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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망의 사람을 춤추게 만들라 (행 0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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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침부터 상당히 어려운 노래를 부르시네요. 오늘은 특별새벽기도회 세 번째 시간입니다. 절망의 사람을 춤추게 만들라! 절망의 사람을 춤추게 만들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습은 우리 신앙인들과 세상 사람들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만남을 통해서 세상이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화학이 만나야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우리 성도가 세상 사람들을 변화시키는것도 마찬가지로 이 화학 반응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속에 들어가야 세상이 변하고 문제속에 들어가 있어야 세상이 변하고 현장속에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야 세상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번 우리 사스라는 전염병을 통하여 깨닫게 된 것이 뭐냐 저는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 이런 사스와 비슷한게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만나면 다 변화 받고, 심지어 치료할려고 했던 그 의료진까지도 변화가 아니라 전염을 시키는 그런 강력한 힘. 그게 초기 기독교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할때 기독교는 염병이다. 전염병이다라고 말할정도로 강력한 만남의 변화를 통한 힘을 가지고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종입니다. 세상은 변화되어야 할 대상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만남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변화가 되는지 우리 3장을 통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신앙인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제 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라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우리는 많은 영적 앉은뱅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범죄 위에 우리 인간에게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 가시와 엉겅퀴입니다. 갈등과 질병과 사고가 끊임없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영적 앉은뱅이를 분석해 보면 첫째로 땅에 붙어 사는 사람들을 볼수 있지요. 항상 걷기 못하고 모든 관심사가 땅 아래에만 있습니다. 영원한 하늘에 속한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영적으로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길들여져서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많은 소망없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는 구걸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조금 적극적인 사람인데.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같은 사람입니다. 자기 능력을 가지고 뭔가를 찾아보겠다는 사람이 있지요. 여자가 교제를 나눈게 5명이 아니라 남편을 다섯명 바꿨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남자가 6번째 아닙니까 여러분도 알겠지만 지금도 이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이런다는 것은 보통 열혈여성이 아니면 이거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어떤 여자였습니까 자기의 욕구,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계속해서 뭔가를 찾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런 사마리아 여인의 증후군이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 먹고 살만해져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만족을 못합니다. 밤낮 뭔가를 추구하려고 해요. 여기 젊은이 가운데. 제가 제일 많이 만나본 사람 가운데 사마리아 여인같은 사람있습니다. 학교를 6군데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이해가 갑니까 저는 그 사람이 이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전공 해보니까 여기도 만족이 없고, 저 전공 해보니까 저 전공도 만족이 없고. 갈팡지팡 하는 거예요. 여기도 만족이 없고, 저기도 만족이 없고. 결국 우리가 세상에서 추구한다고 만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마리아 여인뿐만 아니라 우리도 비슷한 성향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만족 없습니다. 그러니까 밤낮 구걸하는 거에요. 이렇게 구걸해도 만족이 없고, 저렇게 구걸해도 만족이 없는 것,
세 번째 유형은 성전 주변을 맴도는 인생들이지요. 지그 이 앉은뱅이가 구걸하는 장소가 성전입니다. 항상 성전 주변에 있으면서도 은혜를 맛보지 못하는 사람. 우리도 이런 사람 많이 있지 않습니까 모태신앙이라고 그러고 교회는 수십년 다녔다고 그러는데 찬송가는 따라하는데 감동이 없고요. 성경말씀은 수십번 들었는데 그런데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 다 앉은뱅이입니다. 우리 주변에 다 이런 사람 아닙니까 부탁하고 불만에 사로잡히고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 목사 아들이 있을수 있고 , 목사 딸이 있을수 있고, 장로 딸들이 그럴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중직자 속에서도 이런 사람이 발견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이런 사람들 정말 불쌍한 사람들 아닙니까 이런 사람들이 우리 참된 교회 주변에 둘러 싸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우리 성도들은 어떤 성도들입니까 무장된 성도입니다. 성령충만한 종들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보여준것과 같이 그 가운데서 성령충만한 백성들이 있습니다. 새 힘과 새 언어를 받았습니다. 삶가운데 확신이 있습니다. 