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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하게 하는 교육 (딤후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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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말씀을 읽으며 저는 사도 바울이 오늘날 우리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어쩌면 이렇게 생생하게 예언해 놓았을까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2절에 보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했습니다. 정말 자기애, 자기중심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는 갈수록 깊어지는 오늘날의 가장 큰 병인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돈을 사랑하며 했는데, 황금우상주의야말로 현대의 가장 무서운 병이 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돈만 가지면 못할 것이 거의 없고, 그래서 돈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어진 그런 세상입니다.
또 2절에서는 자랑하며 교만하며 했고 4절에서도 자만하며 라고 했는데 정말 요즈음 사람들은 겸손을 덕으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자기선전 잘하는 것이 유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공주병이니 왕자병이니 하는 말들이 흔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2절에서 비방하며 한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말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한 것은 불경스러운 것을 의미하는데 이 또한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에게 도전하며 하나님을 부인하려는 오늘날 세상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또 감사하지 아니하며 했고 4절에서는 배신하며 라고 했는데 이는 교만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는 당연한 결과로 언제든지 나타나는 것입니다. 3절에서 무정하며 한 것은 사랑이 없음을 말하고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한 것은 용서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데 사랑이 없는 곳에 용서가 없음은 당연한 것으로 이 모든 것 또한 날로 각박해져 가는 오늘의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또 모함하며 했는데 저는 정말 오늘날 같이 모함이 판치는 때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근거도 없고 악의적인 말을 일단 퍼뜨리고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현상은 정치권에서부터 젊은 아이들에게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요즈음 인터넷 사용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그 게시판이라 하는 것에다 글 올리는 것 보면 정말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당한 사람에게는 나중에 아무리 해명이 되어도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는 말들을 아무런 책임감이나 가책 없이 마구 내뱉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에 계속 보면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했고 4절에서는 조급하며 했는데 이 또한 오늘날, 특히 한국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조금 참고 기다릴 줄을 모릅니다. 한국사람들은 얼마나 성질들이 급한지 빨리빨리라는 말은 이제 세계적으로 통하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통제를 잘 못합니다. 그러면 사납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차 운전하고 가다가 조금만 신경 건드리거나 서로 상대편의 양보

를 강요하다가 수틀리면 차 세우고 뛰쳐내려 멱살 쥐고 싸우는 모습은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요새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나운지 웬만큼 힘세고 싸움 잘 할 줄 모르면 남 싸우는 것 말릴 엄두도 못냅니다.
3절 끝에 보면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했습니다. 악과 불법불의가 너무 성행하다 보니까 이젠 법대로 바르게 하는 사람들이 바보 취급당하는 세상입니다. 가끔 희생적으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칭찬은 하면서도 막상 자기보고 하라면 자기는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요즈음 젊은 아이들 사이에서 모범생을 줄여서 범생이라고 부르는데 가만 들으니 그 말이 좋은 의미보다는 비아냥거리고 놀리는 말로 주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일곱 식구 살기에는 너무 비좁고 제 서재가 없습니다. 3년 전 제가 수술을 받고 나니까 조용히 휴식과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신 분이 계셔서 집 근처에 16평 짜리 작은 서민 아파트 한 채를 전세로 얻어서 제 서재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그 집주인이 갑자기 자기들이 들어와 살아야겠다고 집을 비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아무리 찾아봐야 그 주위에 전세 나온 집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저희 집을 은행에 저당 잡히고 또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고 해서 억지로 같은 16평짜리 서민아파트 하나를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16평짜리 서민아파트 치고는 비싼 1억3천2백만원에 샀습니다. 그런데 복덕방에서 취득세를 계산하는데 8천몇백만원에 산 것으로 계산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억3천2백만원에 사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그렇게 신고하면 취득세가 몇백만원 나온다고 하며 부담 안 가게 100만원 이하로 취득세가 나오도록 알아

서 해드리는 것이라면서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 없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뭐가 법대로 하는 것이냐고 했더니 법대로라면 실제 매매가대로 하는 것이라는 말하기에 그렇다면 실제 매매가로 신고하라고 했더니 별 사람 다 보겠다는 식으로 어이없어 하며 절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할 수 없는 듯 8천몇백만원에 산 것으로 계산해서 미리 준비했던 서류를 다 찢어버리고는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2백6십만원쯤 취득세를 냈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이 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자기가 지금까지 부동산거래 취급을 하면서 이번 같이 실제 매매가대로 계산해서 취득세를 내겠다고 한 사람은 5년전 어느 여선생님 한 분 계시고는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바르게 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세상이되었고 그래서 바르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4절 하반절에서는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인간의 가장 적나나한 모습 같습니다. 온통 사회가 쾌락추구에 혈안이 된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나라 경제가 위태롭다고 해도 쾌락산업만큼은 호황을 누리는 것 같습니다. 학교 앞이건 주택가이건 할 것 없이 퇴폐향락업체들이 밀고 들어옵니다. 별 희한한 형태로 쾌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버젓이 그들의 행태를 공개하고는 솔직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영웅시됩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가장 호황을 누리는 것이 성산업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한 때 시들해 가던 이 성산업이 인터넷 때문에 되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돈 벌기에 혈안이 된 이 사람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무차별 판촉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클 몇 번 하면 음난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컴퓨터에서 음난물 쏟아져 나오게 하는 기술은 어른들보다 어린 학생들이 더 잘 압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자녀들은 극심한 음난문화에 적나나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컴퓨터를 집에서 다 없앨 수도 없습니다. 집에서 안되면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더 안심을 할 수 없습니다. 음난문화와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거기에 접하게 되드라도 그 저질문화에 탐닉해 빠지지 않도록 저항력을 길러주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본문 마지막 절은 더 심각한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켜줍니다. 즉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 아닌 예수 믿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요즈음 하는 말로 무늬는 교인인데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을 부인한다는 것은 변화의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믿음이란 삶의 변화입니다. 삶의 의미가 변하고 삶의 목표가 바뀌며 삶의 방식도 달라지고 인격과 사고와 행동양식과 인간관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날 교회에 나아와 예배 한 시간 드리는 것 외에는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게 바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날로 더욱 부패하고 괴악망칙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마저 이 세상사람들과 다를 것 없어진다면, 그것은 정말 큰 문제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마지막 절은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와 쾌락주의와 불신풍조와 배신과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는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돌아서야 하겠지만 특히 우리의 자녀들을 돌아서게 해야합니다. 악하고 부패한 세상, 그러면서도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의 힘을 지닌 이 세상에서 살면서도 이 세상으로부터 돌아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육입니다. 그 교육을 교회가 해야합니다. 즉 교회교육입니다. 저는 교육학자가 아니고 교육학과 그 이론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 교육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육은 학습자에게서 바람직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자녀들에게서 바래야하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어떤 것입니까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입니까 종교개혁자들은 그 핵심이 의와 지식과 거룩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근거한 성경말씀은 엡4:21-24이었습니다. 한 번 읽습니다: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

