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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의 사람 히스기야 1 (왕하 1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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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것이다 .

오늘은 기도의 사람 히스기야가 어떻게 기도를 했고 어떤 결과를 얻었는가를 살펴 보면서 여러분들도 기도의 사람 히스기야 처럼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함께 말씀을 상고하고자 한다.

 1,나라의 하나님께 기도

15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히스기야는 나라가 위급함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엎드렸다.

그리고 그 기도의 첫 마디가 바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란 말에는 상당한 의미가 내포되 있다.

이는 얍복 나루에서 만난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이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얍복 나루에서 맺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상하는 기도인 것이다.

또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말은 환상적인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속에 일하시는 역사적인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음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말에 뜻은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큰 의미가 내포되 있다.

지금 앗수르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형편에서의 기도인 만큼 이스라엘의 소속이 하나님께 있음을 확인하는 기도인 것이다.

나라의 경영이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말이다.

 2,여호와 유일신을 믿는 기도

당시의 형편으로 보아 섬김의 대상이 매우 잡다했다.

많은 우상들이 득실거렸다.

지금 나라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앗수르 나라는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아니엿고 잡다한 우상의 나라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스라엘은 유일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다.

15절에 ...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우리들이 지난 시간에 히스기야가 모세가 만든 놋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김의 대상으로 삼자 그것을 부수어 버리고 느후스단이라고 불렀던 용단과 그의 참신한 믿음을 보았다.

모든 우상은 물론 놋뱀까지도 다 부셔 버린 왕이기에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천지에 홀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기도가 멋있는 것은 조금 전에는 분명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천하 만국의 홀로 하나님이시라고 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천하 만국의 하나님이시란 말이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반면에 이스라엘의 적국인 앗수르까지도 다 다스리시고 계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믿는 자들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라 불신 세계도 다 하나님의 영역에 속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왕도 그의 나라도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심을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앗수르는 하나님을 떠나 잡다한 우상의 나라요 이스라엘은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의 나라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3,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는 기도

15절에 ...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이는 히스기야의 기도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주께서 천지를 조성했다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01,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것이다.

02,하나님은 피조물과 독립된다는 것이다.

03,하나님은 그것들을 지배하신다는 것이다.

04,하나님은 영원자라는 것이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에 대하여 이런 믿음을 가진다고 함은 매우 중요한 신앙의 근거를 제공해 준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전능자는 있을 수 없음을 믿게 한다.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만물이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만이 영원하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는 저 앗수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호와 왜엔 다 보잘 것 없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광범위한 개념들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들의 기도가 이렇게 힘이 있을 수 있는 것임을 보여 줌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넓히면 넓힐 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하나님을 신뢰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단 사상을 흘러가고 또 기복적인 샤마니즘의 신앙으로 전락을 하고 있는 것은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을 많이 아니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많이 알아야한다.

호세아는 말했다.

이 백성들이 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4,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기도

16절 여호와여 귀를 기우려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힙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는 소리를 들으시옵소서 한 마디 한 마디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확신이 넘치고 있다.

사람들의 기도가 아무리 유창하다 할찌라도 거기에 확신이 없다면 그 기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사람들의 기도가 아무리 론리적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믿음이 없다면 그 기도는 응답을 바랄 수가 없다.

사람들의 기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할지라도 거기에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께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항상 기도 할때마다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확신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들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 것을 지금 우리들을 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그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의 기도를 해야한다.

 5,그 결과를 여호와의 영광으로 기도

지금 히스기야 왕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나라의 존망을 가늠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다.

나라가 없는 왕을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의 히스기야의 기도의 내용은 무었인가 19절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19절 히스기야의 기도의 내용은 자기가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인한 상항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으나 우리들의 기도와는 좀 다른 데가 있다.

뭔고하니 지금 히스기야가 당하고 있는 이 어려움은 자기를 어렵게 만든 이유가 분명히 어디엔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지금 히스기야가 격고 있는 어려움은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우상들을 다 제거하고 나서 당하는 외부로부터의 어려움이다.

그러니 우상을 즐기던 많은 나라들 그리고 나라 안의 많은 사람들이 히스기야를 향하여 무어라고 비난을 했겟는가 10절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스라엘에 사람을 보내어 너희는 유다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의 의뢰하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붙이지 않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나라 안에 많은 사람들도 히스기야를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히스기야는 이 되어져 가는 모든 일들이 자기를 통하여 전능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의 결과를 홀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 가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자기의 삶의 전부가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 되기를 원했다.

히스기야는 자기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만을 소망하면서 살았다.

19절의 내용도 역시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홀로 하나님인 것을 천하 만국이 알게 하시라는 것이엇다.

히스기아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고 응답이 되엇다.

물론 즉각적인 응답이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히스기야처럼 나의 삶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하자.

히스기아 처럼 기도 할 때 믿음과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자.

히스기아처럼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자.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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