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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디오피아 내시가 세례받다 (행 08: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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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성령 받은 중요한 인물들이 몇 명 있는데 그 중에 첫째는 베드로와 요한 일 것입니다. 이 베드로와 요한 은 사도들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써 초대 예루살렘 교회탄생에 창립에 주역을 담당했던 목회자들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 또 기억 할만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우리가 지난번에 공부를 쭉 해왔던 스데반 일 것입니다. 그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대표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던 사람이고 순수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순교자 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목회자였다면 스데반은 믿음을 검증한 사수한 순교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공부하게 될 빌립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빌립도 스데반과 함께 평신도를 대표하는 그런 사람인데 특별히 빌립은 독특한 모습이 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자라 한다면 빌립은 전도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개인전도에 탁월한 은사가 있었고 그가 곳곳에 돌아다니면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그런 특별한 은사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는 후에 바울을 보게됩니다.바울은 선교사라는 별명을 붙여주는게 좋겠고 바나바는 상담자라는 별명을 붙 여 주는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브리스길라 와 아굴라라하는 그런 부부도 사도행전에서 발견합니다. 오늘은 개인전도에 탁월한 은사를 가졌던 이 빌립에 대하여 공부를 하겠습니다. 먼저 25절을 잠깐 보겠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로 왔습니다. 그이유는 사마리아가 복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과 같은 사건입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지역을 초월했습니다. 속 성령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합니다. 성령은 인간의 생각과 철학을 초월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소식을 듣고 사도들을 대표해서 급히 사마리아로 갑니다. 두 사도가 사마리아로 가서 한일은 무엇입니까 한가지였습니다. 그들 이 성령 받기 위해 기도 한 것입니다. 드디어 그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은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과 기름 부으심 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견딜 수 없어 전도를 하게 됩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여러 촌으로 흩어지면서 복음 전했습니다. 그것이 25절의 말씀입니다.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 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 으 로 돌아 갈세 사마리아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여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한 현상 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이 임하면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성령의 세례가 임하면 자기도 모르게 나가서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시켜서 하는 것은 수동적입니다. 시켜서 일하는 것은 시키는 만큼 일합니다. 좋아서 하는 것은 그 이상을 일하게 됩니다. 시켜서 하는데는 돈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데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습니다. 십자가를 보고도 좌절했던 부활을 보고도 좌절했던 움직이지 못했던 옛 날의 생업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그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수님 이 승천 할 때도 그리고 그 후에 다락방에 모여서도 어쩔 줄 몰랐던 그들이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그 방안 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곳 방언으로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을 뛰쳐나갔습니다. 곳곳에 나가서 예수에 대한 말을 하였습니다. 성령 을 받으면 성령세례가 임하면 예수님을 말하게 되고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불이 내 안에 들어 온 것 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인의 모든 촌에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마음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뜨거움이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고 싶습니까 예배를 끝나면 얼마나 할 일이 많아요. 김 사장한테도 가야하고 박 선생한테도 가야하고 병원에도 가야하겠고 갈 때가 너무 많아요. 예배가 빨리 끝나야 해요. 나는 복음을 들고 갈 때가 많아요. 혹시 그렇습니까 아니면 물에 빠진 사람처럼 몸이 무겁습니까 가긴 가야하는데 전도하긴 해야 하는데 기도하긴 해야 되는데 찬송하긴 해야되는데 전혀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그런 상태입니까 나는 여러분이 이런 성령의 뜨거움이 있길 바랍니다. 견딜 수 없는 마음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 소리지르고 싶은 마음 찬양하고 싶은 마음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게 되길 바랍니다.
