다 모아 주셨잖아요. 감옥사건 하나를 통해가지고. 그래서 탄생된 게 빌립보 교회입니다. 사도바울이 가는곳마다 물질적인 후원제일 많이 해줬던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잘보십시오. 세상에 이거보다 더 쉬운 원칙이 있습니까 감옥속에 집어넣고 난 다음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모아 주셨습니다. 꼭 일을 만들잖아요. 사도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섬에 유배되었으니 얼마나 심심하겠습니까 그러나 밧모섬에서 하늘의 환상을 바라보고 거기서 썼던 성경이 바로 요한 계시록입니다. 거기다 성경의 쓰는 길이 열려버리잖아요. 어려움이라는 것은 어려움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길을 닦아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김진홍 목사님. 옛날에 들었던 설교중에 이런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이 분이 운동을 좀 많이 하시느라, 어떤 운동인지 아시죠 조깅 그런거 말고. 사회운동을 많이 하느라 거의 성경을 안읽으셨답니다. 본인 이야기예요. 본인 이야기. 본적은 없고. 특별히 성경을 거의 읽지 않아 가지고 그래서 성경을 악으로 읽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러다 감옥에 들어갔답니다. 감옥에 들어가니까 너무 심심해서 할일이 없어가지고, 또 하도 추워서 불자 들어간 것을 찾았답니다. 불자. 하도 추워서 불자 있는거 찾아서 동그라미 치고, 뭐 그런식으로 성경을 1독을 했답니다. 아! 성경 1독을 하고 나오니까 설교가 달라지고 성경을 보는 안목이 달라지고 설교가 달라졌다는 소릴 들었답니다. 그래서 그분이 말하기를 그분은 감옥을 감옥이라고 하지 않고 감옥 신학교다라고 부른답니다. 감옥에서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고 해석하는 길이 열리잖아요. 대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려움가운데서 이끄시는 것은 왜 지속시켜주었느냐 그 짧은 길 뚫는게 아니라. 고속도로 뚫느라 오래 걸리는 겁니다. 왜 2년쯤 걸리는줄 아십니까 더 멀리 가게 만들려고. 더 중요한 곳으로 가게 만들려고.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해석의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어려움. 그러면 도로 공사중 그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중요한 곳으로 이끌기 위한 길을 닦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삶의 난관을 길닦는 것으로 해석할줄 아는 우리 믿음의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우리가 이 고난 속에서 배워야 할 것이 뭐냐
예수와 같이 있으면 변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같이 있으면 변화된다. 변화는 우리 잔소리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뭐 충동적인 외침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와 함께 있으면 변화 된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요.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베드로와 요한이 변한 이유가 뭐냐 능력있는 모습으로 변한 것에 그들은 단서를 달았지요.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결국은 신앙생활은 결심과 훈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와 같이 있으면 변화되는 것입니다. 햇볕 정책의 표본이 예수님입니다. 햇볕 정책이 뭐예요. 바람분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햇볕에 나가면 다 옷벗는다는 것 아닙니까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다 변화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찬송했지요. 205장. 모두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리. 영생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예수 앞에 나오면 됩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말이 변화게 되고. 예수 앞에 나오면 태도가 변화가 됩니다. 여러분 잘들으십시오. 사람 변화시키는 것은 뭐냐하면 내가 잔소리하고 협박하고 윽박지른다고 그런다고 절대로 변화되는 것 절대로 아닙니다. 변화될 상황으로 이끌고 나오면 다 변화되요. 여러분! 우리교회 청년들 보십시오. 청년들이 왜이리 조용한지 아십니까 그거 남자 여자 적당히 섞어 놓으면 조용합니다. 그거 아십니까 그러니까 너희들 왜 떠들고 그러냐 목욕좀 하고 다녀라. 그럴 필요 하나도 없어요. 적당히 섞어 놓으면 너무 목욕을 해서 껍질이 벗결질 정도고요. 향수를 뿌려라 말아라 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런 상황을 이끌면 그렇게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뭐 내가 언제 기도하라고 소리지른적 있습니까 기도하는 사람 옆에 붙여 주면 다 기도하는 거고요. 예배 드리는 사람 옆에 두면 다 예배 드리고. 그렇게 합니다. 금식을 뭐 능력이 있어서 금식을 합니까 금식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자기도 금식할 맘이 생긴다니까요. 이게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자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을 잘 만들라 만들라! 백날 하면 뭐합니까 그거. 좋은 음식 먹여주면 흉내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일들이 저는 많은데, 제 처하고 일본에 한번 갔다고 온적이있습니다. 일본에 초빙을 받아서 같이 쭉 갔다 왔는데, 일주일 동안 나고야부터 시작해서 나아라. 