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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룻의 효성 (룻 0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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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온 교회가 부모님주일로 지킵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이라도 부모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있겠스리오만은 특별히 하루를 정해서 부모님을 생각하고,그 은혜를 기억하고,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효도를 권장하며 가르치기 위해서 이와같이 특별한 날을 정한 줄로 압니다.
우리가 다 아시다시피 지금으로 부터 96년전에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에서 부터 시작된것입니다.
그 교회 어떤 처녀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다 못하여 어머니의 순결과 희생과 인내를 상징하는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앞에서 기억했다는 사실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어머니주일로 지켜오다가 우리 나라에서만 십여년전 부터 아버지까지 포함해서 어버이주일로 지키게 된것입니다.
종교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경험의 기초가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지구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가깝게 보여주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친구의 사랑도 아니고,부부의 사랑도 아니고,바로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그 이유는 거의 무조건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랑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이제 남은 것은 얽굴에 많은 주름살이요,가슴에는 상처와 몸에는 질병밖에 남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님의 낙이라고는 자녀들이 잘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같습니다.
어머니의 노래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언제나 바라봐도 늘 보고싶은 분,
기쁠때 슬플때 늘 보고싶은 분,모든 것 주시고도 더 주시려는 분,어머니 한 분외에 또 어디있으랴’ 이렇게 부모님은 언제나 바라봐도 늘 보고싶은 분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어제나 이 땅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계실때 효성을 다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시어머니 나오미와 그의 자부 룻과의 대화내용입니다.
나오미는 일찌기 남편을 여이고 두 아들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두 아들이 성장하여 결혼하여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하나의 이름은 룻입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십년즘 지나서 남편둘이 다 죽고 과부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두 자부를 불러놓고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기를 원하노라’하고 그들에게 입을 마추며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때 자부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말합니다. ‘아니니이다,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시어머니가 말하기를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어서 남편을 두지 못할찌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밤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고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두 자부가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소리를 높여 다시 울기시작합니다. 얼마있다가 할 수 없이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을 마추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룻’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오미가 또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룻은 시어머니를 향해서 하는 말은 너무도 감동적입니다.
16-18절 까지입니다. 거기에 보면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감동적이고 효성심이 넘치는 대화는 어머니와 친 딸과의 대화도 아니요,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화입니다. 남편도 죽었고,자녀도 없으니 사실 시어머니와 자부는 남남입니다. 피한방울 물한방울 섞기지도 않은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아니하고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효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룻도 훌륭하지만 시어머니 나오미도 며느리에대한 사랑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요새보면 늙으신 부모님들이 올데 갈데 없이 헤메이다가 지쳐 쓰러져 있는 분들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자식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식이 많을 수록 어려움을 당하는 부모들이 있다고 합니다. 짐짝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멸려서 다닙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서 고생하고,늙고,병든 부모를 이렇게 푸대접을 한다면 그 화가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효도는 하나님이 명하신 인간에 대한 첫계명이요,자식의 마땅한 도리요,축복의 약속있는 계명입니다. 그 축복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입니다. 그렇습니다. 효도하는 자에게 축복이 큰 것처럼 불효하는 자에게 저주도 클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한 것처럼 후에 우리가 늙었을 때 자식들로 부터 그대로 받을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 효도의 씨,축복의 씨를 많이 뿌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에 보면 피도 물도 섞기지 않은 며느리로써 남편을 잃었으니 시어머니를 떠나도 누가 나무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를 평생모시고 극진한 효성으로 봉양했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는 눈의 가시와 같습니다. 그리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는 발의 티눈과 같습니다. 그래서 떨어져 살자니 형편은 되지않고 같이 살자니 불편하고 고통스럽고.....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관계는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관계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충신제일교회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관계가 이렇게 사랑스럽고 복된 관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오미와 룻이 별다른 사람이라 그런 것이 아닌줄로 압니다. 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관계가 어째서 이렇게도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1.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16절 하반절에 보면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오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처럼 룻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는 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보인는 부모님을 사랑하지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시어머니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공경하나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딤전5:8절에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 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친족들에게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사실 올바른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며 친족에게나 성도들에게 덕을 세우는 사람은 틀림없이 신앙이 바로된 사람이요,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잘 섬기는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의 아름다운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2.한 지체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16절에 보면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아들이 나의 남편이요,어머니의 사랑이 나의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요,어머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개인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자기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핵가족중심으로 삽니다. 그래서 자기자식밖에 모릅니다. 부모나 어른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인간타락과 죄의 결과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는 부모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더욱더 불행의 심연으로 몰아넣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부모님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요,부모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요,부모님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가정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입니다. 교회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는 한 지체의식,공동체 의식을 잊어서는 않됩니다.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고 살 때에 온갖 불행과 고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고전12:25-27잘에 보면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각 부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한 지체입니다. 사랑과 행복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체의식을 갖지 못하고 나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에게는 어제나 불행의 어두운 그림자만이 찾아들것입니다. 그러나 지체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위할 때에 거기에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3.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룻은 남편을 사랑하였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시어머니에 대한 효심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내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서 길러주신 시부모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처가집 말뚝에 대고 절한다’는 말이 있지않습니까 아내를 낳아 길러주시고,남편을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을 잘 섬기지 못한다면 솔지기 말해서 남편에 대한 사랑,아내에 대한 사랑 그거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친구의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그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을 또한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친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친구의 식들이나 친구가 좋와하는 분들을 싫어한다면 친구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종들이나 성도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솔직이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고 말하 수 없는 것입니다.
요일4:20-21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형제를 사랑할찌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를 낳아 길러주시고 아들과 딸을 사랑하시는 부모님을 사랑하며 효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지금은 어떠합니까 효성을 다하고 있는 편입니까 그렇치 못한 편입니까
여기에는 어떤 핑게나 구실을 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느냐,사랑하지 않느냐 두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래로 부모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자녀들이 이 본을 본받아 룻과 같이 자자손손 창대하고 번성하며,자자손손 효자,효녀,효부들이 계대하는 복된 가정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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