사마리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열정이 있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혹시 예수 믿고 나서 밤새본 일이 있습니까 저는 65년도에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 해 나는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 만 큼 흥분해 있었습니다. 예수 믿고 한달 동안 목이 쉬도록 찬송을 불렀습니다. 너무 좋아서 저는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의료선교하면 거기 따라 다니면서 약도 싸주고 안내도 하고 사람들 진료를 하는 동안에 전도를 합니다.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오면 임하면 그 열정이 있습니다. 제가 이래 뵈 도 남산에 전도하러 자주 갔던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으시오 하면 사람들이 싫어하죠. 그렇게 하고 싶어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버스 안에 서서 예수 믿으시오 하며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못하니까. 어느 정도 마음이 뜨거우면 저럴까 저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저렇게 할까 저렇게 해서 예수 믿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인데 왜 저렇게 할까 Wow 굉장해요. 저는 서울역에서도 전도했어요. 여기 장충공원에 가서도 전도 해봤어요. 사직공원에 가서도 전도했어요. 개인전도를 했습니다. 자살직전에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대학을 포기하고 어쩔 줄 을 몰라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예수를 전합니다. 예수를 전하고 오면 세상이 내 세상 같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전도하는 것 만큼 기분 좋을 때가 없습니다. 목사는 심방가면 기분이 제일 좋습니다. 전도하고 나면 내가 목사 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마리아 촌에 다니며 전도했다는 말입니다. 간단한 말입니다. 엄청난 말입니다. 놀라운 말입니다. 나는 우리교회가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특별히 빌립은 이런 전도에 은사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전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물이 흐르듯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어떤 장소든지 어떤 상황이던지 예수님을 전하는 그런 전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하게 하나님의 어떤 인도와 섭리가 있어서 개인전도를 특별히 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빌립의 경우는 이런 특별한 개인전도 어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어서 하는 이 전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개인전도는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막연히 부르시거나 아브라함이 여러 가지 자기 일상생활을 하다가 어느 계기가 되어서 하나님을 믿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여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가 80년 동안 그의 인생을 방황하다가 하나님께서 한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시내 산에서 그를 특별히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특별하게 부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 어떤 섭리를 위하여 하나님은 사람을 특별하게 택하시고 부르시고 그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나의 그릇으로 그를 택하여 썼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을 보면은 재미가 있습니다. 이사야를 보면 에스겔을 보면 예레미야를 보면 하나님이 특별한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지명하여 불렀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나님은 이렇게 여러분을 특별하게 부르실때가 있습니다.이사야 43장1절을 보면은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기에서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네이름을 내 손바닥에 썼다라는 이런 표현들이 이사야에 보면 있습니다. 44장 21절에 보면은 애굽아 이스라엘아 이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라 내가 너를 지었으며 지었으니 너는 나의 종이라.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부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부름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상 속에 그냥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결코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않았다. 난 너를 불렀고 난 너를 택했고 네가 나의 일을 해주길 원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모두를 부르십니다. 그러나 특별하게 부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했고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그중 에 12사도를 특별히 개인 적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너무 지나치게 과분하게 그들에게 시간을 할애해 주었습니다. 이건 불공평 일 이예요. 너무 한사람에게 치우친 편애예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편애 하셨습니다. 12사람에게 같이 먹고 같이 자고 특별히 그들을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왜 목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특별한 섭리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시간낭비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과 세계를 복음 화하기 위하여 많은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이 땅에 많은 교회를 세워주셨지만 서울장안에 많은 교회를 세워주셨지만 특별히 이 교회는 모든교회중에 하나지만 특별한 게 하나있습니다. 온누리교회는 세계선교를 위해서 특별히 부름을 받았다. 우리교회의 특징은 세계선교를 위하여 특별히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워 주신 것입니다. 이방인을 복음 화하기 위하여 바울을 세워 주셨듯이 지금 전 세계를 복음 화하기 위하여 많은 교회 중에서 너희 교회만은 이일을 위하여 특별히 부름을 받았다. 그래서 세워 주신게 온누리교회 입니다. 왜 우리교회가 해외선교에만 특별히 합니까 국내선교를 무시해서 그렇습니까 교육사업 의료사업 구제사업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그거 다 압니다. 그러나 온누리교회는 많은 교회 중에서 해외선교를 위해서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너희는 특별히 헌금을 하고 특별히 사람을 보내고 지나치도록 그 일을 해라 하는 사명을 교회 창립 때부터 주셨습니다. 여기 많은 교인들이 모여있습니다. 그러나 이중에서 어떤 사람을 하나님은 특별히 부르십니다. 너는 일을 좀 해달라. 내 일을 좀 해달라. 이일을 위하여 너에게 시간낭비를 하마, 이일을 위여 나는 너를 끝까지 기다려주마. 너는 이일을 좀 해달라. 우리 온누리교회 성도를 중에서 특별히 개인적 부탁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나는 그분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길 바랍니다. 