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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 때문에 (창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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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의 지혜는 사람의 삶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꿀벌 같은 삶’ 즉 꿀벌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사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삶’이고 둘째는, ‘개미 같은 삶’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가지만 누구에게도 유익을 주지 않는 자기 중심적인 삶, ‘세상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삶’이며 셋째는, ‘거미 같은 삶’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 남을 잡아먹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 있어는 안되는 삶’이 그 것 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나를 희생하기까지 남의 유익을 구하는 꿀벌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꿀벌과 같은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은 죽음 앞에 선 롯의 생명까지도 구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아브라함의 어떤 점을 생각하셔서 롯을 살려 주셨을까요

첫째로, 확실한 믿음의 약속 안으로 롯을 인도하였음을 생각하셨습니다.(창 12:1-4)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때만해도 그에게는 어떠한 축복의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를 부르신 이가 누구시라는 것을 알았고 또 그분을 확실히 신뢰하였습니다. 그래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를 기다리고 있을 축복의 땅을 향한 그의 여정에 롯을 동행시켰던 것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덕을 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누어 줄 수 있을 만큼 확실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실 그렇지 못하다면 큰 문제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과 축복의 언약을 확실히 믿고 있다면 우리의 가족, 친지, 그리고 이웃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용기가 없어서 혹은 자신이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 함께 가자!’고 말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 보십시오. ‘나는 그 약속을 확실히 믿고 있는가’라고…!

둘째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까지 롯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셨습니다.(창 13:8-10)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고초를 치르고 축복 가운데 가나안으로 돌아왔을 때 롯에게 그가 원하는 땅을 먼저 선택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는 참으로 욕심을 버린 양보 였고 자신 보다 남이 잘되는 것을 원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롯의 위기상황 속에서 생각하셨던 것이 바로 이러한 아브라함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욕심도 없이 오히려 남을 위해 손해 보기를 원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 뿐입니까! 그를 보시고 그가 참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자들도 축복하십니다.

셋째로, 롯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를 생각하셨습니다.(창 18:22-33)
아브라함의 기도는 끈질겼습니다.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고 그 결과 아브라함 때문에 롯을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기도 중에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중보 기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죄 범한 백성을 위한 모세의 목숨을 건 기도, 눈물로 범벅이 된 예레미야의 기도, 그리고 우리를 위한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기도, 사랑하는 믿음의 자녀들을 위해 드렸던 바울의 애절한 기도가 오늘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영원한 삶의 축복을 이 생에서 그리고 저 생에서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지금 당신은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지금 그 누군가가 당신의 기도 때문에, 바로 당신 때문에 구원받고 축복 받고 있다는 것을…

어느 시골 농촌에 아래, 위 천수답을 갈아먹고 사는 이웃이 있었습니다. 윗 논의 주인은 집사님이었고 아래 논의 주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답니다. 그런데 아래 논 주인이 얼마나 심술이 궂은지 밤마다 몰래 논둑을 터서 윗 논의 물을 자기 논에 채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두번 참다 못한 집사님이 하루는 화가 나서 오늘은 가만 두지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아래 논 주인을 찾아가던 중에 하나님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진정하고 다음부터 물을 댈 때는 아래 논부터 대고 네 논에 물을 대보아라.” 집사님은 깊이 깨닫고 다음날 자신의 논에 물을 대기 전에 아래 논에 먼저 물을 댔다고 합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며칠 동안 아무 말도 않던 아래 논 주인이 하루는 일을 하고 있는 그를 찾아와서는 말했답니다. “나도 다음 주일부터는 당신이 나가는 교회를 나가겠소. 당신 때문에 나는 많이 울었소!”

사랑하는 벧엘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남을 위해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흔히 듣는 “당신 때문에”라는 말 뒤에 오는 서술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당신 때문에 나는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은 “당신 때문에 우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참 유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이라도 “당신 때문에 내 일생은 망했소.”“당신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소.”라는 부정적인 말을 듣는 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희생으로, 그리고 남을 위한 끈질긴 기도로 “당신 때문에 나는 행복합니다.”“ 당신 때문에 나는 구원을 얻었습니다.”하는 고백을 듣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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