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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앞에 열린 문 (계 0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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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140년에 버가모의 왕이었던 아탈루스 2세(Attalus the second)에 의해 창건된 빌라델비아 도시는 미시아(Mysia)와 리디아(Lydia)와 프리기아(Phrygia)등 세 나라 접경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국경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그 지리적 위치로 보아 동방의 관문이었습니다.
본래 이 도시를 건립한 동기가 헬라의 언어와 생활양식과 문명을 프리기아 미개지역에 전달하기 위한, 이른바 문화 전달의 관문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이 도시는 거대한 포도 재배의 산지로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Dionysus)를 주신(主神)으로 섬기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 였습니다.
「형제 사랑」을 뜻하는 ‘필라델푸스’(philadelphus)는 이 도시를 건설한 아탈루스 2세가 자기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명명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사랑하여’ 그의 몸된 교회를 세웠습니다. 아탈루스 2세는 그의 형제를 사랑하여 빌라델비아 도시를 세웠지만 주님은 저들의 영혼을 사랑하사 교회를 세웠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은 ①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으로 나타났습니다(3:7). ② 그분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권적 통치자로 나타났습니다(3:7).
빌라델비아 교회에 초신 주님은 ‘열린 문’을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은 ‘형통’을 뜻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I. 이 열림 문의 열쇠는 주님 자신이 갖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3장 7절에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 예수 자신만이 절대적으로 보유하고 행사하는 그의 주권적, 왕적 통치권을 의미합니다.
여기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란 말은 구약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진 사람은 히스기야 왕의 집을 맡은 궁내 대신 엘리야김에서 온 말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그에게 다윗 집의 열쇠를 맡기고,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국고의 문을 열거나 닫을 사람이 없게 했습니다(사22:21-22, 왕하18:17-18).
여기 조상 다윗 집의 열쇠를 맡은 엘리야김은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충성되고 진실한 청지기 엘리야김에게 다윗 집의 열쇠를 맡김 같이 하나님께서 그의 집을 맡은 충성된 청지기(히3:6)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맡기셨습니다(마28:18).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우리가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십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였습니다(요10:7, 9). 오직 그 문, 유일의 문, 하나 밖에 없는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만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라고 하였습니다(히10:20). 그 길은 하나 밖에 없는 유일의 길, 오직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요14:6, 행4:12).
‘새롭고 산 길’, 곧 ‘열려 있는 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룩하여 놓으신 사죄의 공효를 나타내는 문이요, 무덤에서 부활하신 영광의 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만이 구원의 열쇠, 영생의 열쇠, 천국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만이 사망과 생명의 주권자란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만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자요, 예수 그리스도 자신만이 구원과 영생과 천국의 열쇠를 가진 자란 뜻입니다. 로마 천주교에서 말하는 대로 결코 그 열쇠가 베드로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 자신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 것이지, 결코 그 열쇠 자체가 베드로의 것이 아닙니다(마16:19).
그러므로 철두철미하게 참된 교회의 왕은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뿐입니다. 주만이 교회의 머리요, 몸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 몸에 붙어 있는 지체일 뿐입니다(엡1:22-23, 2:20-22).
II.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문을 열어 놓으셨다고 하였습니다.
3장 8절에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문이 닫히지 않고 사방으로 열려 있다는 이 말은 국경 도시에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자유로운 왕래를 하고 있던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는 빨리 납득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문을 열어 놓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1.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뜻합니다.
주님은 그의 산상 수훈에서 두 문이 열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한 문은 좁은 문이요, 또 한 문은 넓은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주님은 주 가지 종류의 문을 말했습니다. 그 두 종류의 문을 극적으로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① 그 문의 이름은 좁은 문과 넓은 문이라고 했습니다. ② 좁은 문을 가리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고, 넓은 문을 가리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③ 좁은 문은 가기가 힘들어 찾는 이가 적고, 넓은 문은 가기가 쉽고 편해 많은 사람, 곧 다수가 가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④ 이 문은 둘 다 열려 있어서 계속해서, 쉬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들이 각각 다른 두 길로 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⑤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어느 길을 택하여 걸어 갈 것인가 하는 기회가 남아 있고, 그 기회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 중에서도 이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포도원에 초청 받은 자 그리고 제 삼시(오전 9시), 제 육시(12시), 제 구시(오후 3시), 제 십일시(오후 5시)까지 포도원 문은 열려 있고, 장터에 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든 초청 받을 기회가 주어졌다고 하였습니다(마20:1-16).
여기 장터에 놀고 있는 실직자는 그리스도밖에 살고 있는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초청되어 구원의 은총에 참여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열린 문」은 구원의 기회를 알려주는 말입니다.

