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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와 교육의 진흥 (딤전 04:6-16, 신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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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교육이 없었다면 그 신앙이 얼마나 지속될 수가 있 었겠습니까 아마도 교육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오늘날처럼 존재할 수 없었 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득한 구약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교육 하는 사명을 가장 중요시하여 왔습니다. 교육이라고 하면 대단히 광범한 뜻 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교육 을 생각해보고 이 교육을 더욱 진흥시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따라 가졌던 특수한 종교형식이 있었고 또 그 형식속에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있었으며 또 그 신앙은 교육으로 이 루어져 왔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역사를 통해 교육의 과정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탈출하여 나온 주전 1400년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한 주전 586년까지의 기간을 살펴보면, 그 아득 한 옛날에도 교육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물론 학교나 교육시설, 그리고 교사나 교육을 뒷받침해 주는 재정 또는 제도가 오늘날과 같지는 않았습니 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연속되는 역사와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꾸 준히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유지하여 왔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애급에서 나온 출애급사건의 교육때문이었습니다. '출애급을 기억하라' 라고하면 그들은 쉽 게 하나의 민족으로 묶여질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사장.선지자는 모두 백성을 가르치는 교사였고 더구나 지혜자들의 말은 도덕과 정서적인 면에서 훌륭한 교훈이 되었으며 이 모든 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교육은 가정에서 그 부모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교육이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들은 종교교육, 역 사와 율법, 그리고 종교의식과 여러가지 절기를 지키는 일, 자녀들의 직업교 육까지를 가르치고 전수하는 교사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초기 종교 교육은 그들이 유목민으로서, 또한 농경민으로서, 왕국을 건설하는 국민으로 서, 분열된 나라의 백성들로서, 그리고 전쟁과 패망을 겪은 민족으로서 그 모든 역사의 과정과 생활체험들이 곧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하나 님이 그들을 이스라엘 민족으로 교육하신 그러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남북왕조가 외세에 침략으로 망하고 그들이 오랜 포로생활을 하 는동안 교육의 추세는 많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렵고 암담한 포 로생활속에 적응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종교와 신앙은 위협을 받기 시작했 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 선조들 과의 약속을 하나님은 왜 않지켜 주시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과 회의로 인 하여 민족의 동질성이 위협을 받게되고 마침내는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따 르느냐, 그렇지 않으면 외세에 적응하고 적당히 타협함으로 생존하느냐, 그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위기 가운데서 끝까지 외세의 억 압을 반대하고 나선 소수의 무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율법을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그 율법을 실천하기 위해 더 많은 법을 만들어 그것을 가르치고 철저히 지켜 나갔습니다. 이들을 '남은자'라고 지칭하였습니다. '남은 자'들 에게 소망이 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후에 에스라 같은 이는 율법을 해방된 자기나라 왕국의 법으로 제정했습니다.