귀를 막지 마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이 온누리교회를 택해 주셨듯이 온누리교회 많은 성도님들 중에 대부분은 그저 보통교회 나와서 예수 믿고 헌금하고 기도하고 이렇게 내생활 속에서 최선의 삶을 살도록 하나님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게 특별하게 빌립을 통해 일을 하셨던 것처럼 그런 일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26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여기서 뭐라고 했습니까 특별한 지시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각자에게 특별한 부름이 있는 분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분들은 응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빌립에게 주의사자가 나타나서 내가 어떤 특별한 일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일을 수행해 달라 하는 것입니다. 개인전도에는 일반적으로 그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별로 효용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26절을 보면 주의사자가 빌립에게 뭐라고 그랬죠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라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그리고 그길은 뭐다 광야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허무맹랑한 명령입니까 아!지금 당장 가라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내일 약속도 있고 계획도 있고 스케줄도 다 있는데 어떻게 그런것들을 다 그만두고 가라는 거죠 또 전도란 사람 많은데서 해야지 지금 아주 사마리아 곳곳에 너무 바쁜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지금 전도가 일어나고 있는데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 사람들이 구름 때처럼 모이고 있는데 거기를 그만두고 광야로 가라 사람이 없는데를 가라니 이해가 됩니까 효용가치가 있습니까 만약 이렇게 해보십니다. 우리 온누리교회가 이렇게 부흥되고 있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너 여기 그만 두고 저기 시골로 사람도 없는...” 그러면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이 똑같은 느낌이예요. 개인전도 이런 것은 사람의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습니다. 투자가치가 전혀 없어보여요. 그렇지만 지금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성령님이 지시했던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에 맞지 않는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그 시간에 가라할 때 그 시간에 가야 합니다. 늦게 가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그 장소에 가라할 때 그 장소에 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다른데 가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만약에 이런 경우에 갈것이냐 말것이냐 라고 토론과 회의에 붙였다면 당회가 열리고 제직회가 열렸다면 어떤 결정을 할까요 어떤 결정을 할 것 같아요 안 할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그래서 아무일도 안일어나는 것입니다.왜 상식과 경험과 합리와 효용가치와 이런걸 생각하니까 이렇게 돈을 많이 들여서 사람도 없는데 가서 10년 20년 아무 열매도 없는데 일을 하란 말이요 이거 교회가 낭비요 헌금 낭비요 하며 안 할겁니다. 눈에 보아서 빨리 보이는 것 사람보기에 이성에 만족되는 것 상식에 만족되는 것 합리에 만족되는 것 경험에 만족되는 것 그런 일만 골라 할꺼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건은 아무것도 안 일어나요. 여러분 이런 것을 회의에 붙이면 결정 날것 같아요 만장일치로 부결 될 꺼 예요. 안 할 꺼 예요.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태도 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상식과 경험과 합리에 만족되어야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은 다른 것입니다. 여기 교회에 진정한 영성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손해보는 것 같고 비합리적인 것 같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의미는 나가서 영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순종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27절과28절을 읽겠습니다. 여기 재미있는 표현 ‘일어나 가서 보니 ... 나는 여러분들에게도 이 말이 적용되길 원합니다.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도대체 교회가 왜 그런데 투자 해야될 것인가 내가 이번에 제주도에 전도하려고 굉장히 마음먹었어요. 예산을 투자해서 거기 전도하고 싶었어요. 도대체 무슨일이 우리는 해야되는 일도 많은데 그렇게 생각 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중동에 북한에 구소련에 스리랑카에 아프리카에 남미에 하나님이 영적으로 긴박한 일이 있는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 거기 보겠어요 기도하지 않는 사람 거기 듣겠어요 모르죠.
하나님은 그 일을 하기 원하세요. 그때 해야합니까 안 해야합니까 빌립은 순종했습니다. 일어나 가서 보니 믿음으로 가 보니 정말 그곳에는 하나님의 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더라. 나는 여러분들이 이런 개인적인 축복을 받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살지 않는 그 광야에 한 에디오피아에 큰 권세를 가진 대신이 거기 있었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이 한사람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한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코 한사람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한 사람이 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일을 할 일꾼이었습니다. 29절을 보시기바랍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 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가라대 “읽는 것을 깨닫느뇨” 그렇습니다. 주의사자가 성령님 에게 너는 일어나 전도하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는 이 현장을 떠나서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가라.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성령님께서 또 말씀이 있습니다. 빌립에게 그 병거에 접근하라. 