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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 살아야 합니다 (빌 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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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신명기를 가리켜 모세의 설 교집이라고 합니다.
그의 설교 가운데는 이스라엘 민 족이 어떻게 애굽왕 바로에게서 해 방되어 출애굽하게 되었는지 그 사 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피 를 타고 난 사람이면서도 애굽왕 바 로의 궁전에서 공주의 아들로 자랐 습니다. 그는 궁중에서 호의호식하 면서 애굽의 문화를 습득했고 애굽 의 상류층 사람들과 교제하며 지냈 습니다. 바로왕에게 아들이 없었고 공주에게도 양자로 삼은 모세밖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유망주 였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는 40살 났을 때 그의 사명감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되 었습니다. 바로의 궁중에서 편히 지 낼것이냐 아니면 노예생활하고 있 는 자기 민족을 건지는 수고를 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 때문에 고민하 다가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 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 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 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 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했 습니다.
그렇게해서 모세는 이스라엘 민 족을 위해 나섰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을 지내는 동안 시내산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계약이 무엇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면 서 모세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근 거하여 그 영광스러운 미래에 참여 하려면 이스라엘 민족이 반드시 하 여야 할 일이 무엇임을 제시하여 주 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 억하라고 하십니다. 변함없는 충성 과 성실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 라고 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준비하여 두신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 성실하기만 하면 신명기 26장 19절에 하신 말씀대로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 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위에 뛰 어 나게 하실것이요
반면에 하나님 에게서 돌아서서 불순종하고 배반하 면
여호와께서 너로 네 대적앞에서 패하게 하실 것이요, 기근과 악질과 창검에 의해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
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민족 을 모아 놓고 위대한 민족의 영도자 모세는 말합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으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 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 라 하는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 하며 번성 할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고 했습 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향하여 가 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말대 로
우리는 역사에서 도피할 수가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어려운 도전을 가지고 우리에 게 육박해 옵니다. 우리는 이 도전 을 지혜롭고 용감하게 해결해 나가 야만 합니다.
다가오는 미래는 예측불허의 불 확실한 세계입니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 러므로 미래는 하나의 충격이요, 도 전이요, 위기인것입니다. 위기는 위 험과 기회의 두 가지 뜻을 가집니 다. 미래는 예측불허의 큰 위험이지 만 동시에 우리의 지혜와 용기와 믿 음으로 슬기롭게 대처하면 새로운 발전과 성장의 창조적인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는 불안과 동시에 희망입니다. 위험과 동시에 기회요, 도전과 동시에 성취입니다.
문제는 이 위기적인 상황을 극복 하는 우리의 창조적 적응력입니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산다는 것은 환 경에 대한 적응이요, 문제에 대한 해결이요, 시련에 대한 극복이요, 도 전에 대한 응전입니다. 적자는 생존 하고 부적자는 살아 남을 수가 없습 니다. 이것은 동물의 세계에만 적용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과 역사의 세 계에도 적용되는 생존의 법칙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문제를 세 계적인 안목과 국제적 관점에서 생 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가오는 21세기는 소위 지구촌시대이기 때문 입니다. 2천년전에 스토아철학자들 이 구상한 세계시민(Cosmopolitan) 의 관념이 하나의 엄연한 현실로 다 가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가오 는 세대는 우리에게 생각의 혁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는 눈을 근 본적으로 바꾸어야만 합니다. 역사 를 보는 눈, 국가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눈, 미래를 보는 눈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민족이 되어야 합니 까 우리는 어떤 나라를 건설해야 합니까 우리는 인류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세계의 모범 민족이 되어야 하고 또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온 세계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인류 최고의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위대한 한국인이 되어 위대 한 한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땅이 넓다고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돈 이 많다고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전쟁을 잘 한다고 위대한 나라가 아 닙니다. 인구가 많다고 위대한 나라 가 아닙니다. 위대한 국민성을 가진 나라가 참으로 위대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을 위대한 국가로 세워 나가려면 위대한 국민성을 세 워야 합니다. 국민성은 나라의 뿌리 입니다.