포로기간 동안에 성전을 잃어버린 그들은 동네마다 회당을 지어서 예배 장소로 삼고 그곳을 비공식 교육기관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그 들은 성전대신 회당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대신 성경을 읽고 시편을 노래하고 말씀을 강론하고 기도와 축도를 드리는 오늘 우리의 예배와 거의 흡사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회당은 제 사장이나 예언자들이 중심이 되었던 종교구조로부터, 민중의 예배와 배움의 장소로 탈바꿈을 한 중요한 전환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도 여전히 가 정은 좋은 학교였습니다. 네살부터 율법을 가르치고 또 율법대로 사는 생활 을 교육했고 열세살이 되면 사회의 한 성인으로서의 책임이 부과되었던 것 입니다. 이 회당이 시작됨으로 유대인 사회에는 공식적인 학교가 세워지는데 이들 학교에서는 율법을 공부하며 율법외에도 수학.천문학.지리.생물학 등도 배우게 하여 일반교육의 선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학교 교육은 종교 교육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교육은 어떻하였습니까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은 한마디 로 신앙적 갈등의 시대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 그것은 로마제국의 압제 밑에 살던 백성들에게 약속과 희망의 복음이었습니 다. 그러나 백성들은 정치적 억압 아래 두 주인을 섬기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들이 해방을 부르짖은 이유는 인권이나 국가의 독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종교와 신앙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호칭했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히 가르치는 교사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혁명가로 혹은 기사 이적을 행하는 분으로 혹은 도덕가 로......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서'오신 우리의 영원 한 구세주이십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교육 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육은 교육 으로서 그치지 않고 인간과 우주의 구원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빛으 로 이해되고 해석되야 합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스승이지만 그 가르침의 목 적은 구원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이루는데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교육의 목표가 분명히 들어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교육을 진흥시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구원의 사업 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구원을 이루기위한 것입니 다. 오늘날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도덕심을 함양하거나 인성이나 지성 을 계발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이라고 하여 굉장한 프로그 램이나 막대한 예산을 쓴다고 해도 참으로 그들의 생명을 구원하지 못하는 교육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배우고 가르칩니다. 그 런데 성경은 우리의 지적인 만족이나 도덕적 행위의 교본으로만 그치는 것 이 아니고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딤후 3:15)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육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의 교육도 구원을 실현하는 하나 님의 선교의 빛 아래서 이루어지게 합시다. 구원을 위한 교육, 선교를 위한 교육이라야 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과 선교를 상실한다면 교회교육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이루는 교육이라면 교회교육처 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회를 제쳐놓고 사람들이 어디에서 구원 의 교육을 받겠습니까 그러면 오늘 우리의 교회교육은 어떠합니까 교육문제를 생각할 때 교회 학교 어린이들이나 중.고등부 학생들만 생각하지 마시고 바로 성도 여러분 자신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교육은 바로 나에게 관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 은 교육을 경건에 이르는 연습(훈련)이라고 하였고 이 연습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있는 일이며 또 이 훈련은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것이라고 하였습니 다(딤전 4:7-). 모든 사람이 배우고 가르쳐야 하고, 모든 사람이 경건에 이르 는 연습과 훈련을 받아야 하며, 그리고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 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교육은 크나 큰 위기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교육학자 들에 의하면 모든 교육은 목적.내용.방법.현장의 네가지 요소가 잘 조화될 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대략 1960년대 이후에 와서 이러한 요소들이 전부 바꾸어지게 되었습니다. 종교교육의 목적은 경건과 도덕을 가 르치고 말씀대로 살아 마침내 구원을 이루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현대사 회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기능과 기술을 익혀서 사회에 적응하면서 살게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원만한 인격을 도야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기능을 가진 사람이 되기만을 원합니다. 하 나님 앞에 진실한 한 인간이 되는 것보다는 방법과 기술만 터득하려고 한다 는 말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수단, 방법과 기능과 기술만을 터득하면 교육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의 교육에서 인간이 점차 비인간화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의 교회 교육이 당면한 또 한가지 문제는, 하나님의 아들.구원자로 서의 예수를 가르치며,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서를 가르 치는 등, 신비적이고 초 자연적인 영적 차원의 일들을 가르치는데서 오는 어 려움입니다. 이것은 경험과 실험을 통하여 입증된 자연과학적 사실만을 믿으 려고하는 현대인들의 특성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속주의와 세속정신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르치기가 매우 어렵게되어 있습니다.

또한 머리를 쓰고 깊이 사고하는 것을 기피하고, 여러가지 현대적 교육 기자재들을 통하여 손쉽게 배우고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얻으려고하는 현대 인들의 특성 또한 문제입니다. 신앙교육의 현장으로써 가정의 중요성과, 교 사로서 부모의 역할의 중요성을 누구나 다 알면서도 지금 우리는 교육의 장 으로서의 가정을 상실하고, 교사로서의 부모의 역할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장을 상실했고 교사를 상실했습니다. 오늘날 교회교육이 당 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말하자면 한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교육을 진흥시킬 수 있겠습니 까 우리는 대학을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데 대학을 졸업한 정도라면 지성 의 훈련을 받은 지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 에게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 이외에 다른 연습은 육체적 연습이던, 지성의 훈련이던, 그저 약간의 유익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으며 누구나 다 받을만 하다고 한 것입니다. 왜일까요 이것은 인 간의 영성을 훈련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이 지성인을 만드는 교육기관 이라면 오늘날의 교회는 사람을 영적인 인간으로 가르치고 훈련하는 교육기 관입니다. 지성적으로 높아도 그 영이 구원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을 것입니 다.

