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나의 믿음을 도우소서 (막 09:14-29)

첨부 1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령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하루에 8시간씩 열심히 일한다고 합시다. 지금 아무 소득이 없어도 꾸준히 일을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업주와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업주와의 약속을 믿지 못한다면 아무도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업주를 믿기 때문에 약속대로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차나 버스를 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산가는 표를 사서 부산이라고 쓰여진 버스를 타면 정한 시간에 틀림없이 부산에 도착한다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 약속을 믿기 때문에 누구든지 버스나 기차를 안심하고 타는 것입니다. 만일 서로 믿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버스라도 타지 않을 것입니다.
교통신호도 그렇고, 나라의 모든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사는 이 세상은 모두가 약속과 믿음의 관계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관계가 파괴된다면 이 사회는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아무도 공존 공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발소에도 마음놓고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따 죽이고 내 귀중품 다 빼앗아 가면 어떡하나’ 음식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약이든 음식이 아닌가, 나를 독살하고 내 금반지, 금시계 털어 가면 어떡하나’ 이렇게 이발사나, 음식점 주인을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이발소도 갈 수 없고, 음식도 사 먹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사업주나, 이발소 주인만큼도 못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은 믿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약속을 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사람은 믿으면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은 믿고, 꼭 믿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믿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어지럽고, 험하고, 불행한 것은 바로 믿음과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불신의 세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상실할 때 사랑은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떠난 곳에는 미음과 시기와 싸움과 다툼과 모든 악함과 불행이 찾아 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이 부모를 믿지 못하고, 부모가 자식을 믿지 못하며 아내가 남편을 믿지 못하고, 남편이 아내를 서로 서로 믿지 못한다면 그 가정은 이미 파괴된 가정이요 불행한 가정입니다. 행복한 가정이야말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서로 믿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바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기만 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많이 있지만 가운데 가장 귀한 약속이 무엇입니까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요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약속입니다.
그 뿐입니까 요일1:9절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도 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함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나의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죄 씻음을 받고,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원한 천국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 가셔서 기도하시던 중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거기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기쁨으로 예수님과 함께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때 산아래 있던 다른 제자들은 큰 무리가 모여 있는 가운데서 서기관들과 변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온 무리가 산에서 내려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제자들에게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슨 변론을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였습니다.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이 아이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새파랗게 죽어 갑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그 귀신을 쫓아 달라고 하였으나 쫓아 내지 못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데려 오라’
그래서 그가 아이를 데려 왔습니다. 귀신이 예수님을 보자 그 아이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땅에 엎드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된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니이다. 귀신이 이 아이를 여러 번 불 속에 던지고 물 속에 던져 죽이려 했나이다. 하실 수만 있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를 도와주소서’그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그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소리 높여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1. 아버지의 믿음을 통하여 자녀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믿음 때문에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부모의 믿음 때문에 이렇게 자녀들까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보아서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의 장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줄로 압니다.
시37:25절에 보면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부모의 기도가 있는 자손은 망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기도대로 자손들이 잘 되는 것입니다.
막2:5절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환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중풍병으로 꼼짝하지 못하고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을 그의 친구들이 그를 들것에 메어 가지고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중풍병 자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 병자를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가정에 믿지 않는 남편과 부모님이나 자녀들 가운데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자는 없습니까 어떤 사업으로 인하여 절망 속에 빠진 자는 없습니까 또한 어떤 말할 수 없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니 낙심하지 맙시다. 절망하지 말고 오히려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지금도 살아 계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소원을 들어 응답해 주실 줄 확신합니다.

2. 믿음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믿음은 모든 축복의 첫 단계입니다. 기도 응답의 열쇠가 됩니다. 그리고 천국을 향한 사다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이요, 주의 일을 하는데 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물질이나 건강이나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이차적인 것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아셔서 이차적인 것들은 필요 적절하게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음보다는 먼저 물질이나, 건강이 있어야 되는 줄로 압니다.