위대한 국민성의 건설이 없이는 위대한 나라를 세울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뀝니다. 행 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뀝니다. 습관 이 바뀌면 성격이 바뀝니다. 그러므 로 모든 변혁의 시작은 생각의 변화 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격이란 말을 영어로 Character 라고 하는데 이 말은 헬라어 kharackter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Character는 아로새긴다, 조각한다 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성격은 하 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 다. 행동의 반복으로 우리의 마음과 인격을 서서히 조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상적인 성격은 어떤 것 입니까
사람이 산다는 것은 환경에 적응 하는 것이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요,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요, 목표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투철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왕성 한 창조의식과 확고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어떠한 어려운 상황과 시련 속에서도 적극적인 적응력으로 대철 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가 오는 21세기는 아시아의 세 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5대주 6대양을 활동무대로 삼고 자신감과 생동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위대한 것에 용감 하게 도전하는 적극적 성격의 소유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잘 살 수가 있습니다. 돈 많은 것이 잘 사 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있는게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보람있게 의미 있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이 산다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 나에 게 맡겨진 역할과 책임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실은 인간행동의 제일원리입니 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에 편지하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 를 입으라고 하면서 그 첫째가 진리 의 허리띠를 매라고 했습니다. 성실 성이 없는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 습니다.
우주의 대 질서에는 추호도 거짓 이 없습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되 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되고, 가 을이 지나면 겨울이 옵니다. 춘하추 동의 질서는 조금도 거짓이 없습니 다. 콩심으면 콩이 나고 벼 심으면 벼가 나옵니다. 자연은 사람을 속이 지 않습니다. 우주에는 거짓이 없습 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과 생각과 행동 에는 거짓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문 의 거짓 위(僞)자는 사람인(人)변에 행위 위(爲)자를 썼습니다. 인간의 행위에는 거짓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와 자연의 참 과 성의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길은 무엇입니까
첫째, 성실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물건을 하나 만들어 도 성실한 마음으로 정성껏 만들어 야 그 물건이 제대로 만들어 질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만든 물건이 세계시장에 나가게 되는데 한국에서 만든 것은 세계사람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재간 있는 민족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만 바로 가지면 생각만 바로 해서 성실하게 만들면 세계 어디에 가도 환영받을 우수한 물건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송나라의 거유(巨 ) 사마광(司 馬光)의 제자인 유안세(劉安世)가 그의 스승에게 한자(漢字)가 수만자 있는데 그 중에서 우리의 좌우명으 로 삼을 수 있는 글자 한 자만을 골 라 달라고 부탁했을 때 사마광은 '성(誠)'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성이란 무슨 뜻 입니까 라고 성의 뜻을 물을 때 사 마광은 '불망어'(不忘語)라고 대답했 다고 합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것입 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된 행동 하지 않는 것이 성실의 근본입니다. 성(誠)자는 말씀 언(言)변에 이룰 성(成)자를 쓴 것입니다. 말한 대로 이루는 것이 성입니다.
성실은 모든 것의 시작인 동시에 끝입니다. 그러므로 성실하지 않으 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성실성이 없는 대화, 성실성이 없는 인격, 성실성이 없는 작업, 성실성이 없는 인간관계, 성실성이 없는 생활, 성실성이 없는 행동, 그것은 아무 힘도 없고, 아무 빛도 없고, 아무 성 과도 없습니다.
사람은 정성에 감동하는 동물입 니다. 남을 감동시키려면 지성(至誠) 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지성 앞 에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 다. 사람을 대할 때는 신의(信義)가 있어야 하고 물건을 대할때는 충성 (忠誠)이 있어야 합니다. 신의는 사 람을 속이지 않는 것이요, 약속을 정확히 지키는 것입니다. 충성은 마 음속에 거짓이 없는 것이요, 무슨 일에나 성심 성의껏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잘 사는 첫째 조건입니다.