가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이 병거에 타있는 에디오피아의 내무장관 같은 분이 성경을 읽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를 읽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 빌립이 어떻게 말하고 접근할까 성령이 가라고 해서 갔는데. 성령님이 가라고 해서 당신에게 왔습니다 이럴수도 없잖아요 . 근데 빌립이 제일 쉽고 재미있는 말을 했어요. 글 읽는 거 깨달으세요 이런 이야기 한마디 했어요. 여러분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가면 안 되는 것 같으나 모든 게 됩니다. 그러나 내 생각대로 하면 될 것 같으나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원치않게 형들의 미움을 받아 깊은 우물에 빠졌습니다. 요셉은 원치 않게 형들의 미움을 받아 조국을 떠나야만 했고 이방의 나그네로 살아야 했고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 집에서 종노릇해야 했습니다. 거기 가서 최선의 삶을 살았는데 나쁜 안주인을 만나서 그는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총리대신 되는 하나님의 각본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일 안될 때 아멘 하세요. 대학에 떨어지거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몸에 병이 들거나 계획한 것이 안되면 아멘 하세요. 주여 이제 내 뜻이 무너졌고 당신의 뜻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내 뜻은 무너져야 합니다. 내 계획은 무너져야 합니다. 요셉이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은 최상의 상황을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서 4장11절 이하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내가 비천 에 처할 줄 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 도 알아 모든 일 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이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풍성 부유함도 배웠지만 가난함도 배웠습니다. 건강의 축복도 배웠지만 질병의 고통도 배웠다는 것입니다. 건강이냐 질병이냐 축복이냐 패배냐 좌절이냐 저주냐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뛰어나신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 신자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이게 믿음입니다. 축복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실패는 하나님의 더 큰 뜻입니다. 성공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패배는 더 놀라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그런 믿음이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좌절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는 결코 낙망이 있을 수 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기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듣는 귀가 우리에게 없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주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주의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지시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상식에 맞지 않고 합리에 맞지 않고 경험에 맞지 않고 여러분의 이성에 맞지 않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효과가 없을 것 같이 보일지라도 열매가 없을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것이 참으로 무지한 투자같이 보일지라도 성령님이 시키는 데로 하십시오. 믿음의 행동에는 결코 후회도 실패도 없습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습니다. 31절을 읽기 바랍니다. 여기서 전도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강팍한 사람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착 해서 사람 바꾸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을 내가 주워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내가 아무리 전도하려고 해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전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택한 사람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을 내가 만나서 그 열매를 주워 오는 게 전도입니다. 그러니까 자꾸 쑤셔 보아야 해요. 이 사람인가 저 사람 인가 알 수 가 있나요. 당신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입니까 내가 전도사 시절 때 우리 교회 사모님이 믿음이 참 좋은 분이었요. 그때 펠레가 왔어요. 우리 나라와서 시범할 때 였어요. 나는 옛날에 축구 선수였거든요. 골키퍼 였거든요. 너무 재미있어서 주일날 예배 끝나고 그거 보는거예요 너무 재미 있어서. 사모님은 펠레도 예수 믿을까 하고 그러더군요. 사모님의 관심은 펠레가 공 잘 차는데는 관심 없고 저 사람은 예수 믿었느냐 이게 관심있는 거 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런 관심이 있게되길 바랍니다. 전도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을 내가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어 재미있죠 이 내시가 말이죠. 가서 깨닫습니까 그러니까 이리 올라오라고 자기 병거로 올라오게 해서 그 병거 자기 자리 옆에 앉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남자 언제 봤습니까 사귄지 얼마나 됩니까 도대체 이 사람이 도둑놈인지 강도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옆자리까지 안내를 합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것이 전도자의 축복입니다. 저는 가끔 목사로서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습니다. 식사를 할 때도 예수님 도 과연 이런 대접을 받았을까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도대체 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성도님들이 그렇게 저를 사랑하고 대접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 빌립이 왜 이런 대접을 받습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이사야 말씀 때문입니다. 말씀에 대한 봉사를 했더니 하나님이 이처럼 자기 옆자리까지 오게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게됩니다. 내시는 빌립을 초청해서 궁금한 것을 질문했습니다. 32절과 34절입니다. 청컨대 묻더니 이 선지자가 누구를 말하는 것이요 내시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과연 이사야 말씀에 나오는 그가 누구냐 는 것입니다. 