교토로 해서 일본의 좋은 경주같은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한참을 돌아다닌다음 한달동안 계단을 돌아다녀보니까 다 일본식입니다. 일본식 간장, 일본식 두부. 간장도 어디서 수입을 해왔는지. 맛 비슷하게. 제가 그때 느낀 것이 이거였습니다. 양식을 먹고 싶으면 양식집을 한번 갔다오면 되고. 일식이 먹고 싶으면 일식집을 한번 다녀오면 되는거다! 본대로 사람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본대로. 그러므로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흥을 본자가 부흥을 일으킵니다. 먼저 본자에 책임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옆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부흥시키기 원하십니까 예수 앞에 나오면 됩니다. 예배의 자리로 나오면 됩니다. 교회가 가는데로 가게만 만들면은 모두가 변화될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변화의 원동력.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다라는 거예요. 주님앞에 나오면 되는 거예요. 내가 변화기 위해서도 결심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앞에 나오면 내가 변화된다. 우리 주변에 있는 형제 자매들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윽박지르는게 아니라 주님앞에 나오면 변화가 된다는 거예요. 우리 중요한 원리 잊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님앞에 은혜를 채워가는 믿음의 종들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배우는 교훈이 뭐냐
우리는 단순히 보고 들은 것을 전하기만 하면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18절 보십시요.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제일 무서워하는게, 마귀가 제일 무서워 하는게 뭡니까 말하는 겁니다. 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종은 자꾸만 말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독교 반대하는 분 보십시오. 밤낮 인터넷 게시판 같은데에 쓰레기 같은 글들 올려놓고 뭐 자꾸 공격하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들. 가만히 앉아가지고, 좋은거면 말도 안해요. 꼬 보면 그래요. 보면 은혜받은 얘기는 가만히 있고. 조금 자기한테 피해가 있으면 항의하는 글은 어디에다 도배할 정도로 쓰고 이게 문제 아닙니까 좋은 것을 표시하십시요. 좋은 것을. 여러분 벚꽃 놀이 한번 갔다 온후에도 그거 아름답다고 그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진해 벚꽃놀이 멋있다고. 멋있다고. 아 뭐 누구는 안가봤나 밤낮 그런 얘기해요. 벚꽃놀이 한번 다녀온 후에. 뭐 무좀한번 낫은후에 어떻게 하면 무좀이 낫냐는니 그런거 선전하고 다녀요. 제가 붙잡고 그랬습니다. 제발 복음이라도 그렇게 전하고 다니라고. 어제 아침에는 저에게 약을 준것도 아니예요. 쪽지를 하나 주더라고요. 대머리 약이라고. 이렇게 하면 낫는다고. 1번. 알로에를 그늘에 3일정도 말린다. 2번. 알로에를 소주에 담그고 2주일간 담근다. 3번. 액체만 스프레이에 담아서 매일 세차례 이상 뿌린다. 4번. 솔빗으로 매일 두피를 마사지 한다. 5번. 한 3년정도 하면 낫는데요. 허 참!. 이게 웃으라고. 이게 유머에요 진짜예요 내가 버리지도 않고 가지고 있는데. 이 열정가지고 복음을 전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갖어요. 새벽에 은혜 받은 것 있으면 좀 전하십시오. 왜 침묵하고 있습니까 느낀점을 좀 말하세요. 글로 좀 남기라고요. 어떤 형제가 그러대요. 자기는 1부에 나간데요. 1부에 나가는 이유가 뭐냐 빵먹을까봐 나온다고 그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래요. 1부예배 끝나고 2부예배 줄 쭉 서있는 사람 보면서 내려갈 때 눈물이 난데요. 눈물이. 우리 설교에서 은혜를 못받고. 거기서 은혜를 받는데요. 거기서. 그러다가 또 메일이 왔어요. 다시 2부에 나오겠데요. 왜그러냐 그랬더니 2부에 줄서는 기쁨이 있대요. 자매들과 잘 서서. 그때 많은 좋은 일들이 벌어진다나 그러면서. 왜 말만하면 뭐해요 왜 나한테 메일만 보내고 있어요. 표현을 하라고요. 그러면 또 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거 아니예요 나도 좀 그런데에 은혜 받겠다고. 좋은 것은 자꾸 표현해야 합니다. 표현하고. 알리고. 그저 다른 사람을 좋은 곳으로 이끌줄 아는것. 여러분! 초대교회에 부흥이 뭐 다른것에 있습니까 자기가 보고 들은 것 그냥 말하고 다닌거예요. 침묵하지 아니하고. 그거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할때는 과묵해지고. 불평 얘기 할때는 수다떨고. 그러니까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은혜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할 때 그리스도의 복음이 힘있게 증거될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4장에서 핍박전하는 제자들의 삶의 모습에서 배워야 합니다. 어려움. 그것을 어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길 닦는 중이다 라고 생각을 하는것. 또한 변화는 내가 윽박지른다고 변화되는게 아니예요. 예수 앞에 나오면 변화 됩니다. 예수 앞에 이끌줄 아는 종들 되게 해 주십시요. 이게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 보고 전도라인입니다. 들은 것을 전하면 됩니다. 왜 다른 것은 흥분하면서 전하면서 왜 우린 가장 중요한 생명의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까 오늘도 만나는 것마다 글이 되었던 말이 되었던. 뭐 어떤 통로가 되었던 모든 채널을 다 동원해서 우리가 보고 들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믿음의 종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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