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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0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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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강림주일로 지킵니다. 기독교 역사상 성령강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에 육신을 입으시고 오신 날입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절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을 통해서 구속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성도의 사명과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서령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시고 오셨지만 성령님은 영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구속받은 성도들이 이 험한 세상과 죄악과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천국에 이르도록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보혜사로 오셨습니다.
‘보혜사’라고 하는 것은 우리 옆에 항상 계셔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진리를 깨닫에 하시며,그래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게 하시며,힘과 능력을 주시어 자신과 죄악의 세력을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하셔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위하여 전도하며,봉사하며,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며,우리로하여금 범죄하지 않도록 잘못할 때에는 책망하시고 의의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피곤하고 외로울 때에 새힘과 능력을 주시며,위로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고마우신 분이시지만 성령님도 얼마나 고마우신 분이신지 말로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 12제자들이 항상 예수님과 함께 동행한 것처럼 이제는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고 살 수 있으며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충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충만’이란 무엇을 가득채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성령을 어떤 물질적 존재처럼 생각하기 쉬운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성령님의 온전한 다스림과 인도하심을 받는 다는 의미가 더 큰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아니계신 곳이 없으시지만,우리의 육에 속한 생각들이 머리를 들수 없도록 성령의 다스림을 온전히 받는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운데 또 한가지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게 하셨고 진리안에서 교회를 하나되게 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능력있게 이루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행1: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나라”고 하셨습니다.
요엘서2:28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남종과 여종,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교회의 한 지체인 성도라면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고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충만은 받아도 좋고 않받아도 좋은 것이 아니라 성도이면 누구든지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성령충만을 받아야 할 이유입니다.
15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성도로써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옳바로 알지 못하고는 옳바로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옳바로 깨닫지 못합니다. 성령의 온전한 조명과 인도를 거스리는 내 생각이 아직도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비추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세상과 타협점을 찾으려는 자세에서 성경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따르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미명아래서 자신의 생각이나 철학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신학자들로부터 사신신학이 나오고,자유주의 신학이 나오며,민중신학과 혼합주의 신학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단과 사교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세상적으로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법과 질서를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의 유익된 존재가 아니라 거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은 가만히 있기나 하지만 섯불리 아는 사람은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성직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말고 싶으면 그만두는 식으로 신앙생할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어린아이 같은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교회에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나오고 싶지 않으면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자기 중심의 신앙생활입니다. 여기서 탈피하지 못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써 보람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이면 반드시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알면서도 행치못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은 성령충만하였을 때 성령의 가르쳐주심과 조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옳바로 배우고 깨달았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 우리 자신을 잘 관리하지 못하여 성령충만을 쏟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후부터는 신앙생활에 힘을 잃게 되고,신앙생활 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마음에 평안도 없고,오히려 갈등과 고통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기쁨가 감사가 넘쳤는데,지금은 원망과 불평으로 마음의 평안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령충만함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15절 하반절 부터 17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였습다. 때가 악하기 때문에 성들이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서 악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약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생을 가리켜 겨와 같다고 하였고(시1:4),안개와 같다고 하였고(약4:14),또한 삼오래기 같다고 하였습니다.(사1:31)
그리고 연기와 같다고 하였습니다.(시102:3) 또한 질그릇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죄에 사로잡히면 죄의 종이되고 성령의 사로잡히면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술취하면 주정뱅이가 되지만 성령에 취하면 성령충만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사탄이 사람보다 얼마나 간교하고 능력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대로는 사탄의 간교를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악의 세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찌리도 술취하면 제정신을 잃고 술이 하자는 대로 합니다. 그래서 타락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합니다. 나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동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복된 뜻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8절에 보면 “술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2.성령충만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첫째는 술취한 사람처럼 방탕한 생활을 하지않습니다.
규율없고 무질서하지 않습니다. 미친사람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생활이 깨끗하고,단정하고,직무에 충성하면서 선을 행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일곱집사님들은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사람들을 집사의 직무를 맡아 봉사하도록하였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맡은 책임에 충실하였을 뿐만아니라 주의 일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일하였습니다.
딤전3:8절이하에 보면 성령충만한 교회의 일군들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정하고 모든 일에 충성된자라고 하였습니다.
갈5:22절에 보면 성령으로 충만하자의 열매를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법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미워하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어두어졌던 얽굴이 희락과 기쁨으로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여 사람들을 이간하며,사람들의 마음을 나누어놓던 자가 변하여 화평케하며 하나되게 하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렵고 불평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끝까지 충성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앞에 인정받고 모든 성도들에게 존경받는 일군이 되기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는 기쁨과 감사와 찬송의 생활이 넘치는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렀습니다. 성도들의 찬송하는 것을 보아서 성령의 충만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고,못 부르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목청이 좋던 나쁘던 상관이 없습니다. 찬송은 목청으로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영감이 있는 찬송입니다. 우리의 영혼속에서 우러나오는 뜨겁고 힘있는 찬송입니다.
이러한 찬송이야 말로 자신과 듣는 자들에게 은혜가 됩니다. 힘이 됩니다. 기쁨이 됩니다.
옥중에 갇힌 바울과 실라의 찬송은 보통 부르는 찬송이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부르는 찬송이었습니다. 영감의 찬송이 어둡고 캄캄한 옥에 차고 넘칠 때에 옥터가 흔들리며 쇄사슬이 풀리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뿐만아니라 그 찬송을 듣고 그 놀라운 광경을 본 간수가 은혜를 받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성도가 성령충만하게 되면 기쁘과 능력있는 찬송의 생활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말하 것도 없거니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며 감화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됩니다.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능력있는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째는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이룹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서로 화답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찬송의 아름다운 하모니는 기술적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정말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찬송은 성도의 마음과 뜻이 하나된 가운데 우러나오는 찬송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성도들은 주안에서,진리안에서 하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도들이 서로 화답하며 부르는 찬송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시133:1-3절에 보면 성도들의 하나된 모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찬송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성도들의 모든 삶이 아름답고 은혜롭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 성령으로 하나가 됩니다. 하나된 성도들의 찬송은 아름답습니다. 그들의 생활속에는 은혜와 사랑과 기쁨이 넘칩니다. 뿐만아니라 이가운데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네째는 범사에 항상 감사의 생활이 넘칩니다.
20절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심령이 병들기 쉬운 것입니다. 심령이 병이 들면 구원의 기쁨을 상실하게 돕니다. 그리고 매사에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사에 짜증과 원망과 불평이 생기게 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심령이 병들어가도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은 자기에게 유익한 일에만 좋아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불리한 일이 생길 때에는 낙심하거나 좌절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성도는 모든일에 그리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는 겸손과 순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1잘에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피차에 복종한다’고 하였습니다.
믿음과 겸손과 순종은 동시적인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참된 믿음의 사람은 성령충만하여 겸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며 다른 사람을 높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무두가 이번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의 충만한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서로가 그리스도의 사랑가운데서 피차에 복종하며 존경하여 화평을 이루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충신제일교회야 말로 은혜와 진리와 사랑이 충만하며 날로 부흥하고 성장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넉넉히 그리고 즐겁게 감당할 수 있는 복된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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