그리고 둘째 사람이 잘 살려면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 하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왜 사람인(人) 자 다음에 사이간(間)자를 씁니까 간(間)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자지간, 모녀지간, 부부지간, 고부지간, 사제지간, 형제지간, 친구 지간, 동포지간 이처럼 여러 가지 간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을 단순 히 인(人)이라고만 하지 아니하고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근본 을 밝히는 말입니다. 이 간(間)이란 것은 관계를 말하고 사회성을 말하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사회는 인화, 가화, 조화, 화목이 가장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평안이 있어야 하고, 우리 가정에는 가화(家和)가 있어야 하고, 사람 사이에는 인화(人和)가 있어야 하고, 사회에는 평화가 있어야 하고, 모든 존재에는 조화가 있어야 합니 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세계에는 평 화의 질서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이 것은 모든 인류의 이상입니다.
그리고 사람 사이에는 인화(人 和)입니다. 서로가 화목한 인간관계 를 이루어야 합니다. 인화와 협동이 무너지면 세상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개인의 사업도 그렇고, 기 업의 조직도 그렇고, 국가의 경영도 그렇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협동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존 경하기를 먼저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라고 성경 은 말씀했습니다. 서로가 다른 우리 지만 그리스도안에 다 붙어 있습니 다. 조화를 이루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이 화목해야 합 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집단이요, 인생의 안식처요, 도덕의 학교요 성 격형성의 도장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가화만사성' (家和萬事成)이란 말을 썼습니다.
가정이 화목해야 만가지 일이 잘 이루어집니다. 고급저택을 쓰고 사 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서 로 화목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 입니다. 세상에서 가정관리처럼 중 요한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목회에 대한 말을 하면 서 교회의 감독을 세울때에도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 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니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의 기 본 단위인 가정이 붕괴 될 때 건전 한 사회건설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많은 불행과 비극은 가정 의 붕괴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 다. 더구나 우리 마음이 평안해야 합니다. 종교와 미신의 차이가 무엇 입니까 미신은 물질적인 것을 추구 하고, 종교는 마음의 평안을 찾습니 다. 예수님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 지 말라'고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잘 사는 것이 무엇 입니까 밝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밝은 마음, 밝은 눈, 밝은 얼굴, 밝은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 밝은 생활을 하고, 밝은 사회를 만 들고, 밝은 역사, 밝은 세계를 건설 해야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왜 '너 자신을 알 라'고 외쳤습니까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지 혜의 근본입니다. 자기의 분수를 알 고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는 것이 지 혜입니다. 지혜를 역설한 노자(老子) 는 '아는 것을 말하는 자보다 밝게 사는 명(明)이 더 높은 단계라'고 말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 중에 지 인자지 자지자명(知人者知 自知者 明)이란 말을 했습니다. 남을 아는 것은 지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명이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입 니까
공자선생은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 이 정말 아는 것이다' (知之爲知 不 知者不知 是知也)고 말했습니다. 맹 자는 옳고 그른 것을 바로 판단하는 것이 지의 근본이요, 시작이라고 했 습니다. 이 말은 '참과 거짓을 판단 하는 능력이 곧 이성이다'고 말한 데카르트의 말과 같은 뜻입니다. 성 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 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지 식 많은 사람은 많아도 지혜있는 사 람은 드뭅니다.
지혜는 밝은 것이기 때문에 지혜 의 꽃이라고 했고, 깊은 것이기 때 문에 지혜의 바다라고 했고, 날카로 운 것이기 때문에 지혜의 칼이라고 했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혹하 지 않고, 인자한 사람은 근심이 없 고, 용기가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밝게 살아야 만 살 수 있는 세대입니다. 지난날 어둡게 살던데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중에 로마서 13장 11절 이 하의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 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 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 탕과 술취하기 말며 음란과 호색하 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어거스 틴이 이 말씀을 읽을 때 어두운 세 상에 살던 그가 밝은 세상으로 들어 오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 때부터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 옷을 입었습니다. 잘 못 살던 그가 잘 살게 되었습니다. 민족도 평안도 없이 살던 그가 빛 되신 하나님께 돌아와 참 민족과 평안 그리고 기쁨 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잘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광명 정대하게 사는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넷째 용기있 게 살아야 합니다.
