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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빌 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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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가 한 분이시듯 교회는 하나의 교회입니다. 사람으로 비유를 하자면 예수님은 머리가 되시고 모든 성도, 천상에 있는 성도-땅에 있는 성도, 는 지체가 되는 하나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무형의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 교회는 지역 교회들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디옥 교회, 빌립보 교회, 영락 교회, 철원성결교회.......
이런 교회는 땅에 있고 구성원이 다르기에 각기 특색이 있습니다. 성도가 누구냐에 따라서 교회의 수준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나은 교회가 있고 못한 교회가 있고, 칭찬이 자자한 교회도 있고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도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로부터 존귀와 가치를 인정받는 교회가 있는 반면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교회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철원성결교회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교회의 현 주소는 어떤가 주님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좀 더 주님을 붙들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철원성결교회입니다. 아무튼 철원성결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철원성결교회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연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심각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철원성결교회는 아주 훌륭하고 유명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제 얘기는 지금의 이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 세워진 철원성결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지금의 관전리 마을 뒷 언덕에 성결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솔밭이 되었고 교회당에 들어가는 계단만 조금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철원성결교회는 1914년에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강원도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교단을 초월해서 개신교로 첫 번째로 세워진 교회가 철원성결교회요 또한 가장 큰 교회이기도 했습니다. 새벽 기도회에 300명 정도가 모이는 교회였다고 하니 보통 집회시는 천명이 넘게 모이는 대 교회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강원도에는 천명이 모이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철원성결교회는 천명이 넘게 모이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한 번 집회에 140명이 결신하는 일도 있었다고 교단 신앙 잡지인 활천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철원성결교회를 통하여 세워진 지교회만도 6개가되었습니다.
서울신학대학교의 유일한 재단수익 자금원인 임야와 전답 20여만 평도 모두 동송에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철원교회 성도가 학교에 기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리 철원성결교회는 어찌됐든 이처럼 자랑스러운 철원성결교회의 맥을 잇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서 우리 철원성결교회가 강원도의 장자 교회로서 위상을 회복할 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선도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포부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자랑스러운 철원성결교회의 역사를 가슴에 담고서 긍지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선배 신앙인들의 후배요 그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역사는 우리 어깨에 지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들 한 심령 한 심령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더 성장해야 되며 계속된 향상이 있어야 합니다. 조그만 자기에 얽매여서 하나님의 큰 뜻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 때문에 귀한 것을 가볍게 여기는 잘못을 범해서도 안될 줄로 압니다.
눈을 크게 떠서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장부다운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빌립보 교회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복음이 전파가 되어서 첫 번째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모진 박해 가운데서도 견고하게 믿음 위에 세워졌던 본받아야 할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빌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얼마나 복된 성도들인지 모릅니다.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는 성도 기도할 때마다 기쁨이 넘치는 그런 성도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생각할 때마다 걱정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빌립보 교회는 그런 교회가 되었을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이 또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I. 복음의 협력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는 복음의 협력자들이었습니다.
(빌1: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빌1:7하)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빌1:5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첫날부터 오늘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복음을 전하는 데 협력해 온 것을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빌1:7(공동번역) 여러분은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수호하고 입증할 때에 나와 함께 은총을 나누어 받으며 고생을 같이 해 온 사람들로서 항상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으니 내가 여러분을 그런 생각으로 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성도란 한 마디로 복음으로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복음을 위하여 산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너무나도 귀한 것이기에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가슴이 타 버릴 것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주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새로운 삶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 우리는 이것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위하여 그들의 목숨을 버렸는지 모릅니다. 토마스 목사님은 우리 나라에 복음을 전해 주려고 갖은 고생을 다하여 제너럴 셔먼호에 통역관으로 우리 나라에 와서 어떻게 해서라도 복음을 증거 하려고 왔다가 성경책만 건네주고는 대동강에 그의 피를 뿌렸습니다. 언더우드 목사는 우리 나라에 복음을 증거하러 왔다가 26세의 나이로 병들어 죽었습니다.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목숨을 버리며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우리 나라 방방곡곡 도처에 세워진 교회마다 복음을 위해 헌신한 우리의 선배들의 피땀이 서려 있습니다.