내시가 이사야 말씀의 문장을 몰랐겠습니까 단어를 몰랐겠습니까 문맥을 몰랐겠습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시의 커다란 호기심은 과연 그가 누구냐 는 것입니다. 인류의 최대의 질문은 바로 그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 한 분에 대한 수수께끼 그분은 역사의 A.D 와 B.C 가르셨던 분 이신데 그분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사울은 다멕색 가는 도중에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 질문 이 수수께끼를 대답 할수 있다면 인류와 우주에 대한 문제를 해답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수많은 철학적 물음과 역사의 물음과 인생의 본질에 대한 해답을 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이사야에 강렬하게 호기심을 가지고 이사야가 말했던 이분이 누구인가 과연 이 분이 누구인가 그 분이 정말 하나님인가 35절에 빌립은 입을 열어 이글에 시작하는 예수의 복음을 가르칩니다. 전도란 무엇입니까 그 분이 예수입니다. 이 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살하고 싶습니다. 내 인생이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그 때 옆에 있다 “예수 안믿어 그러는 거예요”라고 하는 것이 전도예요. 왜 세상에는 전쟁이 있습니까 왜 세상에는 지옥이 있습니까 그 해답은 예수를 통해 보아야 합니다. 이게 전부예요. 진정한 전도자는 이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생애가 마지막 마치고 죽을 때 예수님을 부를수 있어야 합니다. 내 생애 마지막 장례식에는 통일이 아니라 찬송이어야 합니다. 마지막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정의나 평화나 자유를 위해서 한 평생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결론은 예수님 이어야합니다. 예수보다 더 높은 가치 예수보다 더 본질적인 가치는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오늘 보면은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길 이렇게 나옵니다. 예수님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위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이란 다른 것 때문에 받는 것이 고난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위해 받는 고난을 이야기합니다. 신학자들은 예수를 너무나 어렵게 생각합니다. 철학자나 사회 개혁가들에게는 예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빌립의 대답은 그 분이 예수라 가르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예수님을 소개 합니다. 내시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3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이 내시라는 사람 참 대단한 사람 같습니다. 길을 가다가 물이 보이니까 마차를 딱 stop시킵니다. 내려가자. 보라 물이 있는데 왜 내가 세례받는 것을 포기하겠느냐 37절은 없죠. 그 밑에 보면 어떤 사본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이 내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줄을 믿노라. 드디어 광야의 한 시냇가에 사람이 살지 않는 그곳에 지금 놀라운 천국축제 구원의 잔치가 베풀어지고 있습니다.38절과39절을 읽겠습니다. 여기보면은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다 물속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세례입니다. 우리가 세례문답고 하지만 그건 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고 예수 믿으면 세례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 놀라운 것이예요. 우리는 세례할 때 물 뿌리는데 사실은 물에 들어 갔다 나오는 것이 세례입니다.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갔다 했습니다. 내시는 홀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게 무엇같습니까 거짓말 같죠 꿈꾸는 것 같아요. 한 사건인데 굉장히 꿈꾸는 사건 같아요. 세례를 주었습니다. 성령이 빌립을 췌어같습니다. 내시는 홀연히 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도 거짓말 같은 사건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꿈꾸는 것 같은 그러나 실제로 있는 영적인 사실 영적인 실재 4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40절의 말씀을 충분하게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아마 빌립이 이 곳 저곳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겠죠. 아서굴에도 나타났고 이성 저성에 빌립은 나타났을 거예요.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빌립이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은 움직였을 거예요. 빌립이 가는 곳 마다 그는 복음을 선포하였을 겁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귀를 열고 그 복음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몸에서 귀신이 나가는 것을 경험하고 병든자들이 낫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병이 낫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가족들끼리 꿇어앉고 울었을 것입니다. 감격했을 것입니다. 그 날밤에 잠을 못 잤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이 집 저 집 이성 저 성에서 모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삶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는데 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빌립을 보십시오. 그는 이름도 빛도 없이 신문에 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TV뉴스에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를. 어디를 다녔는지 여러분 이것보다 더 귀한 생애가 어디 있습니까 죽어가는 영혼을 붙들어서 기도해 주고 구원해서 그를 천국에까지 인도해주는 이런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 주시옵소서. 성령받고 우리도 이렇게 전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어떠한 직업을 가졌든지 무슨 전공을 가졌든지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우리가 예수의 사도가 되게 하시고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여 주시고 예수를 말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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