2. 봉사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뜻합니다.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아직까지 주님의 일이 남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교세가 많은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 재정적인 힘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른바 유력한 인물들도 별로 없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가 적은 능력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3:8). 그럼에도 저들은 그 적은 힘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 파수에 전력을 다한 교회였다고 하였습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3:8)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3:8).
빌라델비아 교회 안에는 유대주의적 대적이 있었습니다. 성령은 이 대적의 정체를 자칭 유대인, 곧 「사단의 회」라고 했습니다(3:9). 그리고 「환란의 위협」이 남아 있다고 하였습니다(3:10).
그럼에도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충성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충성의 문이 열려 있는 자들을 위하여 승리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도록 권면하였습니다(3:11). 그리고 승자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는 축복을 허락하고 있습니다(3:12)
중대한 교훈은 구원의 문에 들어선 그리스도인들은 그 구원의 홀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구원 이후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실상 새로운 삶의 출발입니다. 그것은 이제 그리스도를 목적하고, 자신의 삶 전체를 헌신하는 수단으로서의 선교적 삶이 시작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디도서 2장 14절에 「4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상 루터주의는 의신득구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의신득구의 궁극적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합니다. 예수를 왜 믿느냐 는 질문에 루터주의는 구원받기 위해서 믿는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목적은 사람의 제일된 목적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사실상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이고, 또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목적입니다(사43:7). 구원받은 자는 주를 위하여 새로운 선생의 기회를 부여받은 자 입니다. 바로 그것은 또한 성화의 삶이요, 축복의 삶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축복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결코 이 문은 무한정으로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이 닫힐 때가 옵니다. 그것이 개인의 종말(죽음)이고, 우주적 종말과 심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이 열려 있는 기회를 선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문을 열어 놓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문은 구원의 기회를 부여함이요, 선행 곧 봉사와 충성의 기회를 부여하신 문을 뜻했습니다. 그것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받은 형통의 축복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행14:27). 또한 전도의 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골4:3). 주님께서만이 우리에게 기도 응답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마7:7-8).
지금 주님은 한국 교회를 향하여 열린 문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은 무한정으로 열린 것은 아닙니다. 역사상에 우리보다 복음을 먼저 받은 저 이스라엘이나 로마나 구라파나 미국의 교회들이 열린 복음의 문을 받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들 나라와 백성들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온 나라가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들 국가들에게 열렸던 복음의 문이 닫혀 버렸습니다. 그 결과로 저들 나라가 쇠잔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사는 이 시대에 열린 문을 허락하였습니다.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으며, 또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축복의 기회를 받았습니다.
정말 절호의 찬스입니다. ‘기회는 인간에게 있어서 만사를 관장하는 최고의 장(長)’이라고 하였습니다. 소포클레스의 말입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며, 기회는 달아나기 쉽고, 실험이란 것은 정확하지 못하고, 판단은 곤란할 때가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말입니다.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인간이 그것을 포착하지 못했을 뿐이다’ 카아네기의 말입니다.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지만 그것을 잘 활용하는 자는 소수일 뿐이다’ 리통의 말입니다. ‘늦추지 마십시오, 황금의 순간은 날아가 버립니다’ 롱펠로우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새 문을 열어 주시는 축복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지난 22년간 하나님이 열어 주신 축복의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모두 믿음으로 수용하려고 우리 모두는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것이 경향 교회 개척의 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4000여명의 경향인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개척교회 운동의 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350여 교회에 이르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신학교 운동의 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문산에 고려 신학교 아카데미 캠퍼스를 이룩하고, 또한 경향수양관을 이룩하였습니다. 그것이 또한 세계 선교 운동의 문이었습니다. 지금 5대양 6대주에 73명에 이르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작년(’94년) 8월에 학교법인 경복학원을 인수하는 기회의 문을 용감하게, 믿음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학교법인 경향학원으로 법인의 이름을 개칭하고, 4000여명에 이르는 두 여고의 딸들에게 학원 복음화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금년 7월 17일에 이 학원 부지에 학원의 복음화와 서울과 조국의 복음과, 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기지로 경향 새 성전 공사를 착공하였습니다. 이것은 경향 설립 22년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신 경향 도약의 새 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신 축복의 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열어 주신 문!
이것은 개인과 가정의 구령을 위하여 열어 주신 문입니다. 서울과 조국의 구령을 위하여 열어 주신 문입니다. 세계의 영혼을 위한 선교의 문입니다.
네 앞에 열린 문!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신 봉사의 기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사충성의 기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 사랑, 교회 사랑의 기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광의 문을 출입하고자 하는 모든 동맹자들에게 형통의 승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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