교회에서 신앙을 훈련하고 말씀을 배우는 일은 하나의 영성교육임으로 대단히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교회교육은 그 필요성이나 호응 도에 있어서 참으로 해볼만한, 도전해 볼만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들은 결국 세속문화와 그 가치들에 대하여 식상하고 심한 혐오감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영적인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경제적으 로 풍요로워진 사회가 한때 종교를 멀리하기도 하지만, 결국 세속문화와 그 문화적 가치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간들은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를 찾고 신앙을 다시 찾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한대로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영을 지으신 하나님께 안기기 전 에는 평안함이 없는 것입니다. 방황하던 인간들은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그 러므로 인간의 영혼을 교육하고 영성을 훈련하는 교육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속된 것을 버리고 경건한 훈련을 받기를 원합니다. 인간은 아무래 도 영적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할 이 많은 영혼들, 그들 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육을한다는 것은 그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 입니다. 사람의 영이 무엇이며 영성이 무엇인가 라고 할 때 이것을 한마디로 간단히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영성이란 '기도와 예배, 영적인 삶의 발전과 관계된 모든 실천으로 근본적으로 완전한 의미에서 한 인간이 되는 것' 이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영을 바람으로 표현.상징하고 있는데 바람은 임의로 불고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만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바람처럼 알 수도 볼수도 없는 것이 영입니다.

그러면 교회교육이 인간을 영적인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사람을 신비한 것으로, 혹은 이상하고 독특한 초인(超人)으로 만든다 는 것이 아니라 영에 속한 거듭난 '참사람'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사물과 다른 것은 그 인격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격이란 보이지 아 니하는 특별한 차원의 것입니다. 이것은 시공간의 물리적 차원이 아닌 또 다 른 하나의 차원입니다. 그러한 제 3의 차원에 관여하고 그 교육을 돕는 것입 니다. 이것을 '실존'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말은 '존재에서 벗어 나는 것', '밖에 나가서는 것'으로, 인간이 그렇게 될 때 영과 깊은 관계를 가 지게 된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자아를 벗어나는 존재로 존재하게 하는 것입 니다. 우리 인간은 그 자신으로부터 벗어날수록 혹은 자신을 초월할수록 영 적 차원은 그 만큼 깊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실한 인간이 되면 될수록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안에서 점점 더 성장하게 됩니다.

반대로, 사람이 자기 안을 향하여, 자기의 여러가지 이익에 집착할수록 그만큼 영에 속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을 훈련하고 교육하는 것 이 영성훈련이며 경건연습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영성훈련을 한다고하여 여 러가지 신비적인 체험에 몰입하도록 이끄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결여된 신비체험은 미신적 신앙으로 나가게 되기가 쉽습니다. 또한 '성령의 열매'가 없는 은사나 체험은 교회에 아무 아무런 유익을 주지못할 뿐 아니라 그러한 체험은 비성서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열매는 사랑.희락.화 평.인내.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등으로 들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 가 나타나지 않는 성령의 체험은 잘못된 체험입니다.

교육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라면 어떻게 영성을 변화시키겠습니까 인 간의 영은 영으로 알고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통합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하려 하 심이라'(고전 2:11-13)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와 예배, 말씀의 연구 그리고 영적인 삶의 훈련, 오 직 이것만이 육에 속한 사람들을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성 서는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훈련은 금생 과 내생에 모두 유익하고 또 모든 사람이 다 받을만한 교육입니다. 열심히 듣고 배우고 또 기도합시다. 또한 부지런히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가장 보람된 교회교육을 더욱 더 진흥시키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권고 드 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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