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으로 이루어진 약속 (롬 04:1-25)

첨부 1


죄 아래 있는 인생들이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있는 길를 찾아내는 것은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의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지라도 누구에게나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죄에는 형벌이 따르며 의의 통로를 찾지 못하면 인류와 개인 모두에게 어떤 희망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의에 통로에 대하여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1. 개인적으로 인정받은 아브라함의 믿음1) 본문 설명
4장 맨 처음에 나오는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라는 질문이 유대인들의 선입관에 대한 의문점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진술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담대하게 선언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자랑거리가 그 자신의 업적을 말합니다. 이 점을 입증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성경구절(4:3;창15:16)과 다윗과 시 가운데 한 편(4:7-8; 시32:1-2)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인용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만일 그가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그것은 그에게 당연히 지불되어야할 몫의 지불이라는 성격을 지녔을 터이고 결코 은혜의 선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인간의 죄에 대한 경험과 인간과 여호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경험을 다루는 다윗의 저 위대한 시 서론 부분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인용문에서 바울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어한 것은 어떤 경우든 축복은 하나님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요, 인간의 행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임이 분명합니다. 믿음은 행위로 입증된다는 점을 결코 아닙니다. 이 말은 인간의 행위가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지 못하며, 복된길로 들어서는 관문도 아님을 강조할 뿐입니다. 이 시편 인용문에는 믿음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지만, 축복이 인간의 공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하나님의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할례가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며 그 가치는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이 시편 인용문과 관련하여, 시편 기자가 언급한 축복이 할례자에게만 해당된 것인지 아니면 무할례자에게까지도 해당된 것인지에 대해 유대인들이 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이 질문의 요지는 유대인들이 이 시편을 유대인의 시편으로 여김으로써 할례를 표로 하여 세운 언약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를 적용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물음에 답하면서 아브라함이 할례 의식을 행하기 전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게다가 할례 의식이란 이미 수립된 일에 대한 외적인 표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와 관련해 볼 때 믿음이 행위로 말미암은 의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행위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결과임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끝으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육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할례를 받지 않았아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아버지라고 선언함으로써 이 명제를 완벽하게 마무리짓습니다. 아마 유대인들은 이런 진술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뿐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단 한 사람도 하나님에 의에 도달할 수 없으며 절망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로 인정받게 됩니다. 고후5:21을 보면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적용
교회가 성도들은 신학적인 이론이나 성경적 교리보다는 믿음에 우선 순위를 두고 신앙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없는 지식, 믿음없는 교리는 하나님에 편에서는 아무런 가치나 의미도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2.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1) 본문 설명
사도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문제를 취급한 다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서 새 이스라엘을 부르신다는 사실을 고찰합니다. 즉 이 세상의 상속자가 되라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위대한 약속은 보다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불러일으키고 민족적 활력의 중심이 되었던 메시아 소망을 언급한 말입니다.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 앞에서 고찰했던 바와 같이 믿음의 의를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주제를 다루면서 메시아 소망이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서 불타올랐으며 적어도 율법이 주어지기 전 사백 년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구성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활력을 복돋워주는 영원한 자극제가 되었다고 언급합니다. 물론 이 소망은 믿음에 대한 은혜의 약속입니다. 만일 이러한 구원 약속이 율법 준수에 의해 좌우되었다면 이 약속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드러내며 드러난 죄는 진노를 불러일으키고 더 나아가 조건들을 위반 할 경우 약속은 취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주님을 따르는 믿음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모든 자녀들에게 곧 율법에 속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음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은 아브라함을 육신의 조상으로 삼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행동의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하게 입증되었습니다.
2) 성경적 연결
하나님께서는 무자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자녀 주실 것을 약속하신바 있습니다(창15:4,5). 그러나 이러한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오래도록 자녀를 갖지 못하였습니다(창16:16
17:24,25). 아브라함이 100세 사라가 90세가 되어서야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리라’(창17:16,17)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때는 이미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미 생식능력이 없어진 자신과 신체적 조건을 알면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음을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4:19-21). 이러한 사실은 사라가 이삭을 잉태하기 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그 자신과 집안 식구의 할례를 기꺼이 행한 점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창17:23-17).
3) 적용
우리는 상식과 이성과 상황과 현실을 초월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확연하게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절망적인 현실에 처한다 할지라도 상식과 이성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합니다(시40:1;잠20:22;마6:10;행1:4).

3. 아브라함:약속의 성취1) 본문 설명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민족이 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고 믿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믿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들만 보아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아들을 보내시어 그를 통해 민족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무런 희망이 없고 또 자연 법칙에 따르더라도 바라던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을 때 그는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일단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아들을 이 땅으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의 죽은 태에서 이삭을 낳게 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였습니다(히11:17-19).
3) 적용
오늘날의 성도들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롬8:34)를 믿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행13:39).
결론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신앙 중심으로 살아가기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