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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솔로몬의 성전3 (요 02:21, 왕상 0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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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세계의 경이로움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 주고 있다는 이 사실입니다.
존재하는 전 피조세계는 사실상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는 만남의 광장이요, 은총의 광장입니다. 그러므로 범죄 이전의 모든 피조세계는 사실상, 그 어디에나 성전이었습니다.
인류의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만나는 장소를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득죄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주는 대리적 중보 역할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하신 대속계시이고, 그 대속계시는 구약 여러 시대 여러 모양의 속죄 양식이었습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그 아들 예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어, 지금은 누구든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 믿고 나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는 몇 가지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제단’을 통하여 만났습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죄를 대신하는 제물이 제단에서 희생이 되므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족장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출애굽 이후 광야교회 시대와 사사시대는 성막(회막)에서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가족 단위 시대의 만남에서 나아가 일종의 부족단위 시대로 나아가면서 가나안을 향하는 일군(一郡)의 큰 부족 중심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때였습니다.
그 후 가나안 땅 정착 시대와 함께 이스라엘에 신정국이 이루어 질 때, 수도 예루살렘에 솔로몬 왕에 의해서 성전이 세워 졌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전 민족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발전된 것입니다.
나중에 신약시대에 와서 바른 성전의 실상은 예수님 자신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요2:21). 그리고 그 예수님은 믿음으로 영접하고 있는 오늘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3:9, 16. 6:19, 고후6:16, 엡2:22, 벧전2:5).
우리는 다시 솔로몬 성전에로 우리의 마음을 집중시켜 보아야 합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그 영적 본질이 ‘평화의 집’이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전’이라고 하는 말의 뜻을 모아 보기 원합니다.
Ⅰ. 평화의 사람들에 의해서 건축되었습니다.
6장 1절에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지 사년.....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란 이름의 뜻이 ‘평화’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때를 ‘평화시대’로 만들었습니다. 열왕기상 5장 4절에 이제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태평’( = 나아흐)은 안식에서 유래한 단어(창2:2, 3)로서 하나님의 섭리적 축복에 의해 국력의 신장과 번영으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것은 그 부왕(父王) 다윗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었습니다(삼하7;1).
뿐 아니라 두로왕 히람과 더불어 화친 언약을 맺었습니다. 열왕기상 5장 12절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시므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솔로몬과 두로왕 히람 사이에 화친 조약이 성취된 것은 솔로몬의 성전 역사(役事)에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로의 땅 레바논은 성전 건축 자재인 백향목과 잣나무의 원산지였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이미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지목해 놓은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의 영을 주었습니다.
그 영을 받은 사람 솔로몬의 말을 들은 두로 왕 히람이 감동을 받고 크게 기뻐하여 오늘날(솔로몬이 섬기는)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저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도다고 감복하고 말았습니다(왕상5:7). 그리고 모든 역군들과 백성들에게 한결같은 평화의 마음들이 일어나게 섭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의 성전은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들에 의하여 지어진 것입니다.
Ⅱ. 평화의 기초석에 세워진 성전입니다.
열왕기상 5장 17절에 이에 왕이 명을 내려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다듬어서 전의 기초석으로 놓게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크고 귀한 돌’이란 대리석과 같은 고급 건축 석재를 가리킵니다. 5장 15절에 보면 ...산에서 돌을 뜬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다시피 팔레스타인 중부 지역은 그 대부분이 고원지대로서 석회암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석회암이 침식된 동굴과 천연적인 암석이 많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목재인 백향목과 잣나무를 북쪽 레바논으로부터 수입하였으나, 성전 건축에 필요한 돌은 이스라엘 자체 안에서 풍성하게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다듬은 기초석의 크기는 한 변의 길이가 4,5m(10규빗) 혹은

3.6m(8규빗)의 정방형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그의 성전 기초에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사용한 목적은 그 돌이 지니고 있는 단단함 때문입니다. 실로 그 ‘크고 귀한 돌’은 평화의 기초석이 되었습니다. 놀랍고 신기한 것은 솔로몬이 성전 초석을 세웠던 그 자리가 바로 저들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던 장소였다는 점입니다.
자기 아버지 다윗이 번제물을 드림으로 죄를 용서받던 장소, 곧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곳이 먼 훗날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장소였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예수께서 ‘크고 귀한 반석’이 되어 신약교회의 초석이 되신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Ⅲ. 평화의 역군들에 의하여 지어진 성전입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는 18만 3천 3백명의 역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총책임자 아도니람 감독(5:14)을 위시하여 중간 관리 3천 3백명, 벌목꾼 3만명, 담군(짐나르는 사람) 7만명, 채석공 8만명(왕상5:13-16)이 동원되었습니다.
