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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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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교회역사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이전의 예루살렘과 성전은 오늘의 참된 교회를 설명해주기 위한 예표,곧 ‘Prototype’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는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입니다.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시작되고,성령의 능력으로 교회의 역사와 참된 교회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며, 성령을 어떻게 받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성령의 사건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데서 부터 성령은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깨닫는 기독교의 교리는 철학이 아니요 지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하며, 성령으로 하나될 때에 성도는 진정한 성도가 되며, 교회는 진성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천국의 모형으로써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간혹 보면 밤낮 성경책을 붙들고 앉아서 성경공부 한다고 하면서도 말만 많이 늘어놓을 뿐, 조금도 변화된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산기도, 금식기도 도맡아 하는 것처럼 떠들석 하지만은 말이나 행동은 여전합니다.
성령없는 성경공부, 성령없는 산기도는 사람을 못쓰게 만들 뿐입니다.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악령의 미혹을 받아 멸망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성령이 반드시 함께 하여야 합니다. 지식에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철학에 불과 합니다. 추상적 이론에 불과 합니다. 그리고 열심에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신비주의나 이단 사설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이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도대체 무슨 능력입니까 죄를 이기는 능력이요, 사망을 이기는 능력이요,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기는 능력이요, 복음을 전파하는 능력이요, 봉사하는 능력이요, 원수까지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성령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를 고용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를 의의병기로 사용하셔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사도행전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사람을 붙들어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여러 곳에서 이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성령님께 이끌려 가고, 이끌려 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여십니다.
성령님께서 마음문을 여시지 않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마음문을 여심으로 생전 처음 만난 사람에게 딱 한마디 복음을 전했을 뿐인데, 그가 예수를 영접합니다. 바로 그곳에 교회가 섭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사람, 인간의 언어, 인간의 문화까지 다 사용하십니다.
깊히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간혹 내가 성령을 받아서 내 마음대로 역사는 줄로 착각합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성령니께서 도와 주셔서 하는 줄로 생각합니다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의 주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니께서 나를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대단히 깊은 진리입니다.
지금 이 시간도 우리는 성령니께 이끌리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은혜적인 것과 은사적인 것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주로 후자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교회도 성령의 은사를 받을 때에 교회가 능력있는 교회되며, 성도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1.기다리는 자에게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명령과 더불어 약속을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 다음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약속이 따릅니다. 그 약속은 순종하는 자에게 놀라운 은혜와 복이됩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본문에 나타난 명령을 보십시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성령을 기다리라’
두가지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예수님의 대부분의 제자들은 고향이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더구나 예루살렘에서 그의 사랑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핍박과 위험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누가 머물고 싶겠습니까 하루도 머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무슨 뜻입니까 한번 고향을 떠났으면 뒤돌아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후로는 세계를 향하여 땅끝까지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변치아니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은혜를 주십니다. 한번 시작한 것은 끝을 보기 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무슨 일에 있어서 든지 이럴까 저럴까 하는 정함이 없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시작 하였으면 끝을 보기 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아런 자를 주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그동안은 육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제 부터는 영으로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망스러운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기다림,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떠나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바로 믿음의 순종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는 거기 머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머문다고 하는 것은 환나과 핍박과 죽음을 자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믿음과 순종은 동시적인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진정한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행함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야고보서에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에 대한 행함과 순종이 없다면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단지 형식적이고, 지식적이고, 감정적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귀도 그런 믿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런것을 보고 세상적이요, 마귀적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믿음을 행함과 순종의 삶으로 믿음의 증거를 보이라고 요구하십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만득자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을 하셨고, 그 명령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순종하였습니다.
어떻게 믿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려주실 줄 믿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약속하신 복을 주신것입다. 예수 믿을려면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떠나지 말라’든지 ‘기다리라’든지 ‘이삭을 드리라’든지 무엇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바로 믿음과 순종의 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이있을때 순종이 있고, 순종이 있을때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나혼인 잔치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이든 그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 한 마리도 잡지못하고 있을때 예수님께서 그물을 깊은데로 가서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는자에게는 주님이 능력과 복으로 함께하십니다.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십니다.
눅24:49절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까지는 떠나지 말라, 성령의 지시를 받기전에는 예루살렘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나에게 임하셔서 말씀시기까지는 아무일도 경망되이 결정하지 말것입니다.
여러분,어떤 문제이든지 당장에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성령님을 생각할 것입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때까지는 아무 판단도 하지말고, 어디 갈 생각도 하지 말고, 그자리에 그대로 머무르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에 비로처 그리스도인이 되고, 증인이되고, 능력있는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함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2.사모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은 막연히, 할 수 없이, 억지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의 필요성과 그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하고, 무능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후에 낭패와 실망에 빠졌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능하고, 연약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모든 일이 주님의 말씀되로 성취된 사실앞에 자신들의 무능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아니하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죽는 한이 있을찌라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순종하였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약속하신 성령 받기를 사모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의 필요성을 중심으로 깨닫고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눅11:9-13절에 보면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일찌기 스가랴 선지자는 스4:6절에서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떠나지 아니합니다. 중단하지 아니합니다. 끝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중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그것이 바로 간절한 기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아무리 하나님의 은혜의 중요성을 안다고 하며, 사모한다고 할 찌라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아무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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