이런 확신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 어두움 가운데 하나님이 그 어두움을 다 변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빛된 존재를 보내서 그 어두움을 밝히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이 앉은 뱅이 같은 세상사람들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으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를 세워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사명이 있습니다. 무장된 종들. 그러므로 세상에서 우리가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제일 바보같은 사람이 누군가 하면 밤낮 세상만 분석합니다. 세상만, 세상이 얼마나 어두운지.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앉은뱅이 다운지. 누가 그걸 몰라요 그런 모든 것들에 대한 분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그러나 그 안에 참됨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 성도가 그 앉은 뱅이를 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참된 무장된 성도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있으시면 세 가지 정도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 보십시오. 하나님께 엎드리니까 그 얼굴의 영광의 상처가 있지 않았습니까 사무엘 보십시오. 기도의 능력으로 블레셋을 물리치잖아요. 시대의 난제를 해결하잖아요. 엘리야를 보십시오. 바알 선지자들과 맞서서 확신있는 기도로 승리를 거두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베드로와 요한은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수 있는 권능의 사람이 될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세상이 줄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무장하고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으면은 그것이 세상의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인이십니까 여러분! 캠퍼스에 서 있습니까 여러분이 정말로 직장에 최고의 선물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여러분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장하는것. 그것이 세상이 줄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령의 기름부음받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이냐
협력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 복음서 제일 마지막에 요한복음 21장을 보면은 21장 21절을 보면 베드로가 요한을 보면서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이렇게 묻지요. 베드로가 자기 운명에 대해 얘기를 하니까. 베드로는 그때까지만 해도 정신이 덜 들은 것 같습니다. 자기문제에 대해 정신을 집중해야지. 아마 영적 라이벌 의식이 있었나봐요. 요한에 대해 묻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지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너하고 무슨 상관이냐 너가 뭔데 참견이야 이런말 아니예요 너는 나를 따르라! 너나 잘해. 너나 잘해! 라는 말이지요. 우리 한국식 뉘앙스를 보면 너가 요한에 대해 뭐 그리 관심이 많니 너나 잘해라. 너나. 너나 열심히 충성해라. 이러던 베드로와 요한이었는데. 사도행전에 넘어오니까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협력하잖아요. 섬기잖아요. 특별히 이 부분을 볼 때 요한이 참 잘한 것 같습니다. 그림자 사역. 2인자의 사역을 참 잘하지 않습니까 하여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되면 다 남들을 배려하게 되고 협력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특징이 뭐냐 이웃이 뭡니까 저는 성령충만의 가장 큰 특징을 여기로 잡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방언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그러는데 그런 것들을 성령충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볼때는 상당히 오도된 접근입니다. 성경에 어디 그런 부분이 있습니까 성령충만해 지는 것은 엘시타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충만을 에스타시라고 생각을 해요. 눈 뒤집어 지고. 뭐 개기름 흐르고. 이런 것을 성령충만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성령충만이 임하면 조이입니다. 조이. 기쁨이 충만해 지는거지요. 점점점더 사람이 매력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상 야릇하게 변하는게 아니구요. 성령충만해 지면 이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전까지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들이. 이웃에 필요가 보이고 이웃의 아픔이 보이고. 이웃에 대한 배려가 보이고.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다고 하면서 자기 맘대로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 제대로된 성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금 다른 성령이예요. 우리가 믿는 성령하고 조금은 다른 성령이지요. 이름은 뭔지 모르겠지만. 여러분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면 반드시 이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웃이. 이웃에 대한 배려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이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던 것이 이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빛과 어둠이 만났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한쪽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거고. 한쪽은 필요를 요구하는 쪽입니다. 채워지게 되어 있겠지요. 그 다음에 베드로와 요한이 필요를 채우는 일. 교회가 어떤일인 것인가
