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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된 선택 (행 27: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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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무어는 '인생의 어려움은 선택'이라고 말했고, 섹스피어는 '사람은 동시에 여기도 있고, 지기도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들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모든 인간은 둘 중의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돼는 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이런 선택의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살아가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관계에 있어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학교와 직장이 그러하며 결혼에 있어서도 배우자의 선택이 그러합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생의 결말이 극한 차이를 갖게 된 원인은 그들의 선택 과정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신앙의 열의는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고향 친척집을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가나안 땅으로 가려는 인생의 목표도 같았을 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의 성호와 영광을 찬양하는 믿음의 지속성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방법에 있어서는 선택이 달랐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은 했지만, 눈으로 보기에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급과 같아 보이는 소돔을 선택한 롯은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고 두 딸이 파멸하는 결말을 맛보아야 했고, 비록 척박하고 덩그러니 동산 하나만 있는 허허벌판의 헤브론이었을지라도 여기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라고 믿고 선택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행복과 삶에서의 승리, 그리고 인생의 미래에 대한 꿈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결정 지워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죄인의 누명을 쓰고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기 위하여 백부 장의 인솔로 로마를 향해 가던 중 지중해를 건너다가 '유라굴라'로 광풍을 만나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의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나 한사람의 그릇된 선택은 나의 삶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정과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백부 장 한 사람의 그릇된 선택은 같은 배를 탄 276명에게 보름 동안 극심한 좌절과 절망의 괴로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천 여년이 흐른 오늘에까지도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행복과 꿈이 깨지고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인생의 행복과 꿈을 얻기 위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학교를 선택하고 결혼의 대상자를 선택하는 데에는 대단히 신중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많은 종교 가운데 내가 어느 종교를 선택해야 하는가' 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선택은 없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특징은 너무 쉽게 결정해서, 쉽게 선택하고, 쉽게 포기하며, 쉽게 실패하는 것입니다. 길을 선택해야 하는데 현대인들은 너무 자신만만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말씀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그릇된 풍조와 그릇된 선택 때문에 고통과 신음이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은 학업의 진로, 결혼, 사업, 그리고 신앙에 있어서 올바른 선택의 기준을 갖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전해 드릴 말씀의 제목을 가지고 백부 장의 그릇된 선택 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신앙보다는 지식을 선택하려는 풍조가 이 시대에 가득합니다.
11절에 보면 백부 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 사도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하였습니다. 선장은 바다의 항해에 있어서 만은 남보다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선장은 바다에 대해서는 전문인이었습니다. 백부 장이 바울 사도의 말보다 선장의 말을 더 믿었다는 것은 신앙보다 지식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풍조를 대변하는 말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하나님보다 성경 말씀보다 인간의 지식을 앞세우는 시대가 되지 않았습니까 본문 10절에 보면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고 바울 사도가 백부 장을 권면 하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 내가 보니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 보면 바다의 항해 경험이 많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니까 이런 때는 이런 일이 반드시 생기더라는 확신에 찬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영감에 의해서도 이번에 가면 안되겠다는 그런 확신이 바울 사도에게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바울 사도의 권면을 뒤로하고 확실치도 않은 세상 인간의 경험과 유한한 바다의 지식을 가진 선장의 말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지식을 앞세우는 세상 풍조를 단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이란 시대와 환경과 대상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내세우는 진리는 한 시대가 지나가면 이미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세상이 변할지라도, 역사가 흥하고 망할지라도 변치 않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신앙과 말씀과 하나님을 선택하고 나갈 것이냐, 아니면 세상의 유한한 지식, 전문 지식과 같은 것들을 택하여 세상 지식이 요구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갈 것이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둘째, 신앙보다 물질을 선택하는 풍조가 현대에 너무도 팽배합니다.
백부 장이 바울 사도의 말보다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고 했습니다. 선주가 누구입니까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많은 돈을 들여 배를 만들고 선장과 사공들을 고용하여 바다를 건너는 화물선과 여객선의 주인이 선주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보다 신앙보다 불변하는 말씀보다 물질을 앞세우는 현대의 풍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도 욕심 때문에 금과 털옷을 숨겼던 아간에게는 물질이 그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랬고 가롯 유다가 그랬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유명한 허스트 성이 있습니다. 34개 이상의 신문을 발행하는 언론 재벌인 허스트 가의 신문사 사장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150만평의 대지 위에 무려 28년이나 걸려서 호화롭고 웅장한 별장을 지었습니다. 그 속에는 극장, 수영장, 사우나탕, 카지노 등과 미술품, 조각품, 별별 예술품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집을 지어 놓은 허스트 씨는 그 별장에서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죽었고, 죽을 때에 너무나 엄청난 세금 때문에 그 성과 모든 재산을 나라에 바쳤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유명한 관광 코스의 하나로 공개되고 있는데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쉬지 않고 돌아다녀야 대충 훑어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의 행복은 물질로 그 척도를 가름할 수 없습니다. 물질은 여러분의 생을 윤택하게는 할 수 있어도 행복에 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셋째, 소수보다 다수의 힘을 선택하고 신뢰하는 것이 현대의 풍조입니다.
백부 장에게 이번 항해의 어려움과 불가함을 말하는 사람은 바울 사도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백부 장이 한 사람의 말을 듣겠습니까 아니면 다수의 말을 듣겠습니까 결국 소수를 버리고 다수를 택했다가 '유라굴라' 광풍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진리란 언제나 다수의 편에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빌라도의 오판이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것을 자신도 인정을 하면서도 소수의 말을 듣지 않고 다수의 말을 들었다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소수냐 다수냐를 따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급적이면 소수보다 다수가 났지만, 그 다수가 비 진리일 경우에는 다수를 버리고 소수인 하나님 앞에서야 합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이 다수의 힘을 의지하고 다수의 의견만이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인본주의 자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느냐 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은 현대인은 다수의 편에 서기를 즐겨 합니다.
넷째, 이상보다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불편하다 하여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이상이 없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좀 더 쾌락적으로, 좀더 세상적으로 남보다 뛰어나게, 그리고 좀 더 잘 살아 볼까 하는 현실에 치중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천국에의 소망에는 관심이 없고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어지는 믿되 세상에서 복 받아 잘사는 현세 기복 주의 신앙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지난날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했었은가를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내가 바르게 하나님을 믿었는가. 내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 섬길 자를 오늘 날 택하라 나와 우리 가정은 하나님을 믿겠다 너희는 우성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 고 했습니다.
백부 장과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인 것을 선택하다가 파선하는 그 시간에도 바울 사도만은 하나님의 편이었습니다.
23절에 보면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속한 바 나의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 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위기에서도 역경에서도, 그리고 순탄한 길에서도 그의 선택은 항상 하나님이었고, 하나님이 삶의 근본 기준이었습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보면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 하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은 인생의 파고가 밀려와도 요동하지 않고 삽니다. 바로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의 장중에 우리를 품어서 지켜 주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십시오. 하나님을 선택하여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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