5장 18절에는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들과 돌들을 갖추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발사람’이란 베이루트 북방에 위치한 베니게 최북단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수13:5). 이곳 사람들은 배를 만드는 기술이 능할 뿐아니라, 건축술에도 능한 자들이었습니다(겔37:9).
열왕기상 6장 7절에 이 전은 건축할 때 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 하였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전속에서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성경을 종합해 볼 때 솔로몬의 성전 역군들은 참으로 평화의 역군들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한다고 하는 경건심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① 저들의 합심과 합력의 작업에서 보여 집니다. 벌목하는 자는 나무를 베는 곳에서 자기 일을 하고 돌을 뜨는 자는 돌을 뜨는 채석장에서 자기 일을 하고 그것을 등으로 운반하는 담군은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 일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② 질서 체계에서 움직인 작업에서 볼 수 있습니다. 총 감독관을 위시한 3,300명의 작업 반장(동독하는 자)들이 일하는 자들을 거느리니라고 한 사실입니다(왕상5:16).
③ 한 목적을 위해서 자기들의 재능들을 한 곳으로 응집한 사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들의 모든 재능이 오직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한 목적에 동원되고 있는 사실을 봅니다(5:18).
④ 더욱더 우리에게 큰 감명과 교훈을 주는 것은 그 역군들의 경건심입니다. 저들은 전을 건축할 때 나무를 벌목하는 곳에서, 돌을 치석 하는 곳에서, 완벽하게 식양대로 완성품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성전 공사의 현장에서는 일체의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왕상6:7).
이것을 볼 때 저들이 하나님의 집을 짓는 다고 하는 목적 의식이 얼마나 뚜렷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솔로몬의 성전은 평화의 집이라고 하는 사실에 유의하면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말씀의 중심 내용은 성전 공사에 참여한 인적인 요소들을 중심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성전이 평화의 집이라고 하는 사실을 이 집의 주인이신 주님이 바로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짓는 사람들이 평화의 요소가 아니라, 실상을 성전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께서 영원한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집을 짓는 솔로몬에게 평화의 은총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솔로몬과 히람에게 평화의 조약을 체결하게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들에게 평화의 은총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전 공사의 대사는 주께로부터 은혜를 입은 은총의 사람들에 의하여 이룩되어 갈 것입니다. 그 은총의 힘은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믿음으로 사람들과 화목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솔로몬의 성전의 기초석은 ‘크고 귀한 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성전이 사실상 생명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반석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기초석입니다. 우리의 성전 기초는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터’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초석이요, 모퉁이의 머릿돌이십니다(엡2:20, 마21:42).
사도 베드로는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 와, 너희도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한다고 하였습니다(벧전2:4).
그리고 우리 자신들이 ‘잘 다듬어진 돌’이 되어야 합니다. ‘크고 귀한 돌’ 되신 예수(구원)의 터위에 잘 다듬어져 쌓여 올려지는 작은 돌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듬어진 돌과 같이 처음부터 다듬어진 사람은 없습니다. 석공이 건축주의 필요에 의해 여러 형태의 모난 돌을 건축할 목적에 맞게 다듬듯이, 우리 자신들이 주님의 영에 의하여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와 회개와 겸손과 감사와 인내로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 용도에 맞게 주님의 쓰심에 맞게 다듬어져야 합니다. 절대로 망치소리나, 철연장 소리 같은 사람의 소리가 크게 들려서는 안됩니다. 결코 사람의 큰 소리, 사람의 의로운 소리()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보십이오!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온통 움직임이요, 요동이요, 요진입니다. 창조함을 받은 이래 생명 세계의 피조물들이 그 어느 하나 그 움직임을 멈출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시편 성도는 노래하기를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는 자 없도다(시19:1-6)고 하였습니다.
모든 식물, 모든 동물, 모든 생물은 질서의 조화와 고요 속에서 성장하고 진보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고요 속에서 충성합니다. 그 이유는 그 일 자체가 하나님 자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일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붙잡고 당신의 일을 하신다고 생각할 때, 더더욱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요하게 일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은혜 입은 사람의 태도입니다.
바로 이것이 잘 다듬어진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받은 새 성전의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됩니다(딤전3:15).
평화의 왕이 거하실 평화의 전입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은총(구원)을 입은 사람들에게 이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크고 귀한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잘 다듬어진 돌들이 되어 함께 신령한 성전이 되어 가는 축복을 입기를 축원합니다(엡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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