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을 따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라는 뜻이며, 새 사람이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변화된 새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이 의와 지식과 거룩함을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적 내용으로서 이해하는 근거로 삼았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라는 말씀에서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은 달리 번역하면 진리로부터 오는 의와 거룩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된 의와 거룩함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소유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또 진리를 바로 알고 진정으로 소유한 사람은 반드시 의와 거룩함에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는 누구 안에 있으며 누구에 의해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하고 그를 소유하게 하는 것이 교회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표현을 달리해서 말하자면 하나님나라 삶의 능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주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나라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 사이의 관계, 창조세계와의 관계라는 3중의 관계를 바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3중의 관계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모두 깨어졌던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모두 우리에게 회복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나라 삶의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어디에서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경에서 알 수 있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은 일차적으로 성경을 잘 가르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른 교회교육은 바른 성경교육 위에 서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교육이 단순히 성경지식을 많이 주입시키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그저 한 권의 책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해주시는 이,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해주시는 이는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교육은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믿음 안에서 자라게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녀들에게서 바래야할 것을, 또 달리 말하자면, 무엇입니까 뭐니뭐니 해도 구원받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구원에 이르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딤후3:15은 말합니다: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녀들에게서 바래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온전한 사람이 되고 두루 선을 행하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온갖 정성과 기도와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런 바른 교육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딤후3:16-17은 계속하여 말합니다: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을 바르게 교육하고 온전한 사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반학교의 교육은 이미 교육을 포기한 것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서글픈 상태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교육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교회교육만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이 사회를 살 가치가 있는 사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 가운데도 보면 자녀들에게 고3이니까 1년간은 교회는 나가지 말라고 하는 부모가 적지 아니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부모가 한 사람도 없기 바랍니다. 고3일수록 교회교육은 더 중요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의 교육은 철저하게 성경을 잘 가르치는 교육이 되게 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며 하나님나라의 자녀답게 사는 것을 가르쳐야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아이들에게 세상의 물결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좇는 삶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도록 해야하겠습니다. 먼저는 교역자들과 교회학교 교육을 맡은 지도자들이 이러한 교육목표를 확고히 해야겠지만, 이 일은 사실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교육은 곧 미래입니다. 교회교육은 곧 교회의 미래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미래를 위한 이 바른 교회교육에 우리는 얼마나 관심과 열성을 기울였는지 자문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자녀들을 좋은 학교 보내려고 과외공부 시키고 집안에서 좋은 학습환경 만들어 주는 데에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은데 비해 부끄럽지 않게 우리는 과연 우리 자녀들의 교회교육에 충분히 투자했는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교육공간만 해도 그렇습니다. 교육이 행해지는 장소는 단순히 하나의 장소가 아닙니다. 거기는 교육에 대한 관심과 교육의 철학과 정신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교육공간 그 자체가 이미 교육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학교의 공간은 어떤 교육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저는 새문안교회의 교육공간은 그 자체가 이상적인 교회학교교육의 모델을 한국교회를 향하여, 아니 세계교회를 향하여 제시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갈 교육공간은 먼 훗날, 한 세기가 바뀔 그 날에도 우리 후손들에게 위대한 교육정신을 보여줄 불멸의 모델로 회자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교육공간에서부터 교육시설, 교육내용, 그리고 교육자의 양성에 이르기까지 일대변화를 시도해야하며 그 일에 우리의 최대한의 역량을 기울여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우리 교회의 미래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의 경험과 지혜를 모아 이상적인 교회학교교육을 실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어느 교회보다도 교육에 종사하는 인적자원이 풍부한 우리 교회에서 하지 못하면 그 어디에서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교회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가장 큰 힘과 격려가 되는 것은 우리 교인들부터 자녀들을 우리 교회의 교회교육에 맡기는 것입니다. 아직도 자녀들을 다른 교회에 보내는 부모님들이 계시면 속히 우리 교회학교에 보내시기 바랍니다. 제 자식들이 다니는 교회학교래야 관심도 더 가고 책임의식도 더 커질 것이 아닙니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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