우리가 남을 위해 해주어야 하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을 주고 친절을 베풀어주었다고 할지라도 복음을 전해 주지 못했다면 그에게 무익한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느 글에 보니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예수를 믿지 않고 지옥에 들어가게 된 사람이 그의 예수 믿은 친구를 붙잡고 하는 말이 “자네는 나에게 잘해 주었네. 어려울 때 돕고 사랑을 베풀어주었네. 그러나 이제 내가 지옥으로 가게 된 이 순간 가장 필요한 복음을 전해 주지 못한 자네가 원망스럽네. 나는 자네를 진정한 친구라고 말할 수가 없네”라고 한 글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복음위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 교인들처럼 복음의 협력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여러분이 잘아는 코미디언이었던 김경태 장로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간암으로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까지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의 삶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신앙의 본질과는 다른 것들을 붙잡고서 씨름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남이 자기를 얼마나 알아주는가 인정을 해주느냐 아니냐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가 더 높냐를 가지고 다툰 것처럼 허망한 것을 가지고 주님의 마음을 슬프게 할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복음의 협력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위해 사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더 풍성한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빌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1:9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참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추어 점점 더 풍성해져서
빌1:10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릴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순결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게 되고
그리스도인의 인격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말하면서 사랑의 사람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복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신앙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사랑이 풍성한 성도가 되기를 원하면서 ‘참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추어 풍성해져서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릴 수 있는 사랑’을 갖추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원한다고 해서 사탕을 주는 부모는 자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원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고 올바르게 키우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분별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정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철없는 사랑 대문에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오용된 사랑은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서 사랑으로 인간의 정을 느끼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잘못된 사랑이 인간 사이에 벽을 만들고 진정으로 상대방을 위해 주지 못하는 경우를 초래합니다. 예를 들어 누구를 위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서 들어서 아무런 유익도 없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전해 준다거나 하는 일로서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처럼 가장 옳은 것을 분별하는 사랑으로 모두에게 나누어주는 사랑이 교회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랑을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함을 받아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를 가져야하고 그 깊은 관계가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을 사랑으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정해진 시각에 어떤 큰 오르간 연주회가 열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르간에 펌프질을 할 사람이 그만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한 유명한 작곡가가 자신이 그 펌프질을 하겠노라고 자원했습니다. 왜 그런 보잘것없고 천한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작곡가는 음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한 일도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그를 섬기는 가운데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결코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 안에서 행하는 봉사의 일이라면 가장 작고 미미한 일일지라도 모두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여러분을 충만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III. 그리스도 안에서 의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빌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1:11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올바른 일을 많이 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옳은 일을 많이 하여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중국 농촌에 있었던 일입니다. 날이 몹시도 가물어서 벼들이 타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어떤 성도가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시뻘겋게 타고 있는 논을 차마 보지 못하여 비싼 양수기를 구입하여 물을 펐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나가 보니 아래 논의 사람이 논둑을 터놓아서 물을 다 빼 갔습니다. 예수를 안 믿었다면 곡괭이를 가지고 나가 싸우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참고 논둑을 막고 다시 물을 펐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나가 보니 또 물을 자기 논에 댔습니다. 또 참았습니다. 세 번째도 그랬습니다. 그는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렇게 세 번식이나 참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은 웃으시면서 “형제여, 이왕 물을 세 번 빼앗겼으니 한 번 더 물을 빼앗기는 셈치고 먼저 그의 논에 물을 대주고 그리고 형제의 논에 물을 대십시오. 그렇게 할 때 참은 것이 참는 것이 됩니다.” 그는 목사님의 말을 듣고서 인내를 가지고 아랫논부터 물을 퍼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논에 물을 댔습니다. 다음 날 아랫논의 임자는 눈물을 흘리며 찾아와서 용서를 구하면서 “예수를 믿으면 다 그렇게 됩니까 나도 예수를 믿겠습니다” 그리고 그도 예수를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여러분의 주변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되어지는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의의 열매가 있습니까 의의 열매의 그릇이 너무나 빈약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을 보고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기회가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옳은 일을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주도권을 행사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만이 성령님을 통하여서 주도권을 행사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순종할 뿐입니다.
이렇게 했을 때 우리는 인간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을 바라볼 수가 있게 되며 우리의 믿음이 큰 믿음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그 교회가 바로 우리 철원성결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옛날의 철원성결교회를 뛰어넘어 흠이 없는 교회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때만 가능한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 고귀한 대열에 여러분 모두가 동참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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