첫째 필요를 알고 채웠습니다. 지금 이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원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빈손으로 달라고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의 텅빈 손보다는 텅빈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가 그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곧 일어나 걸으라하고.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봤잖아요.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진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진짜 필요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또 하나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예수 그 이름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이 뭔지 아십니까 분주하게 모여가지고 구제하역한다, 뭐 프로그램한다 그런 것은 모두 부차적인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뭔줄 아십니까 교회가 뭐예요. 성도가 할일이 뭐예요. 예수 이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일은 그거에요. 예수 이름을 굳게 믿는 거예요. 목사가 할일이 뭡니까 설교, 기도 모두 중요하지만 예수 이름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굳게. 그 이름으로 죄사함을 굳게 믿는 거예요. 그럴때 죄사함의 은총이 임하게 됩니다. 기도가 응답받고 생명을 얻으며 귀신이 쫓겨가고 그 이름앞에 모두 무릎꿇는 것. 그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주시오 만왕의 왕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 굳게 믿는 그 믿음이 역사입니다. 믿음이. 우리가 예수를 굳게 믿는 그 역사가 결국 많은 사람들을 주께 돌이킬수 있는 역사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능력이 아닙니다. 종이 한 장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그 종이 뒤에 빨간 벽돌 하나가 들어가 있으면은 종이의 강도가 아닙니다. 빨간 벽돌의 강도로 강해질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때 모양은 똑같은데 어떤 사람은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이름을 굳게 믿는 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 번째 믿음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이런 무장 다 한 다음에 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움직여야 됩니다. 영적으로 무장되었지요 한일이 뭡니까 제주 선교로 나아가야 합니다. 일본 선교 나아가야 합니다. 직장 선교 나아가야 합니다. 계속 부딪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해야 할 일이 뭡니까 제발 앉아 있지 마시고요. 모였을때 기도하고 흩어져서 자꾸만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는 반응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꾸 변할 것 아니예요. 앉은뱅이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발목에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 힘을 주어야 합니다. 힘을. 실지로 힘을 얻고. 진정한 성도가 이런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얘길를 자꾸 합니다. 어 나에게 힘이 생겼다고. 내가 절망 가운데 쓰러져서 밥도 제대로 못먹었는데 내가 힘이 생겼다고. 일어날 힘이 있다고. 새벽에 나올 힘이 없던 사람이 새벽에 나올 힘이 생깁니다. 기도하지 못할 사람이 기도할 힘이 생깁니다. 여러분 주일날 봤습니까 한달에 한번 예배 못나오던 사람이 저녁 늦게까지 의자 나르고 가는 것을 보면은 그 사람한테 “너 어떻게 된거야” 하고 물어보니까 “저도 몰라요 그냥 힘이 생겨요”. 힘이 생기는 거예요. 힘이.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이게 교회가 할 일이라니까요. 기어다니는 사람. 그게 앉은뱅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에 뭐라고 합니까 8절.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뛰어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그게 상상이 됩니까 앉은뱅이가 태어나서 걷고. 그가 걸어도 보고. 뛰어도 보고. 하도 신기하니까. 어 내가 걸을수 있네. 내가 뛸수 있네. 이게 바로 교회가 할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불러가지고 앉은뱅이같이 꼼짝도 못하는 사람. 땅바닥으로 기어다니는 사람들로 하여금 걷게 만들어야 하고요. 뛰게 만들어야 해요. 실지로 한국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앉은뱅이 같지 않습니까 밤낮 자기들끼리 모여가지고 좋으니, 싫으니 그러고. 뛰게 만들어야지요. 걷게 만들어야지요. 여러분 직장에서 뛰어다녀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뛰어 다녀야 합니다. 그리고 뭐라고 그랬어요 이 앉은뱅이. 구걸하던 입술을 통해서 찬미했다고 그러지요. 찬미. 하나님을 찬미하니. 살아 있는 교회가 세상 가운데하나님을 만남으로서 불신자들로 하여금 힘을 얻게 하고요 걷게 만듭니다. 그리고 거기서 머무르는게 아니예요. 그들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미케 만들어요. 이게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나타나게 하기위해서 할일이 뭡니까
먼저 성도가 영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 무장된 성도가 이 어둠속에 있는 사람들이 만나야 합니다. 만나야 돼. 무장하고 만나는것. 그러면 그들이 변화가 됩니다. 그들의 무력함 속에 있는 사람들이 발목에 힘을 얻게 될 것이고 걷거나 뛰게 될 것이고 그들의 입술을 통해서 찬미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정일수도 있고, 우리 직장일수도 있고 우리 주변에 이런 많은 어둠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런 나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시사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이 초대교회 같은 역사가 일어나게 해 달라고 우리 간구하는 믿음의 종들 되길 축원합니다. 우리 다같이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자리에서 10분 이상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이런 능력을 주십시오! 이거 간단한 것입니다. 모여서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고 또 하나 하나님 나에게 예수 이름을 굳게 믿는 믿음을 주십시오 그리고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은혜를 주십시오. 이런 변화가 나타나길 원합니다. 하나님 앉은 뱅이들이 힘을 얻고 걷고 뛰기도 하며 찬미했던 것처럼 변화를 달라고 다같이 하나님께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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