물론 물질이나 건강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이 우선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 진리를 깨달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주시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지 큰 믿음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믿음의 귀중성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실 때에 그는 무어라고 말하였습니까 ‘내 아들 고쳐 주시면 믿겠습니다’그랬습니까 아니면 ‘주님! 돈 많이 주시면 이 병을 고치게 될 줄로 압니다’그랬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믿음만 있으면 다 될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건강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치료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 될 줄로 알았습니다.
‘나의 믿음이 연약한 것을 불쌍히 여기사 나에게 큰 믿음을 주시옵소서’이렇게 그는 예수님께 먼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시고 믿음도 주시고 병도 고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신앙생활도 올바로 할 수도 없고, 주의 일도 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도 없고,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예비해 놓으신 만가지 은혜와 복을 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백부장의 믿음에 관해서 나옵니다.
한번은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쾌히 허락하였습니다. 그때 백부장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주님께서 저의 초라한 집에 들으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저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나의 하인이 나을 줄로 믿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기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하셨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집에 가 보았더니 그의 하인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백부장의 믿음대로 그 하인이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3. 사는 길이 바로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이 바로 예수를 믿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는 길은 오직 믿음의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은 ‘경찰서 열개 짓는 보다는 교회를 하나 짓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범죄가 없고, 살기 좋은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를 통해서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새로워질 때에 가정도 새로워지고, 이 나라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는 우리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전도하는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은 천하 보다 귀하고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나의 구주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믿나이다’이렇게 확실한 믿음의 사람은 어려울 때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와 모든 것을 마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복된 성도의 모습니다.
(예).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떤 교인 한 사람이 새 예루살렘 성에 가 보게 되었습니다. 황금 보석으로 아름답게 꾸민 영광이 가득한 성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말로만 듣던 천국에 가까이 왔구나’ 생각하면서 한 거름, 한 거름 점점 올라가 보았더니 큰문이 있는데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진주로 된 문이 있었습니다.
‘야 내가 정말 새 예루살렘에 왔구나’생각하면서 진주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이 척 얼리더니 베드로가 내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인은 너무 반가워서 베드로에게 ‘저는 아무개 교회에서 온 아무개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다시 묻습니다. 여기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려면 믿음의 표가 있어야 하는데 가지고 왔습니까
그때 그는 ‘예 가지고 왔습니다’하면서 속주머니를 뒤져보았더니 믿음의 표가 없어졌습니다.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는 다 찾아보았습니다. 분명히 있는 줄로 알았는데 이거 웬 일입니까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베드로에게 그 사정을 하나 하나 말했습니다. ‘나에게 지금 믿음의 표가 없지만 나는 30년간 교회에서 헌신 봉사했습니다. 그러니 좀 들어 갈 수 없습니까’
그런 것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30년 아니라 50년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큰 일 났습니다. 그래서 사정합니다. ‘베드로 사도여! 제가 그래도 10년간은 집사로 교회에 충성하였고,20년은 장로로 헌신하였는데 그래도 들어 갈 수 없습니까’
바로 그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아니 장로로 20년씩이나 믿음이 없이 했으면 말썽꾸러기 였겠구먼’하고는 문을 탁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베드로는 성질이 급한 사람입니다. 문을 쾅하고 닫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더랍니다. 그것이 꿈이었기에 다행이지, 만약 꿈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옥행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자신의 신앙을 한번쯤 점검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직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하고, 내 멋대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까
아직도 세상 근심 걱정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래서 주일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고 또 그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점쟁이나 어떤 사람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리고 목자 없는 양처럼 이리 저리 방황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이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잘 점검하고, 믿음의 표를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거나 세상을 의지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처럼 우리 앞에 당면한 모든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신 주님께 나와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간구하는 여러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 예루살렘에 들어 갈 수 있는 믿음의 증표를 다 소유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앞에 당면한 모든 문제가 다 해결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