용기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 습니다. 용기의 반대는 비겁이요, 소 극적이요, 부정적이고 피동적인 것 을 말합니다. 선을 행해야 하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 문입니다. 용기는 강한 실천력이요, 행동정열입니다. 용기있는 사람만이 고난을 이기고, 시련을 극복하고, 역 경에 도전하고, 신념대로 행동하고, 목표를 달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 다.
용기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 는 육체적 용기요, 다른 하나는 영 적인 용기입니다. 육체적 용기는 몸 의 힘이 센 사람이요, 영적인 용기 는 선과 악을 분별해서 선을 실천하 는 힘입니다.
거인 골리앗과 소년 다윗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불 레셋 대장 골리앗은 육체적인 용기 가 충천해 있었습니다. 자기의 힘으 로 무엇이든지 해내고 누구도 물리 칠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전쟁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 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무기로 말하면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세였지 만 용감하게 골리앗과 대전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그처럼 용기를 가 질 수가 있었습니까 그에게는 하나 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었습 니다. 그러므로 골리앗은 칼과 창 그리고 자기의 육체의 힘을 의지했 지만 다윗은 만군의 하나님을 의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 군 대가 무서워 떠는 적장 골리앗과 용 기있게 대전 할 수 있었습니다. 성 경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두려 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 니라 내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마
하셨습니다. 이 말씀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려움 많은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용기있 게 잘 사시기를 바랍니다.
지난날의 우리는 용기가 부족한 소극적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와 역사에는 위대한 개척 의 장이 없고, 도전의 장이 없고, 전 승의 장이 없습니다. 왜요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용기가 있으면 아무리 부귀로 유 혹을 해도 그 유혹에 빠지지 않고, 가난의 고통으로 괴롭혀도 자기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아무리 권위나 무력으로 위협해도 결코 굴복하지 않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부귀앞 에는 약하고, 비천하면 타락하기 쉽 고, 권력앞에 굴복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것에 빠지거나 굴복하지 않는 것이 용기입니다.
안일한 가운데서는 큰 인물이 나 오지 못합니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훌륭한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습니 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긴장된 역학의 무대입니다. 역사에는 힘의 법칙이 지배합니다. 힘이 있으면 살 고 힘이 없으면 죽습니다. 이 힘이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옵 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습니다.
바울의 간증을 들어보세요.
형 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 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 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 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 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 고 오직 죽은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 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 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 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용기 를 얻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합니다. 답답한 일을 당 해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꺼꾸 러드림을 당해도 다시 일어납니다. 우리가 넘어지나 아주 넘어지지 아 니함은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드 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이 우리를 어떻 게 보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민 족적 신념입니다. 우리는 하면 된다 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새 시대의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고 새 역사의 행동적 주체가 되기 위해 서 용감한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잘 사는 것은 즐겁게 사 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 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기뻐하는 것이 쉬 운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하는데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일은 하되 일을 즐기는 사람은 드뭅니다. 생을 살기는 하지만 생을 즐기는 사 람은 적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긍정의 정신으로 즐길 줄 알아야 합 니다. 우리는 삶의 부정적 자세를 긍정적 자세로 바꾸어야 합니다. 잘 산다는 것은 자기긍정입니다. 긍 정에서 자신감이 생기고 힘이 생깁 니다.
즐겁게 살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자연을 사랑하면 자연을 볼 때 즐겁 습니다. 하는 일을 사랑하면 일을 할 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 다. 사명감과 천직의식을 가지고 애 정과 긍지 그리고 충성심을 가지고 성심성의껏 일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일처럼 소중한 것이 없 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제 태평양의 시대가 개막되고 아세아의 시대가 도래하는 역사의 큰 전환기 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새 역사의 새 주인으로 잘 살아야 합니다. 그 래서 위대한 한국을 건설하고, 위대 한 역사를 창조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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